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진출기관 중 25% 철수 중국서 실패사례 가장 많아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의료기관들은 해외환자 유치에 집중했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의 경우 외국인 진료 시 외래 1인당 평균 의료비는 29만 847원, 입원 1인 1일당 평균 의료비는 178만 2599원이었다. 국내 1인 평균 외래 매출액이 약 9만 8000원, 국내 1일 평균 입원비가 약 6만원인 것을 고려할 때 외국인 환자 진료는 병원 입장에서는 숨통을 틔울 수 있는 환기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달콤함은 길지 않았다. 해외환자 진료가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자 너도나도 해외환자 유치에 뛰어들면서 이 분야는 순식간에 블루오션에서 레드오션으로 변해 버렸다. 앉아서 환자를 기다리던 시대에서 이제는 병원의 해외 진출을 통해 환자를 유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병원들이 쥐고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으므로 해외 진출은 당연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해외환자 진료 성적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환자를 직접 창출하지 않으면 국내 해외환자 진료는 더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대목동병원 국제협력팀 김상현 팀장은 초기 해외환자가 국내로 유입될 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고 상황을 설명한다. 김 팀장은 "병원들이 해외 진출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국내 시장의 포화 때문"이라며 "외국인 환자가 자발적으로 오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외국의 현지 거점병원을 통한 외국인 환자 유치 확대 및 현지 에이전시 관리 등도 새로운 과제가 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건국대병원 전략기획팀 이찬우 팀장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 팀장은 "싱가포르 레플즈병원이 홍콩이나 중국 상해 등에 진출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며 "앉아서 기다리던 수동적인 자세에서 좀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로 눈 돌리는 병원들

외국인 환자 유치 등의 이유로 많은 병원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철수하는 기관도 더불어 증가하고 있다. 병원들의 고민이 깊은 대목이다.

2014년 해외에 진출한 의료기관은 125건이다. 2013년 111건에 비해 14건(12.6%)이나 증가한 수치다. 2014년 기준으로 해외 진출한 의료기관은 총 19개국(홍콩, 마카오 별도 집계)이다. 국가별로는 중국, 미국, 동남아, 몽골, 중동, 러시아/CIS 순으로 나타나며, 중국, 미국에 대한 진출이 전체 해외 진출 대상국의 62%를 차지하고 있으나 철수하는 의료기관도 적지 않다. 2013년 진출했던 111건에서 28건 즉 25%가 철수했고, 2건은 정부에서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다. 국가별로는 중국(15), 미국(5), 카자흐스탄(2), 러시아(2), UAE(1), 몽골(1), 베트남(1), 네팔(1) 등이었다.
외국에 진출했다 철수를 결정할 때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이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경영 부진과 파트너사와의 다툼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찬우 팀장은 "중국이나 중동 등은 현지상황이나 법 등이 우리와 달라 성공하기 쉽지 않다"며 "중국에서 실패한 사례가 많은 것은 중국 진출이 많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중국 내 파트너사나 같이 간 국내 파트너사와의 갈등도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진출을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 병원들의 병상 가동률과 중국 사람들의 문화적 인식을 살펴보라는 얘기다.

대학병원에서 해외 진출을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중국 진출을 타진하는 병원이 많은데 포지션을 정확하게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공공병원의 병상 가동률이 98% 정도인데 비해 영리병원은 50% 정도를 밑돌고 있다"며 "중국의 영리병원은 모두 대도시에 있고, 우리가 진출하면 그 병원들과 경쟁해야 한다. 쉽지 않은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관광 와서 3000만원 쇼핑을 하지만 5~10만원 정도 숙소에 만족한다. 돈은 쓰지만 생활 수준이나 인식이 업그레이드된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정보 부족 가장 큰 문제

낮은 수가, 대안이 되지 못하는 건진센터, 비급여 억제 등 병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진출하는 병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진출하는 국가의 정보 부족이 가장 컸다. 올해 초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진출 시 발생한 애로사항으로는 정보부족이 27%, 현지 네트워크 17%, 법·제도 15% 순으로 나타났다.

김상현 팀장은 "현지 법률 전문가와 접촉이나 법률 서비스를 받기도 굉장히 어렵다. 또 국내에서도 이런 일을 담당하는 로펌이 많지만 누가 역량 있는 로펌인지 옥석을 가려내기 어렵다"며 "중국은 지역에 따라 법률이 달라 현지 시장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최근 정부가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500억원 규모로 '한국 의료 글로벌 진출 펀드'를 조성했다. 보건복지부가 100억, 한국수출입은행, 뉴레이크 얼라이언스 매니지먼트 & KTB 프라이빗 에쿼티(공동운용사)를 포함한 6개 민간기관이 400억원 출자해 조성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운용사가 자신들이 투자한 돈을 보장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풀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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