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유교문화로 뇌기증 쉽지 않아…전문가들 "뇌기증 문화 확산 필요"

▲이미지 출처 :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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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약 1.4kg으로 인체 에너지의 20%, 전체 혈액량의 4분의 1을 사용하는 신체기관.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0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곳. 바로 인체의 '소우주'라고 불리는 '뇌'이다. 

인간의 유전자서열정보가 밝혀지면서 인류는 다음 미개척 영역인 뇌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인간의 뇌를 이해하면 치매,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정복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미국은 2013년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를 출범하며 인간의 뇌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주도권을 갖기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같이 뇌연구 활성화를 위해 외국에서는 뇌은행(Brain Bank)을 운영하며 국가 차원에서 뇌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출연연구기관인 한국뇌연구원 산하에 한국뇌은행을 설립하고, 뇌연구 지원을 위해 뇌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권역별 협력병원과 한국뇌은행네트워크(Korea Brain Bank Network, KBBN)를 구축하고 있다. 

2021년 신축년을 맞아 뇌질환 극복의 꿈을 이뤄줄 뇌은행의 역할과 이를 통한 뇌연구 중요성 그리고 뇌연구 활성화 방안 등을 조명했다. 

[신년특집-①]인체 소우주 '뇌' 연구로 난공불락 뇌질환 정복 꿈꾼다
[신년특집-②]뇌자원으로 뇌질환 '미스터리' 푼다
[신년특집-③]"뇌연구 위한 뇌를 구합니다"
[신년특집-④]"사람은 떠나도 뇌연구 플랫폼은 남는다"

2018년 기준 국내 뇌기증 144건…양·질적 측면 부족

뇌연구의 중요성에 따라 국내 각 병원에서 뇌은행을 설립하고 있지만, 문제는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뇌기증 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자료 수집 후 2018년 기준 국내 뇌기증은 총 144건이 이뤄졌다. 하지만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증례수로 보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며, 성인 증례가 아닌 소아나 사산아 등도 포함돼 있어 질적인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다.

이와 비교해 미국 뉴로바이오뱅크는 지난 5년간 1474개의 뇌조직을 수집했고 1만 4000여건의 뇌조직 샘플을 연구자에게 분양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뇌은행장인 김인범 교수(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는 "2015년부터 5년 동안 뇌기증을 받았지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뇌조직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뇌기증 희망자가 늘고 있지만, 모인 뇌조직의 대부분은 사후 뇌기증을 받은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외국 뇌은행에서 제공하는 뇌조직에 비하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뇌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많은 뇌자원이 모여야 하고 이를 위한 뇌기증이 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뇌기증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고 중지를 모은다. 

서울대병원 뇌은행장인 박성혜 교수(병리과)는 "각 병원의 뇌은행에서 일 년에 기증받는 뇌자원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며 "앞으로 뇌기증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해 더 많은 사람이 뇌기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체해부법 개정…"뇌기증 홍보·뇌연구 활발해질 것"

다만, 뇌은행과 뇌연구 활성화의 발목을 잡던 법이 개선되면서 앞으로 뇌기증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뇌연구도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련 법률(시체해부법)'에 따라 사후 뇌조직의 활용 목적은 '사인규명, 병리학적 및 해부학적 연구'로만 국한됐고, 그 외 목적으로는 양도가 금지됐었다. 예로 A병원 뇌은행이 치매 환자의 뇌를 기증받았다면 해당 자원은 A병원 뇌은행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연구자에게 분양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이 법이 개정되면서 의학뿐 아니라 의생명과학 연구자들이 연구용 뇌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물꼬가 틔었다. 이 법은 올해 4월 8일 시행된다. 이에 앞서 뇌연구촉진법을 개정해 규제를 해소할 예정이었으나 시체해부법과 상충되는 점이 있어 시체해부법 개정이 우선 이뤄졌다.

시체해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뇌기증에 대한 대국면 홍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박 교수는 "뇌은행과 뇌연구 관련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병원 내 홍보 정도만 진행했었다"며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개정되면서 앞으로 뇌기증에 대한 홍보를 국가 차원에서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뇌자원 통합·공유하는 플랫폼 구축 필요

이와 함께 국내 뇌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뇌조직을 비롯한 인체자원뿐 아니라 임상정보를 포함하는 뇌자원을 통합·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단순히 기증자의 뇌구득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증자의 임상정보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뇌자원 관리를 위한 플랫폼을 잘 정비해야 뇌자원이 양질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폐쇄적 연구 분위기에서 탈피해, 연구자들이 연구 자료를 공유하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폐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갖고 있는 노하우를 절대 나누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전 세계적으로 오픈 액세스 플랫폼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국가적으로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연구가 아니라면 오픈 액세스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연구자는 이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뇌질환 극복에 뇌연구가 중요한 역할 할 것"

전문가들은 앞으로 뇌연구를 통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뇌질환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 교수는 "과거 NIH 수장이 퇴직하면서 동물실험에 많은 재원을 낭비한 것이 후회된다고 밝힌 바 있다. 뇌조직, 혈액, 뇌척수액 등 인체유래물을 이용해서 해야 할 연구가 많았다는 의미"라며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제 개발이 계속 실패했지만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뇌를 이용한 뇌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뇌연구를 통해 치매 등 뇌질환 뿐만 아니라 정상인의 뇌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질 것이다. 뇌에 대한 이해는 뇌질환 치료법 개발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제약분야에 기본 인프라와 플랫폼이 잘 갖춰져 있는 만큼, 뇌연구를 통해 좋은 근거가 쌓인다면 질환을 조기진단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빠른 시일 내에 효과적인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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