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학회, 5대 필수의료과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일부 지역 전공의 '0명', 분과 전문의는 은퇴 앞두고도 대체자 없어
수가·소송·당직 부담 삼중고에 교수들도 이탈···사법 리스크 해결 시급

대한의학회는 22일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정책 포럼'을 진행했다.
대한의학회는 22일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정책 포럼'을 진행했다.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필수의료 전공의 및 분과 전문의 인력 격차가 심화되며 필수의료 체계의 지역 불균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한의학회는 22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정책 포럼'을 열고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5개 진료과를 대상으로 한 '필수의료 수련병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의학회는 2024년 필수의료 정책연구위원회를 출범시켜, 중증·응급·고난이도 진료를 담당하는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현황 조사를 진행해 왔다.

내과 "지방부터 인력난 빠르게 현실화, 근무지속률 낮아"

5개 진료과 중 가장 상황이 나은 과는 내과로, 수도권 대부분 수련병원 지원율은 1:1 수준이었다. 하지만 비수도권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 지원율이 75% 미만으로 나타나며 인력난이 현실화되는 중이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전 수련이사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전 수련이사

전공의 파업 이후 복귀율에서도 지역 간 격차는 확연했다. 수도권은 평균 80%, 비수도권은 60%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1년차 기준 복귀율은 수도권 73%, 비수도권은 40%에 그쳤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분과 전임의(펠로우) 숫자도 줄고 있다. 2025년 펠로우 수는 전년 대비 약 30% 감소했으며, 전체 펠로우 중 비수도권 근무자는 24%에 불과했다.

전공의와 펠로우를 잇는 교수진 구성에서도 비수도권은 열악한 수준이다. 수도권 수련병원의 내과 교수 평균은 56명, 비수도권은 36명으로 20명 이상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전 수련이사는 "주요 수련기관에서 내과 전공의의 근무 지속률은 60%를 밑돌고 있다"며 "특히 비수도권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집중 지원 없이는 수년 내 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당직 부담, 높은 소송 위험, 그리고 가장 낮은 수가가 삼중고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과 "비수도권 수련병원 21%, 응급수술 어려워"

외과에서는 지역 간 격차가 더욱 심각했다.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이사는 지방은 수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이사
대한외과학회 최동호 수련이사

조사에 따르면 외과 전공의 충원율은 평균 50~60%로, 의정 갈등 이후 더 악화됐다. 충북과 제주 지역은 외과 전공의가 '0명'으로 조사됐고, 강원도도 단 6명에 그쳤다. 수도권 전공의 집중은 더욱 심화되며 전체 전공의의 75%가 서울·경기권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외과 전임의의 수는 2023년 대비 2025년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임의가 '0명'인 병원이 전체의 46.4%(32개)에 달했다.

최 수련이사는 "현장에서 수술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며 "외과 전문의의 평균 연차는 올라가고 있으며, 수도권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펠로우·교수진과 달리 지방 중소병원은 퇴직 유예 교수들이 의료를 유지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의료 역량에도 영향을 미쳐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전체의 87%에 불과했다. 비수도권 병원은 21%가 응급수술조차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아외과·혈관외과·장기이식 등 고난이도 수술을 모두 수행 가능한 병원은 5개에 불과했다. 지방 병원일수록 소아외과, 혈관외과 인력 확보에 더 취약해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지방병원에 필수의료 인력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유인책이 시급하다"며 "단순 수가 인상보다 전공의·지도전문의 수련 환경 개선, 입원전담전문의 확충 등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청과 "전공의는 2%, 심장 전문의 대부분은 은퇴 앞"

2025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 수는 총 5명이다. 전공의 수가 정상화되더라도 이미 소청과는 10년 내 중증 치료 역량이 급격히 저하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위원회 분석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이사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이사

전문의 상황도 심각하다. 충북·제주와 같이 혈액종양, 신장, 소아심장 등 특정 분과 전문의가 1명 이하 또는 아예 없는 지역도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 의료진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면역 분과의 경우 전체의 61%, 소아심장 분과는 34%가 60세 이상이다. 이들은 향후 5~10년 내 은퇴할 가능성이 높지만 후속 인력 수급은 사실상 막혀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윤신원 수련이사는 "특히 중환자 진료 능력이 전반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며 "호흡곤란 환자조차 상시 치료 가능한 병원이 50% 미만"이라고 말했다.

