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다음으로 흔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치매

▲ 로빈윌리엄스 관련 인터뷰가 실린 피플지(출처: www.people.com)

"로빈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우울증이 아니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수잔 윌리엄스(Susan Williams)의 인터뷰.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의 배우자 수잔은 3일(현지시각)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남편이 자살한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고인이 자살한 결정적 원인은 종래에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이나 파킨슨병이 아니라, 루이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 DLB)였다"고 밝혔다.

수잔에 따르면 로빈이 처음으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 깨닫게 된 것은 2013년 11월, 사망하기 약 9개월 전이었다.

다음달부터 병의 진행이 본격화 되면서 일련의 증상이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심한 불안발작(anxiety attack)이나 근육강직(muscle rigidity)을 경험했고 인지능력이 떨어져 문을 열고 나갈 때 머리를 다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수잔은 "우울증은 50여 개 증상 중 하나에 불과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병이 진행됐다"며, "자신이 노인성 치매 초기 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이어 "의료진조차 부검 이후에나 정확한 사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서 "루이체 치매로 고통받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루이체 치매, 알츠하이머에 이어 치매 발병률 '2순위'

 

한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을 계기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루이체 치매. 그러나 인지도가 낮다고 해서 유병률마저 낮은 것은 아니다.

대한치매학회 김상윤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은 루이체 치매와 전두측두치매(Frontotemporal Dementia)를 가리켜'most common rare disease'라고 지칭한다. 말 그대로 '흔하지만 진단이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는 질환'이란 의미다.

현재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80~90여 개 질환 가운데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와 함께 가장 중요한 3대 원인질환으로 꼽히는데, 전 세계 알츠하이머병의 치료, 지원 및 연구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알츠하이머협회(Alzheimer's Association)는 "루이체 치매가 전체 치매 환자의 10~25% 가량을 차지한다"고 추정했다.

국내에서도 정확한 유병률이 보고된 바는 없지만 대략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는 환자 10명 중 1~2명 쯤으로 생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퇴행성 뇌질환으로 유발되는 치매 중에서는 알츠하이머병 다음 순위로 전두측두치매보다도 많다.


'감별진단'이 핵심...완치 어렵지만 치료반응은 뛰어나

▲ 대한치매학회 김상윤 이사장

'루이체'란 망가져 가는 신경세포 안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덩어리로서, 흔히 파킨슨병 환자의 주요 병변 부위인 뇌간의 흑질 부위에서 관찰된다. 대뇌 전체에 걸쳐 루이체가 광범위하게 발견될 경우, 알츠하이머병과 매우 유사한 치매 증상을 보인다.

학계에서는 이미 50년 전부터 이런 질환이 거론돼 왔지만 구체적인 진단 기준이 처음 마련된 것은 20년 전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사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들과의 감별진단.

김 이사장은 "폐암과 폐결핵이 다른 것처럼 루이체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은 일부 증상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질환"이라면서 "약물에 대한 반응과 증상의 진행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에 쓰는 약물을 잘못 사용할 경우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파킨슨병과도 '알파-시누클린(α-synuclein)'이라는 이상 단백질이 원인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다른 질환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며, "파킨슨 증상 이외 환시, 렘수면증상 등은 매우 다른 양상을 띤다"고 설명했다.

루이체 치매의 핵심증상으로는 가장 먼저 기억력 감퇴나 시공간에 대한 지남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인지기능 저하를 들 수 있다. 보통 알츠하이머병 말기에 나타나는 증상들로서, 하루에도 이러한 인지기능 변화가 극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외 질병 초기 단계부터 환시, 환청 등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거나 우울증을 호소하며, 몸의 경직, 서동증(bradykinesia), 진전(tremor) 등 파킨슨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로빈 윌리엄스 역시 오래 전부터 우울증, 불안증 등의 증상을 보였고, 자살하기 얼마 전부터는 초기 파킨슨병으로 진단받고 치료 중이었음을 수잔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루이체 치매의 증상이 매우 복잡한 데다 환자별 증상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초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울증이 다른 증상보다 훨씬 먼저 시작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 동안 우울증으로만 치료받거나 파킨슨병으로 진단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 경우 인지기능장애나 파킨슨 증상이 나타났을 때 우울증 치료제에 의한 증상과 구분하지 못해 초기 진단을 놓치기 쉽다.

루이체 치매의 진단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그 뿐이 아니다.

PET 검사 등에서 일부 특징적인 소견 보일 순 있지만, 대개 MRI에서는 아무런 이상 소견도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영상검사만으로는 진단이 불가능하다고. 부검을 통해 뒤늦게 밝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부검을 해보면 루이체 치매에 걸린 환자들의 뇌에서는 파킨슨병에 걸린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것 같은 루이체가 뇌간이나 대뇌 피질에서 관찰되고, 노인성 반(Senile plaque) 주위를 따라 관찰되기도 한다.

김 이사장은 "전형적인 환자는 진단에 어려움이 없으나 비정형적 특징으로 나타나거나 다른 질환과 겹쳐서 나타나는 경우 루이체 치매의 진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루이체 치매는 뇌 MRI상 정상 소견을 보이기 때문에 확진하기 위해서는 신경인지기능 검사 등을 추가로 실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단 진단된 다음에는 적절한 치료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알츠하이머병과 마찬가지로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증상이 다양하다 보니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알츠하이머병보다 좋고, 사용할 수 있는 약제도 많다.

김 이사장은 "루이체 치매는 약물치료에 대한 효과가 다른 어떤 치매보다 좋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치료 만족도가 높은 질환"이라면서 "파킨슨 증상과 치매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파킨슨병 전문의의 경우 치매에 대해 많이 공부해야 하고, 치매 전문의는 파킨슨병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최선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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