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좋은의사연구소, '사회적 불안심리' 관리 강조

▲ 23일 고려대학교 좋은의사연구소(소장 안덕선)의 주최로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본 사회병리와 의료인의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행사 장소인 고대의대 문숙의학관에는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 인문사회학자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며 국민들을 집단공황 상태에까지 빠뜨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이러한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 나타나는 집단적인 사회 불안심리에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3일 고려대학교 좋은의사연구소(소장 안덕선)의 주최로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본 사회병리와 의료인의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한 인문사회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결론은 간단했다. "전염병에는 늘 공포라는 전염병이 따라다닌다"며 감염질환 대응 메뉴얼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 의료인과 보건 당국,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 등 각기 맡은 사회적 책무의식을 강화해 사회 불안심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결국 이들 세 주체가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불신하거나 그들의 자녀까지 '병균' 취급하는 소위 '메르스 왕따' 현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은 인류의 숙명처럼 불가피하다고 말하면서도, 메르스 사태처럼 사회적 불안이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는 무얼까.

낙인과 차별 발생, 전문가 집단 올바른 의학정보 제공 중요

인구가 증가하고 육식화, 대량 사육 등을 통한 우연감염이 늘고 인구밀집형의 도시화, 병원체에 대한 인간 면역력의 취약성, 병원의 대형화와 함께 원내 감염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성안드레아병원)는 집단적인 사회적 불안의 조건을 들었다. "먼저 부적절한 정보와 근거없는 사회적인 낙인과 배척이 문제다. 이어 낙인과 차별이 유발하는 불안과 두려움, 이로 인한 질병 은폐의 악순환이 발생한다"며 "여기에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방식과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 또는 부족한 정보제공이 문제를 키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감염병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 두려움에는 죽음과 오염, 질병, 불결과 같이 무조건적인 회피반응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바탕이 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이슈들은 확산-유행-소강이라는 세 단계를 거치는데, 단계별로 관리가 안되면 불안과 두려움, 정신적 후유증까지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메르스 격리자들의 3대 반응으로 △감염에 대한 불안: 죽는 것은 아닐까, 뉴스 보도에 과잉 집착 등 △ 현실적인 불편과 고립감: 생업, 직장, 학업 등 △ 낙인감: 이웃의 눈초리 등이 주요 문제가 됐다는 것.

고대의대 정신과 한창수 교수(고대안산병원)는 "감염병 대유행 공포 상황에서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며 "의료 전문가들이 앞장서 그릇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메르스 발생 초기에 정부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사망자들은 기저질환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은 국민들에 모든 기저질환자들은 사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심리를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메르스 한창인데 160여 쪽 실속없는 대응메뉴얼 발행, 누가 봅니까?"

때문에 에볼라 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의 경우 전체적인 통수권을 행정가가 아닌 의료전문가에게 이임한 것 처럼 국내에서도 실질적인 관리체계의 운용이 필요하다는 의견.

고대의대 의인문학교실 정지태 주임교수는 보건 당국이 배포한 메르스 대응 메뉴얼에서도 문제점을 찾았다. "지난 6월 중순 메르스가 한창 확산될 때, 160여 페이지 분량의 메뉴얼이 공개됐는데 환자 진료조차 마비되는 상황에서 그 많은 내용을 누가 다 볼 수 있겠나? 실상 내용도 새로울 게 없었다"고 현실성 없는 대응방안에 쓴소리를 했다.

한편 미디어와 관련해서는 작년 제정된 재난 보도 준칙이 언급됐다. 언론의 역할이 재난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해야 하지만 역할 중에는 방재와 복구기능도 있다는 것. 때문에 국민의 집단적인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것은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원칙과 배척되는 이유다.

또 흥미위주의 보도 등은 지양해야 하며 당국이나 기관의 공식발표 역시 진위와 정확성 여부를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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