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설과 촉탁의·협력의료기관 협약 체결 후 진찰
"사회적 비난 정도 낮다" 50일 업무정지처분 취소

출처 :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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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환자 본인이 아닌 요양시설의 직원에게 처방전을 대리발급한 촉탁의 의사에게 내려진 업무정지처분은 재량권 남용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뤄진 재진환자들이고, 요양시설의 직원도 처방전을 대리수령할 수 있도록 최근 의료법이 개정됐다는 점에서 이런 처분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원고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요양기관 업무정지 취소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충남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노인의료복지시설과 촉탁의 또는 협력의료기관 협약을 체결했다.

A씨는 2015년 말까지 각 시설에 방문해 입소 환자들을 직접 진찰했고 이후에는 환자 담당 간호사 또는 보호자, 환자가 의원을 방문했다.

다만 A씨는 진료한 환자 중 재진환자는 직접 진찰하지 않고, 노인의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간호사 등을 통해 처방전을 발급했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종전에 진찰한 환자들 가운데 거동이 불편하고 동일 질병으로 장기간 동일한 처방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 한해 노인복지시설 직원과 상담한 후 처방전을 대리 발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입소자들에게 가족과 다름없고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는 가족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해당 의원에 대해 현지조사를 실시한 복지부는 A씨가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이듬해인 9월 11일 5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을 내렸다.

구 의료법은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A씨는 노인복지시설에 소속된 직원이 내원해 상담한 후 진찰료와 정신요법료 등 요양급여비용 3500만원을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의 환자 중 일부 가족은 '위 수진자들의 거동이 곤란해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처방전을 대리수령해왔으나, 2017년 12월부터는 가족이 처방전을 대리수령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실 확인서도 작성했다.

 

법 개정됐지만 소급 적용은 불가 "구 의료법 위반"

"건보 재정건전성 감안해도 처분의 공익 크지 않아"

다만 이 사건 처분 직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원고인 A씨에게 유리한 조항이 신설됐다.

신설된 의료법은 환자의 거동이 곤란하거나 동일 상병에 대해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 의사가 안정성을 인정한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리수령자'에게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대리수령자에는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이 개정안은 작년 2월 말부터 시행됐다.

A씨는 개정된 의료법을 소급적용하면 본인이 요양급여비용을 부당청구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령 변경 전 발생한 사항에 대해서는 신 법령이 아닌 변경 전의 구 법령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구 의료법을 위반해 환자의 가족이 아닌 시설 직원에게 처방전을 발급했음에도 재진진찰료를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한 것은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이라고 적시했다.

다만 복지부의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A씨의 주장은 인정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행정처분의 남용 여부는 처분행위로 달성하려는 공익목적, 처분으로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 등을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재판부는 "상황을 종합하면 이 사건의 처분으로 원고가 입는 불이익이 처분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크므로, 이 사건의 처분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또한 의료법이 개정된 것은 노인의료복지시설의 직원이 ▲입소자의 질환, 주증상을 환자의 가족만큼 자세히 알고 있고 ▲신뢰관계가 두텁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환자에게 약제를 투여하고 환자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를 고려하면 원고의 부당청구행위는 국민건강보험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로까지 보기는 어렵다"며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감안해도 이 사건의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원고가 입는 불이익보다 현저히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A씨의 의료기관에 내려진 5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비용은 복지부가 부담하도록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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