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외치는 제약업계...GPS·콜·사진촬영도 디지털로 봐야하나
매출 신장 두고 동상이몽...“영업사원 역량에 맡겨야” VS “관리 필요해”

[메디칼업저버 손형민 기자] 의원 영업을 맡고 있는 한 영업사원은 11시에 있을 거래처 미팅 준비를 한다. 이 거래처는 매출이 높은 곳 중 하나라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오전 중에 6건의 콜을 찍어야 하는 실정. 어떤 거래처는 담당자가 바뀐 이후로 방문 조차 어렵다. 매출이 많이 나오는 거래처에 더 집중해야 하지만 콜을 찍어야 하기에 30분 거리의 거래처로 이동해 근처 100m 반경 안에 들어간 후 콜을 찍고 업무보고를 시작한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GPS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하나의 전략으로 봐야할까

제약업계는 전 부문, 부서에서의 디지털화를 외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앞다퉈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GPS·콜과 같은 올드스쿨 영업 관리방식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몇몇 제약사들은 거래처 방문 후 ‘인증샷’을 찍어 관리자에게 보내야하기도 한다.

직원 관리의 차원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신뢰의 유무로 봐야하는 것인지 방식의 옳고 그름은 명확하지 않지만, 근래 국내제약사들이 외치는 디지털 중심 정책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건 확실하다.
 

반경 100~200m 안에서 찍어야하는 콜…효율적인 영업 방식일까

코로나19(COVID-19)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x)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디지털화를 앞당겼다.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일 무렵 병원 방문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기자 제약업계는 일제히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 미팅, 챗봇, 플랫폼 등을 이용해 디지털화를 추구하며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실제로 대다수 회사들은 e-detail, 디지털 플랫폼 등을 만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들을 개발 및 활용해 기존과는 다른 디지털 영업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다만,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몇몇 회사들은 ‘대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해당 영업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 국내사 담당자는 “경쟁력 있는 제품군을 갖추지 못한 회사일수록 많은 고객을 만나는 수 밖에 없다”며 “성실하게 눈도장을 찍어야 우리 제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늘어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영업 방식은 글로벌 제약사, 국내사 할 것 없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는 기조와는 반대되는 현실이다.

영업 경쟁력이 없다해도 직원이 현재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직원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개인정보법 위반과도 결부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또 대다수 국내사 영업부는 월마감, 분기마감 시기에 담당 거래처들에 대한 리뷰를 하기 때문에 날마다 매출이 나오지 않는 거래처를 방문하는 것은 동선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한 영업사원은 “매출이 많은 거래처를 연일로, 연달아 방문해야하는 일들이 생기지만, 담당하는 거래처 혹은 신규 거래처 발굴을 통해 하루 할당된 콜 수를 찍어야 해 비효율적인 동선을 짜게 된다”며 “이로 인해 소위 ‘가라콜’을 찍기도 하고,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은 “매출이 좋든, 나쁘든 특정 기간에 대한 매출, 피드백 등의 랩업(wrap-up)은 필수로 진행하기에 매일 근무 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리뷰할 시간은 많다”며 “담당하는 거래처의 매출이 잘 나왔냐, 안나왔냐가 중요하지 시간마다, 일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보고하는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루에 18콜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는 제약사 혹은 지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콜이 많다고 매출이 올라간다는 관리자들의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콜이나 GPS가 없어지면 이를 대체하기 위한 무언가가 생길 것이라고 영업사원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거래처 방문 인증샷이다.

콜 시스템이 없어진 어느 한 회사는 거래처 방문 시 확인을 위한 사진을 촬영한 후 전송을 요구하는 출석체크 방식을 도입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 영업사원은 “어느 날은 병원 문 앞에서, 어느 날은 병원 화장실에서 사진을 찍어 위치를 보고하기도 한다”며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눈치까지 보게 돼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이어 “사진 촬영 후 전송하는 것은 콜과 다름 없는 보고 형태”라며 “차라리 영상통화나 방문 도장을 받아오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영업 보고, 직원 관리 측면에서 외근직 관리 및 매출 관리를 위해 업무보고는 필수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영맨들과의 인식 차이가 벌어지는 점이다. 

한 국내사 관계자는 “일비 시스템이 있어 일비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 관리자로서 확인할 의무가 있고, GPS나 콜이 없다면 영업사원들이 어떤 고객을 만나고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 피드백을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매출이 줄면 연대 책임이라 팀원 및 거래처 관리를 위해서는 GPS, 콜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의 보고 방식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이는 비단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영업 직무를 담당 및 관리하는 직무자들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며 “일과 보고는 외근직이든, 내근직이든 다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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