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GE·APSDE "아주 출혈 위험 높은 시술 아니면 아스피린 계속 복용해야"

심혈관질환 2차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포함한 항혈전제를 복용 중인 환자가 내시경 검사 또는 시술을 받을 경우 시술 전 약 일주일 동안 항혈전제를 중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항혈전제로 인한 출혈을 예방하기 위해서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심혈관계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국내에서는 내시경 검사 또는 시술 전 항혈전제 복용에 관한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항혈전제 복용에 대한 임상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순환기내과 및 소화기내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그 답을 내놓았다.아시아태평양부인과내시경학회(APAGE)·소화기내시경학회(APSDE)는 Gut 1월 13일자 온라인판에 실린 가이드라인을 통해 "아주 출혈 위험이 높은 내시경 시술이 아니라면 내시경 검사 또는 시술 전 아스피린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가이드라인 제정에는 고려의대 이홍식 교수(안암병원 소화기내과)와 경상의대 정영훈 교수(창원경상대병원 순환기내과)가 참여해 국내 진료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기에, 이번 가이드라인은 국내 임상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출혈 위험에 따라 내시경 시술 분류…'초고위험 시술' 추가

가이드라인은 동양과 서양의 진료 환경 및 위장관 질환 발병률, 출혈 위험 등의 질환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미국소화기내시경학회(ASGE), 유럽소화기내시경학회(ESGE), 소화기내과 영국협회(BSG) 가이드라인의 일부 권고안과 차이를 뒀다.

가장 큰 차이는 내시경 시술에 따른 일반적인 출혈 위험도를 보다 세분화한 점이다. 서양 가이드라인은 △저위험 시술(low-risk procedures) △고위험 시술(high-risk procedures)로 분류했지만, 아시아·태평양 가이드라인은 여기에 △초고위험 시술(ultra-high risk procedures)를 추가했다.

이는 항혈전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출혈 위험이 높은 내시경 시술이 서양보다 동양에서 많이 시행되고 있어, 동양에서는 서양 가이드라인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초고위험 시술에는 △내시경 점막하박리술 △폴립 크기가 2cm 초과했을 때 시행한 내시경 점막절제술이 포함됐다. 출혈 위험이 1% 미만으로 낮은 저위험 시술은 △내시경을 이용한 생검 △세침흡인 세포검사 없이 내시경 초음파 시행 등을, 고위험 시술은 △대장용종절제술 △세침흡인 세포검사와 함께 내시경 초음파 시행 △경피내시경하 위루술 등을 제시했다.

저위험·고위험 시술 예정됐어도 '아스피린' 중단 안돼

내시경 시술에 따른 출혈 위험도를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항혈전제 치료전략도 각각 다르게 명시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초고위험 시술이 아니라면 아스피린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권고안이다. 이는 아스피린만 복용하거나 다른 항혈소판제와 병용하고 있더라도 동일했다. 

구체적으로 저위험 시술이 예정된 환자는 아스피린을 포함한 항혈전제를 계속 복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제시했다. 이어 아스피린과 P2Y12 억제제의 병용요법인 이중항혈소판요법(DAPT)을 받고 있어도 두 약물 모두 끊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항응고제인 와파린과 NOAC도 계속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NOAC의 권고 등급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고위험 시술을 받는 환자 역시 저위험 시술과 같이 아스피린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저위험 시술과 차이가 있다면 P2Y12 억제제를 단독으로 복용하거나 DAPT를 받고 있다면 시술 5일 전부터 P2Y12 억제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출혈 위험이 가장 높은 초고위험 시술이 예정된 환자는 아스피린을 포함한 항혈전제를 중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항혈전제 중단으로 인한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보다는 출혈 위험에 무게를 두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교수는 "아주 출혈 위험이 높은 내시경 시술이 아니라면 아스피린만 복용하더라도 내시경 시술 시 출혈 위험이 크지 않다. 유럽에서도 아스피린을 계속 복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저위험 또는 고위험 시술이 예정된 환자들은 아스피린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텐트 삽입 환자, 혈전 생성 위험 따라 항혈전제 치료 제시

아울러 가이드라인은 스텐트를 삽입한 환자 또는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환자가 내시경 시술이 예정된 경우 혈전 생성 위험에 따라 항혈전제 치료전략을 분류해 명시했다. 

정 교수는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환자가 스텐트 시술을 받은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출혈에 대한 우려로 내시경 시술 전 항혈전제를 끊는 경우가 있다"며 "스텐트 시술 시기에 따라 혈전 생성 위험이 다르기에, 이를 고려해 항혈전제 치료전략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경피적 관상동맥중재술(PCI)을 받은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환자를 혈전 생성 위험에 따라 △초고위험군 △고위험군 △저위험~중등도 위험군 등으로 분류했다. 초고위험군은 PCI를 받은 지 6주 이내인 환자로, 출혈 위험이 높은 고위험 내시경 시술이 예정됐다면 시술을 연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고위험군은 PCI 후 6주~6개월이 지난 환자로, 가능하다면 심혈관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까지 고위험 내시경 시술을 연기할 것을 당부했다. 다만 내시경 시술을 연기할 수 없다면 아스피린을 복용하면서 P2Y12 억제제 계열은 시술 5일 전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저위험~중등도 위험군은 PCI를 받은지 6개월이 지난 환자 또는 안정형 관상동맥질환 환자이며, 항혈전제 치료전략은 고위험 시술의 항혈전제 치료전략과 같다.

"순환기-소화기내과 협진 중요…한국형 알고리듬 개발돼야"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한 두 교수는 내시경 시술 전 순환기내과와 소화기내과의 협진을 강조하면서, 개원가에 내시경 검사 또는 시술 전 항혈전제 치료전략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1·2차병원에서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임상에서 내시경 시술 전 아스피린을 쉽게 끊고 있지만 이번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서양 가이드라인에서도 아스피린을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하지 않는다. 이는 치과도 마찬가지다. 출혈에 대한 걱정만으로 아스피린을 중단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우리나라가 내시경 시술 전 아스피린 복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개원가에서 아스피린을 쉽게 끊는 것은 좋지 않다"며 "내시경 시술 전 순환기내과와 소화기내과의 협진을 통해 아스피린 등의 항혈전제를 중단해야 할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이번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한국형 알고리듬이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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