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단계적 도입 재확인...'처방권' 둔 의·약 직역 간 힘겨루기 양상
현장 관계자들 회의적 시각 "수급 불안정 핵심은 약가·공급 구조"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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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정부가 수급불안 의약품에 대한 '성분명 처방' 제도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의료계와 약계 간의 갈등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의약분업 이후 20여 년간 누적돼 온 '처방권'을 둘러싼 직역 간 긴장과 불신이 이번 논란을 통해 재확인되고 있다.

여당 성분명 처방 도입 촉구, 정부도 응답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성분명 처방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은 10월 30일 종합감사에서 "해외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를 제도화해 의약품 수급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며, 한국도 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국감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아세트아미노펜 사례를 언급하며 "성분명 처방이 수급 불안을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서영석 의원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도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 역시 성분명 처방의 도입 추진을 재확인했다.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국정과제에 성분명 처방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수급불안 의약품부터 단계적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처방 방식 변경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문제"라며 "복지부 요청 시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장종태 의원은 지난 9월 수급불안정 의약품에 대해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약사법·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처방권 침해·환자 안전 위협" vs "환자 선택권·약가 절감"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9월 30일 국회 정문에서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9월 30일 국회 정문에서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의사단체는 성분명 처방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성분명 처방은 의사의 전문 진료 행위에 대한 침해이자,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제도"라며 "동일 성분이라도 제형, 부형제, 흡수율 등에 따라 환자 상태별로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달 성분명 처방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정부가 리베이트 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환자 안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의료계는 "진단부터 약 선택까지는 일체의 전문적 판단"이라며, 약 선택권은 의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약사단체는 성분명 처방 도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현행 제품명 처방은 약사의 대체 조제를 원천 차단하고, 환자의 선택권과 알 권리를 제한하는 구조"라며 "성분명 처방은 환자 중심 복약 환경을 위한 필수 제도"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국과 일본 등은 동일 성분 대체조제를 제도화하고 있으며, 복제약 처방률도 각각 91%, 82%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복제약 처방률은 1.5% 수준으로 매우 낮다.

"수급 불안은 처방 방식 아닌 구조 문제" 지적도

하지만, 성분명 처방이 수급 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현장 관계자들은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수급 불안정은 수요 예측과 생산 유인 구조의 문제이지, 처방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수급불안 대상 품목은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성분명 처방이 도입된다 해도 유통 구조에 실질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수급 불안정은 비용과 공급의 문제다. 오히려 약가를 보전하거나 공적 조달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정부가 약가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다 보니 특히 외자계 제약사가 빠져나가는 일이 빈번하다. 이익이 나지 않으면 제약사도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며 "코로나19 이후 감기약 수요가 폭증해 공급이 부족했던 것도 이전에 감기약 수요가 감소하면서 제약사들이 생산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베이트 등과 관련해선 "제약사의 영업 대상이 의사에서 약사로 전환될 뿐,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고 짚었다.

현재 전문의약품은 일반 광고가 금지돼 있어, 환자가 약의 품질을 비교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사실상 부재하다. 이로 인해 결국 약품 선택은 약사에게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의약품 수급 불안과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성분명 처방 하나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기 위해 약가 정책, 정보 접근성, 환자 교육 등 다층적인 구조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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