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 토론회서 찬반논쟁

지난 19일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베리아트릭, 정책위원회 주관으로 '비만수술 보험적용 어디까지 왔나?'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보험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차의대 한상문 교수(강남차병원 외과)는 "고도비만 환자에서 유일한 치료법인 수술의 보험적용은 필수"라는 강경한 주장을 펼쳤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최광순 부장(급여보장실 보장성평가부)이 참석해 국내 현 급여방침과 정부의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패널로 신성식 기자(중앙일보), 순천향의대 김용진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외과), 고민정 박사(한국보건의료원)가 참석해 비만수술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관점을 들어봤다. 

 

"고도비만수술, 이미 근거는 충분하다"

▲ 고도비만 수술의 보험적용을 주장한 차의대 한상문 교수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선 한상문 교수는 "고도비만수술의 치료적 효과는 이미 증명이 다 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임상연구는 불필요하다"면서 "수술요법은 고도비만 환자에서 체중감량뿐 아니라 재발을 막고 동반질환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못 박았다. 

전향적 연구를 진행할 수는 있지만 데이터가 나오기까지 비용, 시간이 들고 무엇보다도 내과적 치료만으로 효과가 불충분한 고도비만 환자들에게 수술요법과의 비교임상을 시행하는 것은 의사로서 윤리적 측면에서도 어긋난다는 것.

수술의 합병증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라면서 "구더기 없애는 일은 외과의들이 담당할테니 고도비만수술의 보험적용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대상,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문제를 포함해 수술 후 합병증 관리 등에 대한 문제에서는 학회 차원에서 충분히 준비하고 있으니 지켜봐달라는 입장이다.

 

근거, 정말 충분한가?

한 교수의 주장대로 고도비만 환자에서 수술적 치료의 근거는 정말로 충분한 것일까?

고도비만수술의 유효성을 입증한 대표적 연구는 1984년에 시작된 스웨덴의 대규모 코호트 임상인 SOS 연구다(NEJM 2007;357:741-52).

스웨덴의 고도비만 환자 4047명(남성 BMI≥34㎏/㎡, 여성≥38㎏/㎡)을 대상으로 수술적 치료와 비수술적 치료(대조군)를 비교·분석한 이 연구에서 수술군은 체중 및 투약감소 및 이로 인한 의료비용 감소를 보였고, 비만으로 인한 사망률이 24%까지 감소했다. 또한 추적 관찰 시 체중감량 효과가 수술 후 10~15년까지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 수술군과 비수술군의 평균 체중변화율 비교(NEJM 2007;357:741-52)

 

▲ 수술군과 비수술군의 누적사망률 비교(NEJM 2007;357:741-52)

2011년에는 동일한 연구에 대해 심혈관계 영향만 별도로 분석했는데, 수술군에서 심혈관사망(HR, 0.47; 95% CI, 0.29-0.76) 및 심혈관사건 발생(HR, 0.67; 95% CI, 0.54-0.83)이 비수술군 대비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심혈관계 혜택을 입증했다(JAMA 201;307:56-78).

이 외에도 제2형 당뇨병을 포함한 동반질환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위밴드수술(LAGB)의 체중감소 및 삶의 질 개선 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무작위대조연구(RCT)가 여러 차례 시행돼 왔는데, 가장 최근에 발표된 연구는 고도비만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3년 데이터로 지난 3월 31일 NEJM 온라인판에 게재됐다(Schauer PR, et al).

 

고도비만으로 파생되는 사회·경제적 비용 무시 못해

축적된 임상적 데이터들을 살펴 봤을 때 한 교수의 발언을 일부 외과의들의 편향된 주장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고민정 박사(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진행한 연구를 통해 국내 환자들에 대한 근거가 잘  마련돼 있고, 근거가 부족해서 급여전환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급여를 위한 토론회도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지난 2012년 9월에는 한림의대 유형준 교수(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외 전문의료진들과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관계자들, 환우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고도비만 환자에서 수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한국보건의료원 원탁회의가 진행됐다.

"고도비만은 치료가 어렵고 합병증 유발 및 재발이 빈발하므로 적절한 치료 및 사후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것과 "고도비만 환자의 수술요법은 국내외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효한 치료법"이라는 것이 지난 회의에서 도출된 결과다.

아울러 고도비만수술의 비용-효과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됐는데, "평생 1인당 기대의료비용과 질보정수명(QALY),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 등의 측면에서 비수술요법에 비해 비용 효과적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제로 2012년 국민건강통계 자료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30㎏/㎡를 기준으로 봤을 때 국내 성인 고도비만율은 10여 년새 2.3%에서 5.0%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고도비만이 증가함에 따라 고혈압, 당뇨병 등 관련 합병증 발생이 늘고 있고,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의료비 증가율이 세계 랭킹 2위에 이르렀다. 

한 교수는 국내에서 진행된 후향적 다기관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QALY를 이용해 고도비만수술의 경제성 분석을 시행했을 때 수술군은 비수술군 대비 170여 만원의 비용 혜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수술군에서는 비급여 기준으로 산정했고, 비수술군에서는 보험료를 적용해 계산한 값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비용차이가 더 크게 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인식 개선 통한 국민적 합의 도출돼야

한편 이 날 토론회의 두 번째 연자로 참석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최광순 부장은 "국민건강보험은 한정된 재정 내에서 운영돼야 하고, 민영보험과는 달리 보장 범위 설정에 있어 사회적 합의가 반영돼야 하는 만큼 국민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부장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최근에는 급여개선위원회에서 시민위원회와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반영하는 등 시민참여를 통한 급여 인정 사례가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부터 비만수술의 급여 문제가 여러 차례 논의돼 왔지만 국민참여위원회의 투표결과 암이나 심혈관질환과 같은 질환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아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것.

비만수술의 비용효과성이나 병적 비만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대국민 홍보를 통한 인식개선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두고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는 "우리 사회의 병적 비만에 대한 낮은 인식과 고도비만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아직까지도 비만을 자기관리 부족, 게으름 탓으로 돌리거나 비만수술을 성형과 같은 미용수술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는 것이다.

신 기자는 "고도비만은 극빈층의 질환이고, 실직과 은둔생활로 이어져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트랩에 갖힐 위험이 높다"면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을 경우 10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고도비만 환자를 대중 앞으로 끌어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회적 시선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고도비만수술의 유용성은 이미 입증된 만큼 언론홍보 등을 통한 대국민 인식개선과 공청회 등 구체적 절차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날 학회 현장에서는 "고도비만 환자에서 수술치료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고, 이들의 신체정신적 고통은 이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결론으로 열띤 토론이 마무리 됐다. 결정은 정부의 몫이지만 이후 학계의 행보가 주목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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