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정신건강의학과는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우울한 한 해를 보냈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수면부족 등의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다. 흐르는 강물에 얼음이 얼었다고 해서 그 속에 흐르는 물까지 얼어붙은 것이 아니듯, 코로나19로 잠시 어렵다고 해서 환자 치료를 위한 열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올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영역 대부분이 잠잠했는데, 조현병만은 예외였다. 미국정신과학회(APA)가 조현병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했고, 지난해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미국 인트라셀룰라 테라피스(ICT)사의 카플리타(성분명 루마테페론)가 리얼월드에서 근거를 쌓았다. 또 기존 조현병 치료제와 다른 기전을 가진 'SEP-363856'도 임상2상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 내일을 기약하게 됐다.

이미지 출처 :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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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적 잇따른 조현병 치료제

올해 APA는 지난 2013년 발간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메뉴얼(DSM-5)을 기반으로 조현병 치료 부분만 업데이트했다. 핵심은 조현병 사정(assessment), 환자를 중심으로 한 치료 계획, 이전에 권고된 바 있는 약물요법과 클로자핀 등을 포함한 약물치료, 새로운 사회심리적 중재 등이다.

연구팀은 조현병 환자를 처음 사정할 때 △환자가 제시한 이유 △환자의 치료 목표·선호하는 치료법 △정신과적 증상 △외상 이력 △담배·약물 사용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이력 △신체 건강 상태 △정신상태·인지평가 △자살 경향성 △공격적인 행동 등을 파악하라고 권고했다(권고등급 1C).

정신건강을 평가할 때 증상의 심각도·기능장애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라고 권고했고(1C), 문서화되고 포괄적인 사람중심 치료 계획을 세우는 영역에서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권고했다(1C).

약물치료에서 큰 변화는 없었지만, 클로자핀의 활용도를 강조한 것은 눈에 띈다. 연구팀은 치료저항성과 자살 위험이 있는 조현병 환자에게 클로자핀 사용을 권고했다. 또 다른 치료와 관계없이 공격적 행동이 있는 환자에게도 권고했다. 

리얼월드에서 근거 쌓는 카플리타

지난해 FDA 승인을 받은 조현병 치료제 카플리타(루마테페론). 올해 6월 온라인으로 열린 미국임상정신약리학회(ASCP)에서 조현병 표준치료제로 알려진 리스페리돈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ICT사 Andrew Satlin 연구팀은 루마테페론을 복용하는 조현병 환자와 리스페리돈을 복용하는 환자를 비교했다. 구체적으론 무작위 대조군 단기연구와 오픈라벨 장기연구를 사후검정분석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대사증후군이 루마테페론군 13%, 리스페리돈군 25%에서 나타났다. 또 연구가 끝났을 때 대사증후군이 없는 환자는 루마테페론군 46%, 리스페리돈군은 25%였다.

1년 동안의 장기 연구에서도 루마테페론군이 안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의 조현병 환자 602명이 참여한 장기연구에서 환자 모두 루마테페론 42mg을 투여받았다. 이들 중 33%(197명)는 기준점에서 대사증후군이 있었다. 연구가 마무리된 1년 시점에서 36%(72명)의 환자가 더 이상 대사증후군이 아니었다.

연구에 참여한 독일 샤리테대학병원 Christoph Correll 교수는 "조현병 환자에게 체중 증가와 대사 변화 부작용 등이 자주 나타난다"며 "다른 항정신병 약물보다 루마테페론은 안전성, 유효성 프로파일이 좋은 약물이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이슈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EP-363856 조현병 분야 게임 체인저 등장?

시장의 흐름을 바꿀 조현병 치료제 'SEP-363856'도 선보였다. SEP-363856은 도파민2나 세로노틴 2A와 결합하지 않고, 세로토닌 1A(5-HT1A)와 세포 내 추적 아민 관련 수용체(TAAR1) 활성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제약기업인 선오비언 파마슈티컬스사가 연구 중인데, 지난해 APA에서 조현병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지난해 5월 FDA에 의해 '혁신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된 바 있다.

지난 4월 15일 NEJM 온라인판에 게재된 SEP 361-201 6개월 오픈라벨 확장연구에서도 눈에 띄는 연구성과를 냈다.

