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원 의대증원과 의학교육 정책포럼 진행
환자 서울 쏠림 현상까지 더해 지방의대 임상실습 악화일로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임상실습의 질이 저하가 꼽혔다. 지방의대일수록 이 같은 문제가 더욱 커져 지방의료의 신뢰성을 더욱 낮추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4일 서울 용산 의협회관에서 개최한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 문제' 정책포럼에서 이 같은 의견이 개진됐다.
충북의대 채희복 교수는 "우리 의대 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난 까닭에, 올해 의대생들이 복귀할 경우 400명이 한번에 수업을 받게 된다"며 "정부는 종합실험실습실과 해부학실습실, 임상술기센터 등을 지어 학생들의 실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시설들이 준비된다고 한들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해부 교육과 인체모형 혹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교육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 실습을 가르칠 교수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고려의대 해부학 교수인 의협 유임주 학술이사는 "현재 해부학 교수는 학교당 4.5명, 카데바(해부 실습용 시신)은 학교당 11구로,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면 산술적 계산상 해부학 교수 82명, 카데바 270구가 더 필요한 셈"이라며 "현재 의사면허 보유자(MD) 교수의 상당수가 5년 이내 은퇴 예정임에도, 후임 교수 충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증원된 학생을 교육하고 실습을 지도한 추가 교원을 어떻게 마련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 통계에 따르면 8대 기초의학(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약리학, 미생물학, 예방의학, 기생충학) 교원 총 1316명 중 의사면허 보유자(MD) 교수는 약 50%에 불과했다. 게다가 MD 교수 중 60%가 5년 이내 퇴직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전공의 수련에도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강원의대 강석훈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대에서 부족한 임상실습을 전공의 시절에 벌충해 환자를 돌보는 역량을 키우는 구조"라며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뿐만 아니라, 수련병원 임상실습에서 증원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한데, 정부는 방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대병원 장재영 사직전공의는 "의대교육의 핵심은 실습이라고 하는데, 산부인과에서 4주간 수련하는 동안 정작 분만 과정을 보지도 못할 만큼 전공의들은 임상에서 배제돼, 잡무만 도맡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원이 늘어난 25학번의 경우 이런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는 만큼, 수련에서 실습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상실습 부족 문제는 지방의대, 지방 대학병원일수록 더욱 두드러질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의료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환자 서울 쏠림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의대 휴학생인 의협 강기범 정책이사는 "중증환자가 서울로 쏠리면서 지방 대학병원은 환자 수도 적고, 고난도 술시 시술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병원의 위치에 따라 실습에서 질 차이가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방 의대생들은 심하게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도 "지방 암 환자의 30~40%는 서울 빅5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며, 지방에 남은 암 환자는 연명치료 등 소극적 치료 대상 환자군"이라며 "환자가 부족하니 의료진이 줄고, 남은 의료진이 당직과 응급수술 등을 담당하느라 피로도만 높은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이 때문에 충북의대 졸업생 49명 중 충북대병원 인턴 지원자는 13명에 불과했고, 상당수 졸업생이 수도권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한편, AI로 의료인의 생산성을 높여 지방의료 붕괴 등 의료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강 정책이사는 "우리처럼 지방의료 낙후 문제를 가진 미국은 헬스케어 바이오업체들이 의료인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계가 먼저 규제를 혁파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 등에 적극적인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려의대 이영미 교수도 "AI의 의학교육 활용에 대해 연구했는데, 놀랍도록 빠르고 다양하게 의료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며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이런 기술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