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들, 집단 소송 및 산별교섭 등 후폭풍에 긴장
"수련은 부실하고 인건비 부담 커져"···수련체계 바꿔야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대법원이 전공의 근무시간 기준을 주 40시간으로 인정면서, 전공의와 수련병원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전공의들은 수련시스템 정상화라며 반겼으나, 수련병원에서는 인건비 등의 부담과 수련 부실 우려를 토로했다. 전공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원하는 이들 중심으로 전문의 수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서울아산병원과 전공의가 수련을 명목으로 맺어온 주 80시간 포괄임금 약정이 무효라고 판단하고,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 초과근무 수당을 병원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은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전공의노조는 입장문에서 "판결이 전공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조 차원에서 법적 검토를 세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전공의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통해 왜곡된 임금 체계를 밝히고, 보건복지부에 노정교섭, 수련병원협의회에 산별교섭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수련병원들은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해당 판결에서 병원이 지급해야 할 초과임금은 전공의 1인당 약 1억 6900만~1억 7800만원이다. 이번 판결을 근거로 다른 전공의들이 각자의 병원과 소송을 진행할 경우, 상황에 따라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수련병원협의회 관계자는 "병원마다 계약 형태가 다르고, 환경이 달라 일반화하기 어렵다"며 "아직 수련병원을 상대로 전공의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 관계자는 "해당 판결은 응급의학과 등의 몇몇 특수성이 반영된 것으로, 타 과의 전공의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일부 전공의들이 추가 소송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개별적인 소송은 아니더라도 집단 소송 등으로 이어질 위험은 아직 남아있다. 실제 로펌에서 전공의 원고인단을 모집하거나, 전공의노조로 소송 문의가 이어지는 등의 움직임이 감지돼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또 추가 소송이 아니더라도 전공의노조가 이번 판례를 근거로 산별교섭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수련병협은 전공의노조가 예고한 산별교섭 요구 등에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법률 검토 등을 진행 중이다. 수련병협은 11월 초 긴급 이사회를 갖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전공의 "근로 정상화" vs 병원 "수련 부실화 우려"
전공의들은 이번 판결이 과도한 전공의 근무시간 관행을 사라지게 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대학병원의 전공의는 "국회와 정부가 법이나 기준을 만들어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판결로 현장에서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잡무를 줄이고 수련과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현장 체계가 만들어지면, 주 40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수련 커리큘럼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원과 교수들은 부정적이다. 전공의 특성상 수련과 노동의 구분이 어려운데, 이들의 근무시간 기준을 40시간으로 잡으면 수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병원의 인건비 부담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A 교수는 "전공의는 환자를 보는 것이 업무이자 수련"이라며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해 잡무를 줄이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근무시간을 획일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은 수련을 그만큼 하지 않겠다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당직이나 수술을 피하고 수련을 소홀히 하는 전공의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수도권 대학병원 B 교수는 "시범사업으로 주 72시간으로 줄어든 수련시간만으로도 수련 커리큘럼을 따라잡는 것은 요원하다"며 "여기서 시간을 더 줄이면 수련을 반쯤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들은 스스로 수련생인지 근무자인지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근로자라면 진료지원(PA) 간호사 등이 병원 입장에서는 더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차라리 전공의수 절반 이하로 줄이자" 볼멘 소리도
이 같은 교수와 병원가의 불만이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전공의의 수를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26일 대한신경외과의사회 고도일 회장은 "배울 시간이 없어서 4년차 레지던트 역량이 예전 2년차만큼도 되지 않는다. 이러다 진짜 맹장수술도 못하는 전문의가 나올 수 있다"며 "힘들게 쌓아온 외과 계열의 의료 수준이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 72시간제로 충분한 수련이 이뤄지려면 수련기간이 더 길어져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병원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전공의 수련을 위해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거나, 교수 등을 목적으로 수련생을 반으로 줄이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련병협 관계자도 "병원들에서 당장 내년부터 전공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11월 초 긴급 이사회에서 이 문제도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근무시간을 줄이겠다면, 짧은 시간 안에 수련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함께 제시해야 한다"며 "아니라면 모두의 반감만 커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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