약사 퇴사 후 인력 구하지 못해 수간호사가 조제
약사법상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행위' 성립 여부가 쟁점
재판부 "무자격자에 의한 조제...환자 건강 위해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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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의료 취약지에 위치한 병원에서 약사를 구하지 못해 간호사가 의약품 조제 업무를 수행한 것은 무자격자 조제행위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병원 측은 의사의 지도 하에 이뤄진 처방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복지부가 A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사건의 경위를 살펴보면 복지부는 2017년 3월 충북 괴산에 위치한 A병원을 상대로 18개월의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복지부는 A병원에 15일의 요양기관업무정지처분과 함께 약 2억 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A병원에서 근무하는 수간호사 2명이 환자간호를 전담하지 않았음에도 전담인력으로 신고해 의료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무자격자인 이들에게 의약품을 조제하게 한 후, 약제비 등을 요양급여 비용으로 청구했다고 봤다.

이에 대해 A병원 측은 병원이 오지에 위치해 약사를 적시에 채용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던 약사가 갑자기 퇴사했고, 곧바로 약사를 채용하지 못해 약 1년간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사들이 의약품을 조제했다는 입장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입원료 차등제 산정기준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A병원은 "의사가 1개월분 처방을 내리면 매달 1일에 처방전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했다. 조제에 투입된 시간은 월 평균 6~7시간"이라며 "부득이하게 간호사가 의약품 조제 업무를 수행했어도 이를 간호인력 제외사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 규정에서 단시간 근로 간호사도 간호 인력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에, 의약품 조제 업무를 간호업무와 병행한 간호사를 간호 인력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A 병원은 "의료 취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약사를 채용하기 어렵다. 병동 간호사실에 필요한 의약품을 비치해 의사의 지도 하에 긴급한 일을 즉각 대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호사의 의약품 조제 및 투여로 인한 부작용 등 사고가 전혀 없었다"라며 위와 같은 복지부의 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호소했다.

 

병원 위치 고려해 부당금액 과징금 2분의 1로 감경

"의사가 직접 조제하거나 간호사 지도 등 조치 있었어야"

법원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약사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약사 및 한약사에게만 의약품 조제를 허용하지만, 입원환자 등에 대해선 의사 자신이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재판부는 A병원에서 이뤄진 간호사의 조제에 대해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행위'로 인정받기 위해선 의사가 간호사의 조제 행위에 대해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시행하고, 환자에 대한 의사의 복약지도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지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사실확인서 및 증언에서는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하지 않았고, 간호사의 조제행위를 지도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는 진술이 나왔다.

재판부는 "무자격자인 간호사에 의한 의약품 조제행위가 이뤄졌다"라며 "환자들은 제대로 검수받지 못한 약을 조제받았고, 자칫 질병의 치료 및 건강에 위해가 초래될 위험도 있었다"라고 판단했다.

병원이 오지에 위치하고 있어 약사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호소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의사가 의약품을 직접 조제하도록 하거나, 간호사의 조제행위를 실질적으로 지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라며 "위법행위의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복지부는 사건의 처분 당시 병원의 소재지를 고려해 처분과 관련한 부당금액을 절반 수준으로 감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약품 조제 업무에 비교적 적은 시간이 투입됐기 때문에 입원료 차등제 산정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입원실을 이탈해 별도의 층에 위치한 약제실에서 의약품을 조제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했고, 이는 환자간호 외의 업무를 수행한 경우에 속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환자 간호 이외의 업무를 병행했음에도 이들을 환자간호를 전담하는 간호사로 신고하고, 실제보다 높은 등급에 해당하는 의료급여비용을 지급받았다"라며 "속임수나 그 밖의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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