수련병원 대부분은 전공의가 사라지면서 지도전문의나 전담 전문의가 직접 당직을 도는 '스텝 당직' 체계로 전환되었다. 비수도권은 월 8회 이상 당직 병원이 절반에 달했다. 이는 의료진 피로도를 심화시키고 추가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는 △실질적 유인책을 통한 수련 인력 안정화 △지방 중환 진료역량 확보 △분과별 지원 정책을 통한 중증 분과 육성정책 △전담 전문의 정규화 △무분별한 당직 구조 개선 등이 제안됐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없이 교수들이 24시간 진료···"한계 상황"

응급의학과의 경우는 전공의 이전에 전문의들의 이탈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조사에 따르면, 응급의학과에 전문의 수는 병원당 평균 12명 수준이다. 또 지도전문의 수는 전국 평균 8.6명, 비수도권 평균은 7.3명에 불과하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수진 수련이사
대한응급의학회 김수진 수련이사

대한응급의학회 김수진 수련이사는 "전공의가 들어온다고 해도 수련을 지도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한 응급의학과 교수 절반이상이 이직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을 고민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는 야간근무 부담(58.7%), 건강 악화(51.9%),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48.1%) 등이 꼽혔다.  

이날 공개된 '2025년 응급의학전문의 총조사' 중간보고에 따르면, 응급실 진료와 관련해 1년 이내 법적 분쟁을 경험했다는 답변이 33.4%를 기록했다. 또 응급실 전문의 21.9%는 스트레스로 인한 안정제, 항우울제 등 약물 사용 경험이 있었으며, 수면 질환으로 인해 수면제 복용 등 사례도 137건(2025년 기준)이나 있었다.

김 수련이사는 "응급의학과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법리스크를 완화해야 한다"며 "응급 상황 오진 시 면책 기준 마련하고 정부와 학회차원에서 정당 진료 판단 기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외 △국가직 채용 등을 통한 전문의 인력 확충 △중증 진료 가산수가 및 별도 보상 체계 도입 △응급실 전담 안전 인력 배정 △지방 사립 수련병원에도 연구·행정비 지원 등이 제언됐다.

산부인과 "의료소송 공적 보상제 도입해야"

산부인과 역시 사법 리스크로 의료 역량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대한의학회 산부인과 수련제도 TF 홍순철 위원장
대한의학회 산부인과 수련제도 TF 홍순철 위원장

국내 35세 이상 산모 비율이 36%, 다태아 비율은 5.8%로 고위험 산모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산부인과 수련병원은 2010년 106개소에서 2020년 88개소로 감소했다.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수 역시 최근 10년간 259명에서 103명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전국 산부인과 전공의 수는 345명. 이 중 76%가 서울·경기에 집중돼 있으며, 대부분의 지방 권역은 전공의 수가 '0'에 가깝다. 상급종합병원 내 산과 전임 교수도 병원당 2명 이하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산부인과 수련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의료진 이탈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의료소송 즉 사법 리스크가 지목된다. 최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발생한 고위험 분만 관련 6억 5000만원 보상 판결이 큰 충격을 던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학회 산부인과 수련제도 TF 홍순철 위원장은 "국내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당 8~10명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임에도 100% 살리지 못하면 의료진을 비난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다"며 "이런 현실에 산과 전문의들이 남을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캐나다 등의 경우 의료진이 진료에만 집중하고, 의료소송은 국가가 책임진다"며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백신 피해 보상처럼, 필수의료 소송 부담을 국가가 떠안아야 민간 병원 인프라가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도 △100~300병상 종합병원에 4대 필수과목 복원 △고위험 산모 등의 수가 현실화△ 산부인과 전문의·간호사 인건비 가산 △임산부 진료 가산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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