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응급상황 대비 소홀로 보기 어렵다” 판결

대형병원으로 전원시키기로 한 응급환자가 구급차에서 심정지를 일으켜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병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구급차에 의사가 동승하지 않았지만 응급구조사와 간호사가 탑승해있었고, 구급차에 응급상황을 대비한 약제와 장비들이 충분했으며 이를 이용한 심폐소생술 등이 이뤄졌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최근 A씨의 유족들이 B의료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12년 1월경 구역, 구토 증세와 상복부 통증이 발생해 B의료법인이 운영하는 B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B병원 의료진은 신체검사 등을 통해 A씨의 증세를 급성 위장염으로 진단하고 위염 및 위궤양 치료제, 소염진통제 등을 투여하고, 2일치 위염약을 처방한 후 퇴원시켰다.

일주일이 지난 후 A씨는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갑자기 의식이 없어져 B병원 응급실에 내원했고, 의료진은 A씨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혈압과 맥박, 호흡을 회복시켰다.

의료진은 A씨를 대형병원으로 전원시키기로 결정하고 구급차에 태워 인근 상급병원으로 출발시키면서 응급구조사 1명과 간호사 1명을 동승시켰다. 이송 도중 A씨는 다시 심정지가 발생했고 상급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한 뒤였다.

A씨의 유족들은 “최초로 내원해을 때 심전도검사 및 심장효소검사를 시행하지 않아 A씨의 증세를 소화기계통의 질환으로 예단했다”며 “재차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 심정지 후 자발순환을 회복한 다음에 이를 충분히 치료하거나 저체온요법을 시행할 수 있음에도 A씨의 징후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상급병원으로 무리하게 전원시킨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A씨를 이송하는 구급차 안에 의사를 태우지 않고 동승시킨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로 하여금 A씨의 심정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한 과실도 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복부 통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으로서 심정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A씨에게 심정지가 발생한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제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족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의료진이 최초 내원시 심전도검사 또는 심장효소검사를 시행했어야하고, A씨의 심장질환을 밝혀내고 적절한 치료가 이뤄져 사망하지 않았으리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달리 말하면 유족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A씨가 심장질환이 아닌 다른 질환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이어 “급성 심정지 후 자발순환이 회복된 환자에 대해는 일단 혈압 등 생체징후를 안정화시킨 후 심정지의 원인을 찾고, 원인이 교정 가능하다면 이를 위한 치료를 시행해야하며,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지 않으면 심정지에 따른 허혈성 뇌손상을 줄이기 위해 저체온 치료를 해야하는데 이런 치료를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통해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B병원 중환자실에 마련된 병상은 불과 10개 뿐으로, 의료진이 충분한 치료를 위해 A씨를 상급병원으로 전원시키기로 결정한 데에 어떤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재판부는 구급차 내에서의 과실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응급환자를 구급차 등에 태워 이송할 때 응급구조사나 의사, 간호사 중 1인을 포함해 2인 이상이 동승해야하는데, A씨를 이송한 구급차에는 응급구조사, 간호사가 동승했다”며 “의사를 동승시키지 않아다는 점만으로 A씨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유족들은 의료진이 A씨를 전원하면서 강심주사제와 수액 등을 챙기지 않아 응급상황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고, 구급차에 동승한 응급구조사와 간호사가 적정한 시점에 약제를 투입하지 않고 제세동기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해 심정지가 초래됐다면서 항소를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A씨를 후송한 구급차 내에는 약제와 응급처치장비가 구비돼 있었고, 동승한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는 A씨에게 산소를 공급하면서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했다”며 “상급병원에 도착했을 무렵, A씨의 심장박동수와 산소포화도가 저하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자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전했다.

또 “응급구조사와 간호사가 A씨에게 강심주사제를 투여하거나 제세동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는 상급병원 도착에 임박해 심정지가 발생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면서 상급병원 응급실 의료진에게 인계하는 것이 우선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며 “이런 판단과 처치가 부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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