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당뇨병 환자를 진료하는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오늘도 힘들다. 병원을 찾는 수많은 당뇨병 환자를 정해진 시간에 보느라 하루가 짧다. 주기적으로 외래에 오는 환자가 혈당을 잘 관리해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줘야 한다. 

환자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내분비내과 의사는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고 당뇨약도 잘 먹어야 합니다"라며 잔소리꾼을 자처한다. 당뇨병은 평생 관리해야 하니 환자가 싫어해도 꼭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오늘도 행복하다. "혈당이 좋아졌어요. 환자분 관리 잘하고 있네요"라는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짓는 환자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 환자를 오랫동안 자주 만나다 보니 가까운 지인이 여럿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당뇨병 환자의 최적 혈당 관리를 위해 평생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환자가 걸어가는 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가 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래서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당뇨병 환자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오늘도 달린다. 진료뿐 아니라 미래 당뇨병 치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는다. 

본지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당뇨병 환자와 행복한 동행을 꿈꾸는 고대 안암병원 김신곤 교수(내분비내과),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내분비대사내과), 인제대 일산백병원 노정현 교수(내분비대사내과)를 만나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간 21주년-①] 다시 태어나도 내 선택은 '내분비내과' 의사

[창간 21주년-②] 교과서 벗어나 당뇨병 환자 마음 속으로

[창간 21주년-③] 좋은 내분비내과 임상의·연구자·교육자를 꿈꾼다

■ 당뇨병 이외의 관심 분야 또는 취미가 있다면?

김대중 교수(이하 대중): 여행을 기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은 식물 키우기에도 관심이 많다. 연구실과 집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운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건 방울토마토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잘 자란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면 싹이 자라 커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열매를 맺으면 먹기도 한다. 식물키우기와 함께 평소 독서를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매일 저녁 책을 읽으며 와인 한 잔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다.

김신곤 교수(이하 신곤): 내 취미는 독서다. 집에서 책을 읽고 여행 가서도 책을 본다. 휴가 중 하루는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움 중 하나다.

노정현 교수(이하 정현): 2년 전부터 등산을 다니고 있다. 친구와 함께 시작해 요즘은 혼자도 다닌다. 코로나19(COVID-19)가 시작됐을 당시 50세를 넘기면서 '한라산 백록담에는 올라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두 달 뒤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한 이후 매일 산에 올랐다. 집 근처에 2.5km를 걸어야 하는 산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 거리가 힘들었다. 그런데 매일 등산하다 보니 체력이 늘었다. 환자들과 이웃사촌으로 산에서 만나면서 친밀감도 쌓게 됐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진료실에서 환자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생겨 좋다. 산악회에 가입하진 않았지만 중년들이 가입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 시간이 꽤 남았지만, 정년 이후에는 어떤 삶을 꿈꾸나? 

정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의사로서 40년 동안 일했으니, 정년 이후에는 의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정년 이후 실행에 옮겨도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산에 카페를 차리는 것이다. 

2년 전 어머니와 집을 합치며 강원도에 전셋집을 얻었다. 이곳에서 산을 다니다 보니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리산을 등산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둘레길에 사람이 지나가다 쉴 수 있는 카페 하나를 본 적 있다. 사장님은 그 동네가 좋아 그곳에 카페를 차린 것 같았다. 카페를 보며 나도 등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신곤: 정년 이후에는 의사가 찾아오기 힘든 오지에 있는 보건지소에서 의사의 삶을 살고 싶다. 보건소는 행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 보건소보단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보건지소에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싶다. 그곳에서 여유 있게 자연을 즐기고 독서도 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다.

대중: 지금은 정년 이후에도 환자를 진료하는 삶을 사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환자를 보지 않는 삶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정년 이후 개원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딸이 식품영양학과 대학생인데, 졸업 후 내가 개원하고 딸이 영양사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딸 때문에 개원할지도 모르겠다(웃음). 

또 하나는 식물도감을 만들고 싶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가 식물이 싹을 틔울 때부터 자라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나는 설명을 적어 식물도감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내는 식물을 세밀하게 그리기 어렵다며 동의하지 않았다(웃음). 

■ 의사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대중: 정년까지 약 13년 남았는데, 큰 욕심 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목표다. 요즘 새로운 게 없나 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학교에서 해볼 수 있는 새로운 도전 또는 자리가 없을지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아주대병원이 평택에 분원을 짓고자 하는데, 성사된다면 분원 설립을 함께 준비해볼 생각이다. 지금 아주대병원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틀이 있어 내분비내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적이다. 새로운 병원으로 가게 되면 내 스타일대로 준비해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현: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의사로 남는 것이다. 의사는 평생 학습자라고 생각한다. 당뇨병 외에도 공부해야 하는 내분비질환이 많으므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공부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또 빠르게 바뀌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목표다. 

김대중 교수는 평소에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촉을 세우면서 이에 대한 본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부럽다. 

사회는 빨리 바뀌는데 나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뒤처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하고자 한다. 

신곤: 학생들에게 임상의로서 늘 좋은 의사가 되라고 한다. '이미 됐다'라는 의미가 아닌 '되어간다'라는 뜻으로,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도 당연히 임상의로서 부족한 모습이 있다. 부족한 모습은 옅어지고 좋은 모습은 더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은 임상의는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본인의 일로 만드는 의사다. 하지만 이는 신적인 영역으로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의사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직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로 나에게 평생의 숙제는 좋은 임상의가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좋은 연구자는 좋은 문제에 좋은 답을 만드는 사람이다. 

의학에서 좋은 문제란 미충족 의료에 가까운 문제로, 이를 해결하고자 연구하는 사람이 좋은 연구자다. 

나는 후학들에게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지 말고, 논문을 내기 위한 논문을 쓰지 말라고 한다. 좋은 연구자로서 후학들이 한 편일지라도 누군가의 인생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논문을 쓰길 바란다. 

아울러 좋은 교육자로서 나를 뛰어넘는 후학들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내분비내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적어 나는 아직 좋은 교육자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을 잘 만드는 것도 좋은 교육자로서 목표다. 

■ 환자에게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나?

대중: 평소에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환자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할 때 상담받을 수 있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로 남고 싶다. 

정현: 비슷하다. 환자 편이 되어주고 무슨 일이 있을 때 해결해줄 수 있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신곤: 인생의 이력을 쌓는 것이 성취이자 성공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이야기하길, 이력이 아닌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이 나에게 남길 말을 신경 쓰라고 한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환자들이 '아까운 선생님, 좋은 선생님 떠났네'라고 기억해준다면, 의사로서 환자와 최고의 관계를 맺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