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교수팀, 안전·유효성 등 문헌고찰 통해 처방 시 실행 체크리스트 발표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치료저항성 우울증(TRD) 치료제로 사용하는 케타민과 얀센의 스프라바토(성분명 에스케타민염산염) 처방이 증가세다. 이에 전문가들이 임상에서 두 약물치료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한 '전문가 지침(Expert Guidance)'을 발표했다.

전신마취 유도와 유지 등에 사용하는 케타민은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에 영향을 미치는 향정신성 약물이다. 그런데 낮은 단위의 마취하용량(subanesthetic dosage)을 투여했을 때 지속적인 항우울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특히 자살 생각을 급속히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얀센의 스프라바토(성분명 에스케타민연산염).
▲얀센의 스프라바토(성분명 에스케타민연산염).

최근 등장한 스프라바토는 2019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제로 승인받은 제품이다. 이후 2020년 급성자살생각이나 행동이 있는 성인의 중등도~중증 주요 우울장애 치료제로 추가 승인을 받았다.

다만 케타민과 스프라바토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됐지만, 실제 임상에서의 지침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캐나다 토론토대학 Roger McIntyre 교수팀이 두 약물의 안전성, 유효성, 내약성 등에 대한 문헌고찰을 진행하고 이를 정리해 전문가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3월 17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케타민·스프라바토, 우울증 증상 개선에 '강력한 근거'

문헌고찰 결과, 연구팀은 케타민과 스프라바토가 치료저항성 우울증 증상을 1~2일 이내에 개선하는 데 '근거 있음'으로 판단했다. 또 비강에 뿌리는 스프라바토와 케타민 정맥주사의 효능에 대해서는 '강력한 근거'가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게 케타민을 경구, 피하 또는 근육 내 투약하는 것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치료저항성 우울증 성인 환자에게 1년 동안 비강으로 투여하는 스프라바토는 안전성·유효성·내약성 근거가 있다"면서도 "이들 환자에게 케타민 정맥주사의 장기 안전성·유효성·내약성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정리했다.    
 

'다학제 진료' 가능할 때 치료 진행 제시

이런 지침을 근거로 의사들이 임상에서 두 치료제를 투약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실행 체크리스트'를 제시했다.

먼저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를 판별하도록 조언했다. 두 번째로, 치료기간과 이후 감시(surveillance) 기간 동안 신체검사와 바이탈 사인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필요한 경우, 소변을 통한 약물검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는 케타민과 스프라바토를 투여할 때 반드시 다학제 진료가 가능한 상태에서 진행하도록 제시했다. 

또한 병원은 심폐기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구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해리 및 정신이상효과 등에 대한 정신적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환자의 불안, 인지기능, 심리·사회적 기능 등을 평가하도록 조언했다.

다섯 번째는 치료를 끝낸 후 의사는 즉시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심폐 안정성, 명확한 감각 등을 확인하라고 권고했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퇴원할 때 믿을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어야 하고, 하루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은 채 운전하거나 위험한 기계를 작동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연구팀은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는 케타민과 스프라바토를 투여할 때 위험성 평가 및 경감전략(REMS)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약물 투여 후 퇴원 2시간 전까지 환자를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프라바토, 모니터링·비급여 등 쓰임에 활용 제한"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스프라바토가 출시됐다. 현재 얀센이 대학병원 등에 랜딩을 준비하는 상황이라 임상 현장에서 활발하게 처방되는 상황은 아닌 듯하다.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상열 이사장(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우리 병원에도 이제 막 랜딩됐기 때문에 스프라바토의 효과 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다른 대학병원 등에도 랜딩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프라바토는 우울증 분야에서 30년 만에 출시된 약물이지만 환자에게 처방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우선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제라 최대 2개 이상의 다른 경구용 항우울제에 적절히 반응하지 않은 성인의 중등도와 중증 주요 우울장애 치료제로만 사용할 수 있다. 우울증 초기부터 처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전문가 지침에서도 밝혔듯 처방 후 2시간 정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해리증상과 어지러움, 메스꺼움, 졸음, 혈압상승 등의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따라서 의사는 스프라바토 투여 후 환자가 임상적으로 안정되고 의료기관을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최소 2시간 동안 환자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또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구 등이 갖춰진 곳에서만 스프라바토를 처방할 수 있다는 점도 어려움이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이미 임상에서 알려진 대로 스프라바토의 효과와 안전성은 인정됐지만, 쓰임에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환자 모니터링 수가도 없어 스프라바토를 처방할 수 있는 병원의 한계가 있다. 개인병원에서 처방은 어려울 것 같고, 준종합정도 규모의 병원이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비싼 약값도 처방을 어렵게 하는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스프라바토 클리닉을 운영하는 캐나다 CRTCE 클리닉에서는 2주에 4회 스프라바토를 투여하는데 약 3000달러(한화 357만원)가 필요할 정도로 고가다. 현재 국내에서 스프라바토는 비급여로 출시됐다. 즉 의료기관에서 스프라바토의 가격을 결정하면 환자가 100% 치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이사장은 "치료저항성 우울증은 취약계층에서도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그래서 스프라바토의 비싼 약값은 안타까운 부분"이라며 "학회 입장에서는 좋은 가격으로 환자에게 처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정부와 제약사 입장이 달라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 제약사, 학회 등이 모여 접점을 찾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이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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