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커버넌스 구축하고 시대흐름 선점해야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코로나19(COVID-19)는 한국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행히 올해 초부터 항체치료제가 개발돼 진료현장에서 사용될 예정이며, 1분기부터 코로나19 백신이 도입되면서 코로나19 확산세는 점차 줄어 올해 3분기부터는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건당국 및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With 코로나’ 시대의 변화된 삶에 대한 불안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보건의료분야는 유례없는 환경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혹은 원격의료의 활성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며, 공공보건의료 분야 강화와 인공지능(AI) 활용의 보편화가 예견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의료계가 내포하고 있는 약점(Weakness)과 강점(Strength), 외부적 위협요인(Threats), 그리고, 새로운 기회(Opportunities)는 무엇이 있는지를 짚어 보면서 의료계의 2021년 신축년을 전망해 본다.

Weakness I 약점

갈등 조정기능 미흡…'리더십·소통의 부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또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 역시 변화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의 발언보다 감염병 전문가를 비롯한 의료계의 지적에 대해 더 많은 공감을 보내면서 의료계로서는 여론이라는 순풍을 만난 셈이다.

외부 여론 호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내부 리더십의 부재와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조정 기능 미흡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중소병원, 동네의원들이 생존을 위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다. 또, 소위 잘나가는 정형외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와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각 진료과들 간의 극명한 입장차이도 보이고 있다. 

의료계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상호 배려와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의협과 병협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반대 등 4대악 저지를 위한 의료계 총파업 이후 정부 및 여당과 의협의 9.4합의 과정에서 전공의들과 최대집 회장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왔다. 전공의들은 최 회장이 여당 및 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해 최 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번 합의 과정에 대해 대정부 및 대여당 협상 과정에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내부 리더십과 소통 부재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의사 사회 내부적으로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수렴 과정을 주도할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 내부 의견조율이 되지 않은 사례는 이번 9.4합의 과정 이외에도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 논의와 의료일원화 논의를 위한 협의체 운영과정 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는 권고안 채택 직전까지 갔지만, 내과와 외과 간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권고문 채택이 불발됐다. 

고려대 보건대학원 윤석준 원장(예방의학교실 교수)은 의료계의 최대 약점은 리더십 부재로, 현재 의료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윤 원장은 "내년에 의협 회장 선거가 있지만, 의협은 오랫동안 개원가를 대변하는 단체로 인식돼 왔다"며 "의협 대의원총회에 파견대의원으로 참관한 경험으로 볼 때 개원의 중 강성 회원 이외에는 발언하지 않는다. 개원의가 지배하는 구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 전체 규모와 위상을 봤을 때 개원가의 규모는 제한적이다. 개원가, 대학, 전공의 등 각 직역 간 균형이 맞지 않다"며 "전체 직역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없으면, 앞으로도 의료계는 혼란이 내재된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 리더십 부재와 소통 미흡으로 대정부 협상력이 약화되고, 이득보다 손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Strength I 강점

의사, 사회현상 관심 높아져…전문가 집단 재인식 계기

의료계는 전문가 집단으로 권위와 영향력이 다른 분야보다 높은 것이 최대의 강점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의료접근성과 신의료기술 발전은 의료계가 가진 자산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의료계 총파업을 통해 많은 의사가 진료실을 벗어나 의료정책과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합목적성을 가지게 된 것도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윤석준 원장은 "그동안 의사들은 전문분야에만 관심을 가져 시야가 좁았지만 파업 이후 의사들이 의료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사회현상은 어떤지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며 "의사들의 넓어진 시야를 의료계가 리더십과 함께 연동해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면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원장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따른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점도 제안했다.

그는 "의료전달체계의 방향은 1차 의료 강화와 중소병원 역할 정립, 대형병원 쏠림현상 해소지만, 접근성이 높은 동네의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며 "노인인구가 많은 농어촌지역과 젊은 세대가 많은 도시지역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의료시스템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 동네의원과 중소병원, 대형병원이 경쟁이 아닌 상호 협조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필수진료과이지만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생존을 위해 지불제도 개선과 소방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준 원장은 "저출산으로 인해 연간 신생아가 30만명 미만으로 태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에 대한 레지던트 지원 기피 현상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신생아가 출생하게 되면 성년이 될 때까지 소아청소년과가 소아환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인두제 형식의 지불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방서는 불이 나지 않더라도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각 지역에 필수적으로 설치하고 있다"며 "산부인과도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지역마다 일정 수의 산부인과 의료기관이 존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Threats I 외부적 위협요인

옥죄는 입법과 제도 그리고 시대정신 부족

지난 2019년 국회 및 정부에서 의료기관을 옥죄는 규제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의사들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행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진료의 활성화가 본격화 될 수 있다. 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의료계 총파업 이후 보복성 입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의사들을 옥죄는 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면허취소 행위를 반복한 의료인의 면허를 영구 취소하는 '투스트라이크 아웃법'과 함께, 질병 진단시 질병 예후·치료방법 등을 구두로 설명하도록 하는 이른바 '친절한 의사법' 등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당 강병원 의원도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최혜영 의원은 의료법에 필수유지 의료행위를 규정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행위를 중단하지 못하게 하는 '의사파업 금지법'을 발의했다.

의료계는 국회와 정부가 의사의 기본권과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법안들을 발의하는 것에 대해 우려와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회와 정부의 입법과 정책은 시대흐름으로서 의료계를 둘러싼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위협요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의료계는 구심점이 없어 시대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윤석준 원장은 의료계의 위협요인이 약점과 연동돼 의료계 내부 구심점 부재가 시대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진단했다.

윤 원장은 "의협은 정부가 정책을 제안할 때 찬성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며 "대부분 부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그런 부정적 대응이 시대흐름에 뒤처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리더십의 문제가 크며, 의료계 리더 중 누군가 앞서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힘을 모으는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반대만 있고, 대안 제시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박종훈 병원장 역시 의료계가 시대정신 부족으로 인한 대정부, 대국회, 대국민 대응이 미흡하다고 했다.   

박 병원장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주치의 제도, 원격의료,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의료계가 거세게 반대해 왔던 제도들이 하나, 둘 현실화 되고 있다"며 "시대정신을 잘 못 읽어 시대를 거스르는 반대만 하는 것으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협 대의원총회에 참석해 보면 의약분업 당시의 주장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어 회원들의 신뢰와 추진 동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며 "의료계 리더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Opportunities I 새로운 기회

코로나19 사태로 쌓은 국민 신뢰도…의료계 의견 호의적

코로나19 장기화는 의료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의료진들이 코로나19 방역 및 치료현장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사에 대한 국민정서는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맡길 수 있는 고마운 의사, 사회지도층이지만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전문가들이라는 양가적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보다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의 권고를 더 신뢰하게 됐다. 

어느 때 보다 의료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높아진 상황은 의료계로서는 정부 정책과 제도 개선 요구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건강 관련 의료산업 분야의 확대도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민들의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결국 의료계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정부나 국회가 의료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는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를 배려하는 자세로 주장을 펼쳐야 한다"며 "지나치게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의료계의 주장이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다. 정부가 변화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 국민 여론에 의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석준 원장은 의료계가 탄력성과 포용성을 발휘해야 의료분야 산업구조 확대를 통한 기회를 살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윤 원장은 "앞으로 보건의료산업이 팽창하면서 의료인력과 각 직역이 세분화될 것"이라며 "의료계가 중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의료산업의 팽창은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다양한 외부 요인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2021년, 의료계는 내재된 리더십 부재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높아진 국민 신뢰를 기회로 시대흐름을 선점해야 의료계를 옥죄는 정부 정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고,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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