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구팀, RCT 참가자 개별 데이터 메타분석
높은 혈압, 수정 가능한 당뇨병 위험요인으로 확인
당뇨병 위험, ACEI·ARB 낮춰…베타차단제·이뇨제 높여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특정 항고혈압제가 새로운 2형 당뇨병(이하 당뇨병) 발생을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기존 무작위 대조군 연구 참가자들의 개별 데이터를 메타분석한 결과, 항고혈압제인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등 RAS 억제제는 당뇨병 위험을 유의하게 낮췄다.

이와 달리 베타차단제와 티아지드계 이뇨제는 당뇨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슘채널차단제(CCB)는 당뇨병 위험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아, 당뇨병 발생과의 연관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연구는 개별적인 당뇨병 위험에 따른 항고혈압제 선택 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 결과는 The Lancet 11월호에 실렸다(Lancet 2021;398(10313):1803~1810).

높은 혈압이 수정 가능한 당뇨병 위험요인인가?

혈압을 낮추면 당뇨병 환자의 미세혈관 또는 대혈관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혈압 강하를 통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즉 높은 혈압이 수정 가능한 당뇨병 위험요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이 없는 성인 410만명 대상의 코호트 연구에 의하면, 수축기혈압이 20mmHg 증가하면 당뇨병 위험은 1.77배 상승했다(J Am Coll Cardiol 2015;66(14):1552~1562). 그러나 관찰연구로서 교란요인과 역인과관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혈압과 당뇨병의 인과관계는 불확실하다.

이와 함께 항고혈압제와 관련된 예방효과나 이상반응이 혈압 강하 또는 약물의 치료표적외 효과(off-target effect) 때문인지도 불분명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따라 주요 가이드라인에서는 당뇨병 예방 관리전략으로서 약물적 또는 비약물적 혈압 강하와 관련된 명확한 권고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연구는 혈압 강하 치료에 대한 대규모 무작위 연구에서 개별 참가자 데이터를 활용해 혈압 조절에 따른 새로운 당뇨병 발생 가능성을 평가했다. 이어 다섯 가지 항고혈압제 계열의 당뇨병 위험을 확인·비교했다. 

수축기혈압 5mmHg 감소 시 당뇨병 위험 11%↓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혈압 강하에 따른 당뇨병 위험 평가는 개별 참가자 데이터 메타분석으로 진행됐다. 무작위 대조군 연구에서 각 군에 대해 최소 1000인년(persons-years)의 추적관찰을 진행했고 특정 항고혈압제 계열과 위약 또는 다른 항고혈압제 계열을 비교한 1차·2차 예방연구가 대상이 됐다. 등록 당시 당뇨병으로 진단됐던 참가자와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분석에서 제외됐다. 

최종적으로 1973~2008년 진행된 19개 무작위 대조군 연구의 개별 참가자 14만 5939명의 데이터가 분석에 포함됐다. 남성이 60.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추적관찰 4.5년(중앙값) 동안 9883명이 당뇨병을 새롭게 진단받았다. 

분석 결과, 수축기혈압이 5mmHg 감소하면 당뇨병으로 새롭게 진단될 가능성이 11%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HR 0.89; 95% CI 0.84~0.95). 이 같은 결과는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의미 있게 다르지 않았다. 

ACEI·ARB, 위약 대비 당뇨병 위험 16%↓

이어 개별 참가자 데이터 네트워크 메타분석을 이용해 다섯 가지 항고혈압제 계열 치료에 따른 당뇨병 위험을 조사했다. 다섯 가지 항고혈압제 계열은 ACEI, ARB, 베타차단제, 티아지드계 이뇨제, CCB 등이다. 분석에는 8개의 위약 대조군 연구와 14개의 약물 간 1:1 비교 연구 등 22개 임상연구가 포함됐다.

그 결과, 위약과 비교해 ACEI(RR 0.84; 95% 0.76~0.93)와 ARB(RR 0.84; 95% CI 0.76~0.92])는 새로운 당뇨병 위험을 모두 16% 의미 있게 낮췄다. 

그러나 베타차단제(RR 1.48; 95% CI 1.27~1.72) 또는 티아지드계 이뇨제(RR 1.20; 95% CI 1.07~1.35)는 새로운 당뇨병 위험을 각 48%와 20% 유의하게 높였다.

CCB는 당뇨병 위험과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RR 1.02; 95% CI 0.92~1.13).

"당뇨병 발생 우려되면 ACEI·ARB 선택해야"

이번 연구는 혈압을 낮추는 것이 당뇨병 예방에 효과적인 관리전략임을 명확히 한다. 높은 혈압은 수정 가능한 당뇨병의 위험요인이라는 의미다. 

이와 함께 항당뇨병제 계열에 따라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이 다름을 시사한다. 이는 치료표적외 효과로 인해 항당뇨병제가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양적·질적 영향이 다르며, 그중 ACEI와 ARB가 가장 좋은 결과를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를 진행한 영국 옥스퍼드대학  Milad Nazarzadeh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혈압 강하가 기존에 확인된 심혈관계 사건 위험 감소 혜택에 더해 당뇨병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항고혈압제 계열별 당뇨병 위험이 다르다는 결과는 환자의 개별적인 당뇨병 위험에 따라 항고혈압제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RAS 억제제인 ACEI와 ARB는 당뇨병 위험이 우려될 때 선택해야 한다"면서 "반면 이들 환자에게 베타차단제와 티아지드 이뇨제 처방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Matthew A. Cavender 교수는 논평을 통해 "기존 근거와 마찬가지로 RAS 억제제가 당뇨병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번 결과에 동의한다"며 "그동안 쌓인 근거를 바탕으로 혈압 강하에 더해 RAS 억제제 치료는 당뇨병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전략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 심혈관 또는 당뇨병 학회의 가이드라인은 유럽심장학회(ESC) 가이드라인을 따라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SC 가이드라인에서는 고혈압 치료에 RAS 억제제(CCB 또는 티아지드계 이뇨제 병용) 시작을 Class I으로 권고한다. 미국 주요 학회도 이와 유사하게 제시하고 있으나, CCB 또는 티아지드계 이뇨제보다 RAS 억제제를 선호하도록 권장하는 환자는 단백뇨가 있는 환자로 제한한다.

Cavender 교수는 "미국인의 약 13%가 당뇨병 환자이고 34.5%가 당뇨병전단계다. 당뇨병 발생률과 유병률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며 "RAS 억제제는 고혈압 치료의 초석이다. 이번 연구는 미국 가이드라인이 ESC와 같이 RAS 억제제를 단백뇨가 있는 환자뿐 아니라 모든 고혈압 환자에게 1차 치료제로 투약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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