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의사 3인 솔직 토크쇼] 내분비내과 김신곤·김대중·노정현 교수
김신곤 교수 "의사는 환자의 곡절을 상상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교수 "환자가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노정현 교수 "환자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

▲메디칼업저버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당뇨병 의사 3인의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토크쇼를 진행했다. (좌부터)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 고대 안암병원 김신곤 교수, 인제대 일산백병원 노정현 교수. ⓒ메디칼업저버
▲메디칼업저버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당뇨병 의사 3인의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토크쇼를 진행했다. (좌부터)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 고대 안암병원 김신곤 교수, 인제대 일산백병원 노정현 교수. ⓒ메디칼업저버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당뇨병 환자를 진료하는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오늘도 힘들다. 병원을 찾는 수많은 당뇨병 환자를 정해진 시간에 보느라 하루가 짧다. 주기적으로 외래에 오는 환자가 혈당을 잘 관리해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줘야 한다. 

환자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내분비내과 의사는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고 당뇨약도 잘 먹어야 합니다"라며 잔소리꾼을 자처한다. 당뇨병은 평생 관리해야 하니 환자가 싫어해도 꼭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오늘도 행복하다. "혈당이 좋아졌어요. 환자분 관리 잘하고 있네요"라는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짓는 환자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 환자를 오랫동안 자주 만나다 보니 가까운 지인이 여럿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당뇨병 환자의 최적 혈당 관리를 위해 평생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환자가 걸어가는 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가 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래서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당뇨병 환자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오늘도 달린다. 진료뿐 아니라 미래 당뇨병 치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는다. 

본지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당뇨병 환자와 행복한 동행을 꿈꾸는 고대 안암병원 김신곤 교수(내분비내과),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내분비대사내과), 인제대 일산백병원 노정현 교수(내분비대사내과)를 만나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간 21주년-①] 다시 태어나도 내 선택은 '내분비내과' 의사

[창간 21주년-②] 교과서 벗어나 당뇨병 환자 마음 속으로

[창간 21주년-③] 좋은 내분비내과 임상의·연구자·교육자를 꿈꾼다

■ 초창기와 지금의 진료 방식에 변화가 있나?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내분비대사내과). ⓒ메디칼업저버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내분비대사내과). ⓒ메디칼업저버

김대중 교수(이하 대중): 나이 드는 만큼 환자를 보는 것 같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왜 이렇게 안 했느냐"라며 환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이 환자뿐 아니라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라는걸 알게 됐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나이에 맞게 변하는 것 같다. 

노인 당뇨병 환자는 질환 때문에 많은 것을 절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환자에게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면서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하지 않는다. 

우리 목표는 환자가 당뇨병을 잘 관리해 합병증이 생기지 않고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자제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는 환자에게는 약을 하나 먹고 조금의 자유를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더 환자를 공감하는 방향으로 진료하고자 한다.

김신곤 교수(이하 신곤): 초창기에는 환자의 생활습관을 적극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환자에게는 생활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곡절이 있음을 알게 됐다. 

예로 당뇨병 여성 환자가 암 투병 중인 남편을 간병하고 있다면 생활습관을 바꿔 혈당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의사가 알지 못하고 환자에게 혈당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환자는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혼낸다'라고 생각한다. 

이제 의사는 환자의 곡절을 상상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내 모토는 '박수치는 의사'다. 혈당이 좋아지면 박수를 쳐주고, 관리되지 않고 있다면 "이번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데 안타깝네요. 다음에는 꼭 박수칠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혼내지 않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당뇨병 환자를 위해 의사와 환자 간 관계 형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정현 교수(이하 정현): 나도 비슷하다. 환자들은 진료 후 "오늘은 혼나지 않았네요"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혈당이 나쁘다"라는 말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지금은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 그동안 진료한 당뇨병 환자 중 잊지 못할 환자가 있다면?

▲인제대 일산백병원 노정현 교수(내분비대사내과). ⓒ메디칼업저버
▲인제대 일산백병원 노정현 교수(내분비대사내과). ⓒ메디칼업저버

정현: 연수 가기 전 내게 용돈과 함께 손편지를 전해준 할아버지 환자가 생각난다. 연수 갈 당시 우리 병원에서 10여 년 동안 진료받은 환자였다. 할아버지에게 1년 정도 연수에 다녀온다고 인사하니 진료받은 이후 다시 병원에 찾아와 나에게 용돈 하라며 10달러 3장과 손편지를 전해줬다. 

