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환자쏠림이 근본원인" 지적…의료전달체계·저수가 선결돼야

▲ 8일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 현장 ⓒ고민수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 17명, 격리 대상자 2000여 명.

급기야 금일 오전에는 국내 최초로 10대 청소년 환자 사례까지 보고되면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발생의 새로운 진원지로 떠올랐다.

현재 메르스 2차유행의 중심에 서있는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던 5월 27~29일로부터 평균 잠복기 등을 고려한다면 6월 8~9일, 즉 오늘내일이 정점을 이룰 것이라는 게 보건당국의 관측.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사태를 키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형병원 선호로 인해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들 대부분이 소위 빅5 병원으로 몰리다 보니 병상수 조정이나 응급실 확장과 같이 병원 측의 일방적인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

응급실 감염의 책임을 지금과 같이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3차병원과 의료진들에게로 몰아가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삼성서울병원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밝힌 한 혈액종양내과 의료진은 "큰 병원을 선호하는 생각 때문에 평소 응급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1번과 14번 환자 둘다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 환자 스스로 내원한 케이스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들의 전형적인 단면"이라고 꼬집었다.

1번 환자는 문진과정에서 바레인 거주 경험을 캐치한 뒤 CT 소견과 임상증상 등을 토대로 메르스가 첫 번째 의심진단명에 거론되면서 검사를 강행, 확진할 수 있었지만, 14번 환자는 27일 내원 당시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선별검사지 중 어떤 항목에도 부합하지 않았고 환자 본인이나 진료의가 이전 병원에 노출됐던 사실을 몰랐기에 무방비로 응급실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

응급실에서의 이틀은 꽤 긴 시간인지라 많은 감염자들이 양산됐고 뭇매를 맡는 원인이 되고 있지만 무증상인 의료진들조차 응급실 노출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가격리 대상자로 분류, 당장 환자를 볼 의료진이 부족해진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응급의학과장으로 재직했던 송형곤 전 의협 대변인(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과장)은 "메르스 확산에 따른 대한민국의 대혼란은 올 것이 온 것뿐"이라면서 "응급실 근무 의료진들 사이에선 수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와 보건복지부, 의료정책 입안자들의 잘못"이라고 성토했다.

송 과장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응급의학과 스탭으로 재직했던 당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수는 하루평균 150~200명 정도.

응급실 병상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입원 결정이 나더라도 병실 입실은 거의 불가능하다보니 기본 하루는 응급실에 체류해야만 했는데, 재직 기간 중 1000병상, 2000병상까지 규모를 늘렸음에도 전국에서 유입되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응급실 구조를 바꾸고 확장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병상수나 응급실을 늘려봐야 길게는 1달, 짧게는 1주일 만에 신규 환자로 차버리게 될 것"이라면서 "지방의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암수술을 하자고 하면 무조건 빅5로 소견서를 들고 오는, 이른바 대형병원 쏠림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활동성 결핵이나 항암치료, 장기이식 등으로 인한 면역저하 환자가 아니면 응급실 격리병상에 누울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이번과 같이 잘 낫지 않는 폐렴으로 생각되는 환자는 절대 격리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는 정도로만 조치한 채 커튼 하나만 달려있는 커다란 방에 누워있게 되는, 그야말로 감염에 최적화된 조건인 셈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정부와 복지부, 대형화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초저수가를 유지해 온 건보공단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며 "환자쏠림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와 함께 대형병원이 양보다 질로 승부할 수 있는 수가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지금도 메르스 확진 환자들이 거쳐간 병원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되는 가운데 사태가 진정된 후 응급의료전달체계 및 감염내과 등에 대한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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