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수준의 업무 가능한데도 응급실에 군의관 배치
박민수 차관 "어디 찢어져 피가 많이 나는 것도 사실은 경증"
의협 "경증과 중증 판단은 의사들도 쉽지 않은 판단"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응급실 상황이 점점 악화하지만, 정부는 연이어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과 의료계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전공의이들이 병원을 비우면서 내외산소 등 배후진료가 무너지면서 응급실 상황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로 환자들이 사망하거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군의관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발표해 비난을 사고 있다. 우선 응급실에 공중보건의 파견 건이다.
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응급의료 일일브리핑을 열고 군의관 250명을 의료기관 8곳에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박 차관은 "오늘부터 군의관 8차 파견을 시작한다. 파견 군의관 총 250명 중 15명은 의료인력이 시급한 집중관리대상 의료기관 5곳에 배치될 것"이라며 "강원대병원 5명, 세종충남대병원 2명, 이대목동병원 3명, 충북대병원 2명, 아주대병원 3명"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추가 235명도 응급의료를 중심으로 필요한 의료기관에 9일까지 배치하겠다는 설명이다.
현장에 있는 의사들 반응은 비관적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지금 이 상황을 군의관으로 막아보겠다는 복지부 발상이 어처구니 없다"며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아닌 군의관들은 응급 환자 분류도 못할 것이다. 응급실이라는 긴급한 곳에 의사만 배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군의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인턴 수준 정도일텐데, 정부는 군의관으로 응급실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이 없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복지부 공무원이 경증과 중증 판단까지
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응급실 이용을 줄여야 한다면서 경증과 중증을 판단하는 설명을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박민수 차관은 경증과 중증 구분에 대해 "본인이 전화해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며 "중증은 거의 의식이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마비 상태에 있는 경우가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픈 것은 경증에 해당되고,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나는 것도 사실은 경증"이라고 했다.
의사조차 경증과 중증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비의료인이 박 차관이 중증과 경증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협 "박 차관 말은 어처구니 없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답변"
대한의사협회는 박 차관의 말에 어처구니 없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답변이라고 맹비난했다.
의협은 "쉽게 내뱉은 차관의 경·중증 판단은 의사들도 쉽지 않은 것으로, 실제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처음에는 경증으로 진단받았다 추가 검사가 진행 되면서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들도 구분이 어려워 수많은 임상경험과 공부를 통해 판별해야 하는데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증이면 도대체 의사들은 레드 플래그 사인(위험 신호)은 왜 공부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런 식으로 쉽게 경·중증 판단이 가능하면 현재 국정운영의 상태가 진작부터 중증으로 판정됐다고 말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응급의학고 전문의인 박단 전공의비대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개탄합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박 비대위원장은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며 응급실에 걸어들어오는 환자는 정말 많다"며 "그중 진단 결과 뇌출혈, 심근경색인 경우는 정말 비일비재하다. 내원 당시 그들은 전화를 할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왔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박 차관을 비판했다.
이어 "박 차관의 말은 결국 소생 가능한 환자에게 지금이 아니라 사망한 후에 병원에 가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진단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중증과 경증을 나눌 수 있다면 트리아지(Triage)라는 응급 환자 분류 체계는 물론 6년의 의과대학 교육과 5년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 역시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