연수를 다녀왔을 때 할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인해 다른 진료과에 입원해 있었다.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그 할아버지가 지금도 많이 생각난다.

신곤: 18년 인연의 오누이가 있다.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비정부기구(NGO)에서 강북지역 독거노인을 진료하러 갔을 때 만났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비만했으며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당뇨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왔다. 

오누이를 관리해줄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은 과식?·?폭식하는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병원에서 오누이를 치료하며 삼촌 같은 관계를 맺고 성장 과정을 함께 했다. 

어려웠던 점은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인슐린을 투여하며 경구용 치료제를 먹는데도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았다. 그나마 오누이 중 오빠는 GLP-1 수용체 작용제를 맞아 그동안 관리되지 않았던 혈당이 좋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혈당이 나빠 당뇨병 '유산효과(legacy effect)'에 따라 당뇨병성 망막병증이 생겨 시력이 떨어지고 신장기능도 나빠졌다. 내 아픔이다. 오누이가 나와는 개인적 관계를 맺고 진료는 다른 의사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오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망막병증을 치료해야 하는 것은 속상하다. 

대중: 아주대병원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다 보니 나에게 오랫동안 진료받던 노인 환자들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노부부가 함께 병원을 찾다 한 분이 돌아가셔서 남은 분이 우울해하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애환이 때로는 나를 울적하게 만든다. 언젠가부터 환자들과 사진을 찍고 차트에 남겨놓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혹시나 환자에게 영정사진을 찍자는 느낌을 줄까 봐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 내분비내과 의사의 길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었나?

▲고대 안암병원 김신곤 교수(내분비내과). ⓒ메디칼업저버
▲고대 안암병원 김신곤 교수(내분비내과). ⓒ메디칼업저버

신곤: 없다. 다시 태어나도 내분비내과 의사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진료과가 내분비내과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은 단판승부로 완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분비내과 의사는 환자의 도우미 역할을 하면서 환자와 평생 동행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도 그만큼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 내분비내과는 좋은 선택이다. 

대중: 내분비내과만큼 좋은 진료과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분비내과가 정말 좋다. 내분비내과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누릴 수 있고 근본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진료과라는 점에서 만족한다. 그런데 후배들이 내과 전문의 취득 이후 내분비내과를 많이 선택하지 않아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하고 있다. 후배들이 내분비내과를 많이 선택하면 좋겠다.

■ 후배 의사들이 어떤 의사로 성장하길 바라나?

신곤: 의대생들에게 앞으로는 지금과 다른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가진 탁월함이 더는 탁월한 게 아닌 시대다. 의대에 입학하려면 성적이 전국 상위 0.1%여야 한다.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공부만 하고 공부에 탁월함을 보인 학생들이 의대에 입학한다. 탁월함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습득해 정답을 찾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인공지능(AI)이 가장 잘한다. 즉 다가오는 시대는 의대생들의 탁월함이 뛰어난 게 아닐 수 있다. 또 의대생들은 다른 의미로 인생의 곡절이 없다. 아파도 안 되고 사고를 쳐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의사가 만나는 환자는 인생의 곡절이 많다. 그렇다 보니 의대생들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의대 교육이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 공감을 교육하지 않으면, 똑똑하고 성실한 의대생들은 환자를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환자를 진료하며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해석하는 일을 AI가 상당 부분 해결해준다. 하지만 AI는 사람과 달리 오감으로 소통하는 것을 못 한다. AI 시대에 의사들이 도태되지 않으려면, 소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지 않으려면 의사는 '공감하는 인간(Homo Empathicus)'이 돼야 한다. 

이제 의사는 환자와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환자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대 교육은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며 공감 능력을 키우는 목적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신곤: 직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교육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를 직접 만나 환자가 경험하는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상상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또 전 세계에 많은 아픔과 고통의 현장이 있다는 점에서 긴급구호현장을 찾거나 취약계층 진료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의대생에게 많이 제공해야 한다. 공감이 어렵다면 '본인이 큰 병을 앓는다'라고 상상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공감능력을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은 교육학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은 이야기다. 공감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 의사는 환자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중: 아주의대는 수원시 독거노인과 의예과 학생을 연결, 의학적 지식이 없어도 학생들이 독거노인을 만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병원은 의사 혼자 근무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간호사, 의료기사 등과 한 팀이 돼 환자를 진료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능력을 쌓는 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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