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제도개선 가능성 ↑... 일차의료 지원 실익-정책 주도권 잃은 채 빈손 마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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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간 이어져 온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가 의료계 내부의 이견으로, 결국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일차의료기관 입원병상 존치 여부 등 몇 가지 쟁점을 두고 내홍이 깊어진 까닭인데, 의료계를 기다리고 있는 내외부 환경변화를 감안할 때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정부는 권고안 채택여부와 별개로 전문가 합의사항에 대해서는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의료계가 정책 주도권만 빼앗긴 채,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무너진 전달체계, 언제까지 무한경쟁 할건가?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일차의료활성화는 의료계, 특히 개원가의 숙원사업 중의 하나였다.

의원은 외래-병원은 입원-대형병원은 고위험환자 진료와 연구로 이어지는 전달체계를 확립해, 환자를 두고 의원과 대형병원이 무한경쟁하는 의료체계 왜곡현상을 막아야 한다는데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전달체계개편과 일차의료 활성화를 각 정당에 최우선 정책 과제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에 참여했던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권고안 폐기는 현 상황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라며 "전달체계 개편 없이는 의원과 병원·종합병원·상급병원이 환자를 두고 지금과 같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상황은 달라질 수 없다. 권고안 폐기를 놓고 의료계가 여전히 먹고 살 만한가 보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선안이 확정됐을 때 의료계, 특히 개원가에 돌아가는 이득의 규모가 결코 적지 않다"며 "단순히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자기 주장만 반복하고 있는 의료계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정부, 권고안 합의에 목 맨다?...의료계의 착각"

실제 권고안 합의 불발 시 의료계가 감수해야 할 손해는 적지 않아 보인다.

일단 일차의료활성화를 위한 각종 정책적 지원과 그에 따라올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게 됐다. 당초 협의체는 전달체계 게이트키퍼로서 일차의료기관을 육성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그에 따른 수가 지원 등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추가재정 투입은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의 결과라는 명분이 중요한데, (권고안 합의 불발로) 정부 입장에서는 전달체계 개편과 일차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해 재정을 추가로 투입할 명분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전달체계 권고안 합의를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의료계의 착각"이라며 "장기적으로 가야할 방향은 맞지만 당장 재정 부담이 크다. 전달체계 개편과 관련해 정부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황으로, 굳이 지금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진단했다.

여당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나온다. 전달체계 개편 불발로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정부도 가입자도 아닌 의료계, 특히 개원가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전문위원은 "정부가 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채택을 엄청나게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의료계의 오판"이라며 "전문가 합의로 나온 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이 마련되면, 정부는 이에 근거해 정책추진을 해야 한다. 바꿔 생각하면 권고안이 없을 때 오히려 정부의 자율성과 권한이 더 커진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위원은 "전달체계 개편의 골자는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일차의료기관에 물을 대겠다는 것으로, 당초 병원계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이라며 "제도 개선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게 될 집단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지금의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명분 잃은 일차의료지원...문케어 저지? 오히려 역풍

전문가들은 전달체계 개편 불발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봤다. 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서, 문케어 이행이 지연되거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다는 얘기다. 

조 전문위원은 "정부여당이 비급여 급여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전달체계 개편이 그 필수조건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보장성 강화가 논에 물을 대는 작업이라면 일차의료육성과 전달체계 개편은 물을 대기 전에 땅을 고르는 작업으로, 땅이 고르면 물을 골고루 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는 설명이다. 

조 전문위원은 "고속도로를 놔두고 국도로 가야하는 불편이 있는 정도다. 반대로 고속도로를 타지 않으면 통행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다"고 비유했다. 

반대로 전달체계 개편이 불발되면 개원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맞물려 따라올 '대형병원 쏠림'이라는 강풍을 바람막이 없이 온 몸으로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문케어 발표 당시 의료계와 야당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상급병원 쏠림현상이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이뤄질 경우 의원과 대형병원간 가격 격차가 줄어들고 이것이 환자들의 상급병원 쏠림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입지 좁아진 의료계..."논의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 

합의 불발의 책임으로 정책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됐다는 점, 함께 논의를 지속해 온 정부와 시민사회·각계 전문가들의 신뢰를 잃게 됐다는 점도 의료계로서는 뼈 아픈 결과다. 

정부는 권고안 채택 불발 후, 협의체 논의를 통해 전문가들이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는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와 시민사회 등 의료계를 뺀 나머지 이해당사자들간 협력으로 정책적 수단을 통해, 목표를 실현해 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복지부 정윤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일단 1월말까지 의료계의 중재안을 기다린다는 방침"이라면서도 "그간 협의체 논의를 통해 그 내용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합의가 최종적으로 불발에 그칠 경우) 그 내용들을 정책수립에 참고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상황에서 의료계는 사실상 고립무원 상태에 놓이게 된다. 2년여간의 논의 결과를 한순간 뒤짚어 버리면서 정책 파트너들의 신뢰를 잃게 된 탓이다. 이는 건보 보장성 강화 뿐 아니라 가입자와 공급자 등 당사자 협의를 전제로 하는 모든 보건의료정책 추진에 공히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권고안 합의 불발 직후, 의료계의 비토가 합의 파기의 주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권고문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합리적이며 투명한 의료이용 체계, 새로운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해 시민사회 독자적으로 대정부 협의를 강화하고 의료이용자인 전체 국민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협의체에서 충분히 논의된 바 있는 기능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의료기관 기능에 부합하는 수가체계로 개편하되, 기능에 적합하지 않은 의료공급에 대해서는 수가를 인하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김윤 교수는 "논의과정에서 보여진 문제들로 국민의 여론이 의료계에 대단히 비판적으로 간 상황"이라며 "이는 의료계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드라인까지 D-6...의료계 최종 선택은?

앞서 협의체는 지난 18일 권고안 채택 무산과 협의체 활동 마무리를 선언하면서, 오는 30일까지 의료계가 미합의 부분에 대한 중재안을 마련한다면 재논의할 수 있다는 단서를 뒀다.

'불씨'는 살아있는 셈이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논쟁 중이고, 협의체 안팎의 분위기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협의체 한 관계자는 "의료계가 중재안을 가져오겠다지만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다"며 "기한 내 중재안을 가져오더라도 그것이 의료계만을 위한 것이라면, 협의체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협의체의 재구성, 재협의 가능성도 낮게 봤다. 

김윤 교수는 "의료계의 생각과는 달리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기회가 오더라도 그 안에서 의료계의 발언권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라며 "다 차려놓은 잔칫상을 엎은 꼴로, 의료계 입장에서는 논의를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못한 결과를 얻게 됐다"고 평했다.

조원준 전문위원은 "전달체계 개편의 경우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는 큰 영향을 주지만 국민의 체감효과는 크지 않고, 오히려 일정수준의 불편함과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며 "정부와 국회 모두 굳이 이런 정치적 부담을 다시 감내할 이유가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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