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진출 가시밭길…지역전문가·정부지원 절실

우리나라를 찾는 러시아 의료관광객과 일반 관광객 수는 지난 2009년 이후 매년 평균 110.7% 급증했다. 한국관광공사와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009년 러시아에서 온 의료 관광객은 6만 201명, 2010년 8만 1789명, 2011년 12만 2297명, 2012년 15만 9464명이었다.

2009년 전체 의료관광객 중 비중이 4.1%에 불과했던 수치가 2010년 7.7%, 2011년 9.5%, 2012년 12.2%까지 증가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매년 많은 환자가 우리나라를 찾지만 정작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한 곳도 없다. 몇몇 의료기관이 진출을 위한 시도를 하고 또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결실을 본 곳은 전무하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중국 45곳, 미국 35곳, 몽골 12곳, 베트남 6곳, UAE 5곳, 카자흐스탄 4곳이 해외에 진출한 것을 고려하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초기 투자금 1000억원…수익성은 불명확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러시아에 아직 한 곳도 터를 잡지 못한 이유는 투자 대비 수익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 진출에 참여했던 분당서울대병원 한 관계자는 "러시아는 금전 차입이 안 되는 나라다. 현금 흐름이 불안하고 결국 리스크가 커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며 "초기 투자해야 하는 돈이 대충 1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그 정도의 자금을 움직여도 수익을 명확하게 볼 수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러시아 내부 문화도 국내 의료기관 진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는다. 의료진 등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진다고 해도 일이 많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까다로운 러시아 보건법도 진출의 발목을 잡는다. 러시아에서 외국인이 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일반회사 설립 과정과 유사해 병원 설립의 제한이 없다. 그런데 의료진이 진료를 하려면 의대에서 실시하는 정식 자격증이 있거나, 영주권 내지는 임시거류증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러시아 진출의 핵심적인 고리인 셈이다.

러시아 관련 전문가는 "외국인 의료진이 러시아에서 의료 행위를 하려면 러시아 보건부가 인정하는 의대에서 시행하는 정식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영주권, 임시 거류증이 있어야 해 쉽지 않다"며 "외국인 의료진의 의료행위를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 해외병원이 러시아에 투자 및 진출해 외국계 병원을 설립해도 의료진만은 러시아인을 고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보건분야에서 민관 파트너십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의료만은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데다, 복잡한 규제와 관료적 행정 시스템,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쉽게 뚫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의료 분야에서 대부분의 물품 구매과정은 상법으로 규정된 절차에 따르지 않고 관행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며 "의사 소통의 문제, 정보 비공개와 부정확성 등의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직접 진출 시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B2G로 사업 진행하면 성과 낼 것"

그동안 러시아로 통하는 길을 뚫기 위해 정부 지원 아래 명지병원, 전남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노력해 왔다.

지난 2013년 분당서울대병원은 6개월 동안 의료 IT와 같은 무형물의 수출이 현지 의료시장에서 어떻게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를 한 바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파블로프 국립의대와 진행했던 이 사업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희망 섞인 기대를 남겼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의료 및 의료IT 인력에 대한 교육연수를 현지 의료기관 사정으로 인해 최초 계획을 모두 달성하지는 못했다"면서 "러시아 및 CIS 국가 의료IT 수출은 G2G(정부 간 거래) 이후 B2G(기업-정부 간 거래)로 진행될 경우 목표한 사업적 성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무선전화를 판매하러 갔는데 유선전화를 쓸까 말까하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며 "IT기술을 실현하려면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등 전체적인 정비가 필요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외부 기술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자체적인 기술개발을 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대규모 자본이 움직일 수 없어 국내 의료기관은 검진센터 진출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명지병원이 그 케이스다.

 

2013년 명지병원은 국제건강검진센터를 목표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다. 러시아의 부유층 환자들이 의료선진국을 방문해 대부분 건강검진을 받고, 러시아 경제성장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명지병원은 러시아 환자들의 수요에 맞춰 한국형 국제검진센터 설립을 시도했다. 이후 러시아 인근 타 지역의 (카자흐스탄 및 브랴트공화국 등) 적용 가능한 국제건강검진센터의 표준화 모델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최근에 러시아를 노크하는 곳은 세종병원이다. 세종병원은 러시아 하바롭스크 현지 파트너와 합작해 심장질환과 종합검진을 중심으로 한 의료기관 개설을 논의 중이다.

세종병원 박경서 대외협력 센터장은 "2016년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병원 직원들이 상주 및 파견 형태로 하바롭스크에 진출할 예정"이라며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의료서비스 발전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며, 극동러시아를 대표하는 거점 병원으로 성장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믿을 만한 러시아 파트너를 찾아라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진출하려면 우선 믿을 만한 러시아인 파트너를 찾으라고 제안한다. 무역투자진흥공사는 "컨설팅 회사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모스크바에 소재한 Zdravookhranenie 컨설팅 회사를 통한다면 의료분야에 있는 많은 관계자를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 "좋은 파트너를 찾았다면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 관리와의 관계, 의료분야와 관련한 의사, 교수, 협의회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진출을 시도했던 병원 관계자들은 지역 전문가가 절실하며 정부 차원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러시아 시장은 의사소통에 있어 문화 및 사회적 유대관계가 없는 경우 사업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지역 전문가 그룹을 정부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