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보고서 "현행 지불제도, 의료비 통제 기전 없어"
연준흠 보험이사 "의료비 통제를 위해 지불제를 바꾸는 건 말도 안 돼"
우봉식 원장 "묶음지불제, 의료 질 하락으로 환자 의료비는 더 오를 것"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이주민 기자]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을 위한 대안적 지불제의 하나로 묶음지불제가 제시됐지만, 의료계는 의료비 증가를 막기 위해 지불제도를 변경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은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립해야 가능한 것이지 지불제도 변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지불제도는 행위별수가제와 포괄수가제, 신포괄수가제 등으로 이뤄져 있다. 

행위별수가제는 진찰, 검사, 처치 등 의료진의 진료 행위를 모두 합산해 진료비를 산정한다. 

포괄수가제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종류나 양에 관계없이 7개 질병의 진료 행위를 미리 책정된 진료비로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포괄수가제는 포괄수가제에 행위별수가제적인 성격을 반영한 모형으로, 입원료와 처치 등 진료에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포괄수가제로 묶고, 의사의 수술이나 시술 등은 행위별 수가로 별도 보상하는 제도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지불제도로는 건강보험 재정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심평원 "의료비 통제 기전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가능"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위한 지불제도 연구'를 발간하며 묶음지불제 적용 방안을 제안했다.

묶음지불제는 대안적 지불제도 중 하나로, 건강 상태나 중재 과정의 연관성에 따라 일련의 서비스를 묶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평원 연구진은 "현행 지불제도는 의료비 증가 통제 기전이 없다"고 평가하며, "의료비 지출 증가로 인해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연구진은 포괄수가제 및 신포괄수가제 대상 질환 등에 묶음지불제 요소를 적용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연구진의 주장처럼 건강보험 재정은 2032년에는 누적 적자가 61조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 23조8000억 원을 모두 소진하고, 2032년에는 누적 적자가 61조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의료계, 의료비 통제가 아닌 효율 및 합리성이 중요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의료계는 의료비 증가를 막기 위해 묶음지불제를 하겠다는 접근에는 반대하는 모양새다.

대한의사협회 연준흠 보험이사는 의료비 통제 기전을 위해 묶음지불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오히려 신의료기술이나 약재 등을 포괄수가제와 신포괄수가제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불제도 개편 목적은 의료비 통제가 아닌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료서비스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 연 이사의 설명이다. 

연 이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불제도는 매우 복잡해 개인적으로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의료비 통제가 제1의 목적이라면 어떤 논의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의료행위나 약재, 치료제 등이 도입되면 포괄수가제와 신포괄수가제에서도 3년 정도는 비포괄 영역으로 유지하다가 사용 빈도 등 여러 데이터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수가를 조정·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 이사는 "이런 조건들이 반영돼야 정부와 의료계가 상호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며 "신포괄수가제에 대한 의료계 저항이 심한 가운데 본사업까지 진행되면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의료계 저항이 심한 상황에서 의료비 통제를 목적으로 지불제도를 개편해서는 안 되고, 합리적인 개선안을 우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도 연 이사와 비슷한 주장을 지난 2022년에 펼친 바 있다.

병의협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수가는 매우 낮은 수준이며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의료 이용량과 행위량을 통제해 강제로 의료비를 통제하면 결국 의료기관들이 경영난에 시달리다 폐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며 "건보재정 안정화를 명분으로 지불제를 개편한다는 것은 문제 해결의 순서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봉식 원장 "묶음지불제의 의료비 통제 기전은 착시효과"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묶음지불제는 의료비 증가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더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묶음지불제는 의료비 증가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더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묶음지불제는 의료비를 더 증가시킬 것이라 주장했다.

묶음지불제 시행은 의료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환자들은 합병증이나 다른 질병으로 의료기관을 다시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게 우 원장의 논리다.

우 원장은 지난 1일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지불제도를 변경한다는 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가서 눈 흘기는 꼴"이라며 "의료비를 줄이려면 지불제도가 아닌 의료전달체계를 손봐야 한다"고 밝혔다.

1998년 이전에는 환자가 아프면 1차 병원(의원급)을 방문해 진료받고, 그 이후 1차 진료를 토대로 2차(종합병원)와 3차(상급종합병원) 병원을 순차적으로 방문했지만, 정부가 이런 의료전달체계를 폐지하면서 환자는 바로 3차 병원, 즉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우 원장은 무너진 의료전달체계가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우 원장은 "환자들은 아프면 당연히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큰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의료비 통제를 위해 지불제도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묶음지불제를 시행하면 의료기관은 정해진 비용에서만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이는 의료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면서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결국 합병증이나 기존 병과 관련된 다른 질병으로 병원에 다시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