미국 뉴욕의대 Donald Goff 박사는 "SEP-363856은 기존 도파민2 억제제 종류인 조현병 치료제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지장애와 우울증, 약물 남용 등을 포함한 다른 정신질환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는지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장기간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면 조현병 치료에 새로운 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EP-363856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하기 위한 임상3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저항성 우울증 신약 스프라바토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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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이 주류를 이뤘지만 치료저항성 우울증 신약인 얀센의 스프라바토(에스케타민염산염)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비강 분무용 치료제인 스프라바토는 지난해 3월 FDA로부터 치료 저항성 우울증 성인 환자에 대해 경구용 항우울제와 병용할 수 있다고 승인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최소 2가지 이상의 다른 경구용 항우울제에 적절히 반응하지 않는 성인의 중등도에서 중증의 주요 우울장애 치료로 경구용 항우울제와 병용하는 요법으로 허가받았다.

스프라바토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건냈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고가의 치료 비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스프라바토 클리닉을 운영하는 캐나다 CRTCE(Canadian Rapid Treatment Center of Excellence) 클리닉에서는 2주에 4회 스프라바토를 투여하는 데 약 3000달러(한화 357만원)가 필요할 정도로 비싸다.

현재 국내에서 스프라바토는 비급여로 출시됐다. 즉 의료기관에서 스프라바토의 가격을 결정하며 환자가 치료 비용을 100% 부담해야 한다.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상열 이사장(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약제 급여등재에 관한 논의를 했었다. 그런데 신체질환 관련 고가의 치료제는 모두 허가해주는데 정신질환 치료제는 한 알당 1000원 정도인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와 비교해 약가를 낮추려고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우울증 환자가 많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고려해 스프라바토가 급여등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모니터링하기 위한 제반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에서만 치료 가능하다는 점도 한계점이다.

스프라바토는 해리증상, 어지러움, 메스꺼움, 졸음, 혈압상승 등의 이상반응이 보고된다. 이에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의료기관에서 의료전문가의 감독하에 스프라바토를 직접투여해야 하고, 의료전문가는 환자가 임상적으로 안정되고 의료기관을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최소 2시간 동안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환자 모니터링에 대한 수가가 따로 책정되지 않았다. 

비대면 시대, 떠오르는 원격진료 ...원격정신과(Telepsychiatry) 논의 시작

코로나19가 진행되면서 세상의 키워드는 비대면이 됐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물론 비대면 주제는 뜨거웠다. 지난 5월 온라인으로 열린 APA에서도 가장 핫한 주제는 원격진료였다. 학회에 참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원격진료가 의사와 환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에 중지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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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 사용하는 원격진료 모델 중 '포털스타일모델(portal-style model)'은 환자가 포털에 로그인한 후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그 반응에 따라 사회복지사 혹은 간호사에게 환자의 질문이 전달된다.

이후 환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비디오 기반 또는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인지행동치료, 동료와 함께하는 포럼, 그룹치료, 약사나 임상의사와 중재 등과 같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

APA에서 '코로나19 시대에 원격정신과(Telepsychiatry)를 통한 프랙티스 확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미국응급정신과협회 회장이었던 미국 휴스턴 해리슨센터 Dr Avrim Fishkind박사는 원격진료에 대한 중립적 자세를 취했다.

Fishkind박사는 "과거 원격정신과는 너무 복잡하고 제한이 많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며 "정신건강의학과 분야에서 원격진료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편리해졌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장점 많지만 단점도”…도입은 시기상조?

전문가들은 원격정신과의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격진료 장비가 잘못돼 환자에 대한 의학적 평가와 치료가 지연될 수 있고, 의사가 적절한 의학적 결정을 내리는 데 비디오 해상도 불량 등의 전송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외에도 환자의 개인정보가 보안 프로토콜 실패로 유출될 수 있고, 시스템에 언제든 접속할 수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국내에서 원격진료는 워낙 예민한 얘기이고, 반대 목소리 또한 큰 상황이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오래전부터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하게 반대의견을 내면서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서조차 원격진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조금 느슨해졌다고 해도 미국처럼 원격정신과를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론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미국과 다른 국내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은 지역이 넓고,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 어렵고, 응급실 또한 가기 어렵다는 환경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정반대다. 예약만 하면 의사를 만날 수 있고, 원하면 응급실을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굳이 원격진료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논리를 깨는 건 사실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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