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희귀질환 치료 집중하도록 구조전환 지원사업 추진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희귀질환에 집중한 '특성화병원'으로 나아가야"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선택과 집중' 전략은 특정 분야를 선택해 이곳에 자원을 집중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며 전문화하는 전략이다.
모든 산업계 경영전략의 근간이 되며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병원 간 규모 경쟁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에 따라 병원을 특성화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치료에 집중하도록 진료구조를 전환하겠다고 발표해, 선택과 집중에 따른 특성화 전략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이에 상급종합병원은 모든 질환과 진료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백화점식 경영에서 벗어나 특정 중증·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는 특성화병원(특화병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본지는 2025년 신년특집호를 맞아 특정 중증·희귀질환 전문진료를 제공하는 특성화병원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와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 등을 조명했다.
백화점식 경영으로 의료자원 낭비·의료전달체계 왜곡
政 지원사업으로 상급종병은 특성화 분야에 진료 집중할 것으로 예상
그동안 상급종합병원은 규모 경쟁으로 인해 모든 질환과 진료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이른바 백화점식 경영이 문제점으로 제기돼 왔다. 이는 병상 과잉 공급과 외형 확대로 인한 의료자원의 비효율적 사용 등으로 이어졌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경증환자까지 진료하면서 중증도와 관계없이 환자가 몰려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됐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지난해부터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상급종합병원이 과밀한 진료환경에서 벗어나 중증·응급·희귀질환 중심의 진료체계로 전환하도록 해 필수의료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전체 47곳 상급종합병원 모두 시범사업에 참여한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질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전환되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의료비를 절감하면서 경증을 포함한 모든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희귀질환 환자에게 최적 치료를 제공하면서 고난도 진료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중증·응급·희귀질환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필요한 치료를 시기적절하게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은 각 병원이 가진 특화된 분야에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세암병원 최진섭 병원장은 "그동안 병원은 정부가 정한 상급종합병원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여러 진료과를 구성하고 병상 규모를 늘리며 백화점식 경영과 외래진료를 해왔다"며 "하지만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통해 중증·희귀질환 중심으로 치료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정해, 병원은 특성화병원을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성화병원은 한 곳에서 중증·희귀질환 진료, 검사, 치료까지 한 번에 가능하고 입원 시 문제가 생기면 바로 관리할 수 있다"면서 "중증·희귀질환 환자가 편리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하며 브랜드화에 성공한 상급종병 관심
이런 가운데 특정 중증·희귀질환 진료에 집중 투자하며 경쟁력을 확보하고 브랜드화에 성공한 상급종합병원 사례에 관심이 모인다.
먼저 국내 최초 혈액질환 전문병원인 가톨릭대 가톨릭혈액병원은 조혈모세포이식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거두면서 '혈액암의 4차병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8년 조혈모세포이식센터에서 가톨릭혈액병원으로 지위가 격상됐으며,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서울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등 세 곳이 네트워킹해 혈액질환 환자를 종합적으로 진료하는 삼각편대를 갖췄다.
가톨릭혈액병원 김희제 병원장은 "혈액암은 고형암과 비교해 발생 빈도가 낮은 희귀암에 속한다"며 "이 때문에 많지 않은 혈액암 환자를 전국의 여러 병원이 나눠 진료하는 방식은 혈액암 치료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혈액암 환자는 진단 후 치료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는 데다 1, 2차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다"면서 "질환 특성상 혈액암 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특성화병원이 필요했다. 지방에서 오는 환자를 빠르게 치료하고자 조혈모세포이식센터에서 혈액병원으로 격상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세암병원은 'The First & The Best'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최초 역사를 쓰고 있는 대표적 암 특성화병원이다. 연세암병원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연세암센터를 뿌리로 두고 50여 년 동안 국내 암 치료와 연구를 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2006년 직장암 환자에게 로봇수술을 시행, 1년여 만인 2007년에 100례를 기록했다. 또 2023년 국내 최초로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해 전립선암 환자 치료에 성공했다.
최 병원장은 "본 병원은 부인암센터, 유방암센터, 간암센터 등 센터별로 특성화해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다학제 협진을 통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며 "여러 진료분야 의료진과 보호자 그리고 환자가 만나 진단 및 치료 소견을 논의하면서 환자가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암 완치율과 생존율은 다른 병원에 못지않을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양대류마티스병원은 1998년 국내 최초 류마티스질환 전문 단일병원으로 개원해 대부분이 희귀중증난치질환인 류마티스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며, 특성화병원으로서 국내 류마티스질환 진료를 이끌고 있다.
지방 의료를 책임지는 상급종합병원도 특성화병원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화순전남대병원은 2018년 암 특성화병원으로 제2의 도약을 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20년간 축적한 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 암 연구 중심병원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구가톨릭의료원은 '간·담도·췌장질환 치료의 중심이 되겠다'는 목표로 올해 1월 3일 간담췌병원을 오픈했다. 병원에는 간담췌 전용 중환자실과 병동을 새롭게 갖춰, 대구·경북 지역의 중증 간담췌질환 환자가 서울에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불편함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간담췌병원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면서 국내 간담췌질환 치료 중심병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다.
아울러 경북대병원은 특성화병원은 아니지만 혈관기형클리닉을 운영하며 지방에서 혈관기형 환자 치료를 책임지고 있다. 경북대병원은 혈관기형 진단과 치료에 있어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대병원 관계자는 "성형외과, 이식혈관외과, 영상의학과 등 다학제협진을 통해 혈관기형 환자를 꾸준히 치료하고 있다"며 "클리닉을 특성화병원 규모로 키우진 않았지만, 병원에서 이 분야에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