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쇼핑·감염관리수가·응급실 과밀 '삼박자'에 메르스 '번식 최적'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가 8일 오전 기준으로 87명으로 집계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한국이 메르스 발병국 2위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특히 추가로 확인되는 확진자 대부분이 빅5병원인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추가로 수백여명의 확진자가 나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복수의 보건의료 전문가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해 단순히 병원 내 감염체계 부실이 아닌 한국 의료의 왜곡과 환자 특수성에 따른 문제라고 밝혔다.

일반화된 의료쇼핑, 모럴헤저드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으로 진료비가 적어 하루에 여러 병원을 다녀도 부담이 없는 것은 물론 1인당 의료기관비율도 높아 동네 상가만 가도 다양한 전문의들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지나치게 값싼 의료비로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 일으켜 의료쇼핑이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단순 질환이라도 소견서만 있으면 3차병원에서도 외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현재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으며, 팽배해진 수도권, 대형병원, 그리고 빅5 선호현상으로 3, 4차 감염자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즉 시간만 되면 하루에도 서너번의 병원은 거뜬히 다닐 수 있는 값싼 진료비와 무너진 의료체계 탓에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국을 떠돌게 됐고, 결국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2000여명이 넘는 격리대상자를 키워냈다는 것.

실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한 환자의 이동 경로를 보면, 충남 아산서울의원을 들렀다 경기도 평택성모병원으로 이동해 사흘간 입원한 후 서울 강동구 365서울열린의원을 거쳐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는 경로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아산서울의원과 365서울열린의원에서 외래 진료를 봤던 의료진 2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평택성모병원에서는 3차 감염까지 37명의 확진 환자가 나왔다. 또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14번째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으로, 16번째 환자는 대전 대청병원, 건양대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전국 확산을 부추기게 됐다.

감염관리료 하루 150원

저수가 체계도 메르스 확산에 한 몫했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에 지급되는 수가는 검사료, 진찰료, 수술료, 입원료 등으로 나눠지는데, 이중 '감염관리료'도 별도로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감염관리료가 한 건에 4600원에 불과하며,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아예 지급되지 않고 있다.

현재 병원 내 감염관리를 위해서는 적게는 손 소독제 배치부터 시작하는데, 일년에 손소독제 구입비만 수억원에 달하는 것을 볼 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저수가'문제 대신 병원내 '감염관리'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최근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첫번째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33명의 감염을 일으켰고, 환자가 퇴원하고 소독까지 한지 10일 지난 뒤에도 화장실, 에어컨 등 여러 군데에서 메르스 바이러스 유전자가 배출됐다"며 "병원 내 감염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바이러스의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내 감염관리 전문가는 "감염관리료는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 한해 지급되는데, 이마저도 감염내과 및 감염소아과 전문의가 상근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며 "입원환자 1명당 30일 입원기간 중 단 1회만 청구할 수 있고, 1건당 4600원이니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해보면 150원에 불과하다. 이는 감염관리를 위해 투입하는 시설, 인력, 자원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응급환자의 응급실행, 열악한 병원 환경과 구조

숨이 멎기 직전의 환자들이 찾을 것 같은 3차의료기관 응급실에는 단순한 찰과상이나 열을 동반한 감기환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응급실은 병실을 들어가기 위한 전 단계'라는 잘못된 상식이 횡행하면서, 비응급(?)환자들의 응급실 방문으로 대형병원 의료기관 응급실은 매일 북새통을 이루는 실정이다.
 

 

실제 최대 감염자를 발생시킨 삼성서울병원 전 근무자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상 응급환자를 빠르게 잘 치료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감염병 관리에 대한 구조는 취약하다"며 "수많은 환자들이 들끓는 응급실에서 환자들간 밀접한 접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 대형병원 응급실은 메르스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수백명의 환자들을 봐야하는 응급의료진들은 손을 닦을 시간이 부족해 환자-환자 간 감염을 돕는 매개(?)가 되기 쉽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병실 환경과 간병문화 역시 메르스의 전파 속도와 범위를 증대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인실 병실 체계로 병실 안에 단 한 명의 메르스 환자가 있어도 충분히 5~6명의 환자들에게 전파가 가능하며, 병문안, 간병 등으로 그 가족과 보호자, 지역사회로까지 빠른 전파가 가능한 상황이다.

또 간병인들 중 체계적인 감염관리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어 굳이 같은 병실이 아니어도 다른 병동, 병원 내 식당, 편의시설까지도 쉽게 전파될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명단 공개만 급급? "의료현실부터 봐야"

이러한 우리나라 보건의료, 병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 대신 병원 명단 공개만 급급한 상태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이름만 보건복지부일 뿐 '복지부'에 가깝다. 보건의료 전문가가 부재하기 때문에 대형 감염병 사태에 대해 이렇게 무지몽매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마치 평택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을 '감염의 매개'로 싸잡아 질타하고 있지만, 그간 정부에서 수도권 쏠림현상, 빅5 환자 쏠림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며 "이번 기회로 망가진 의료전달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원격진료를 확대해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생각이 없는듯 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원격진료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와 정부에서는 엉뚱한 끼워맞추기식 대안 마련이 아니라, 감염관리에 대한 수가를 현실화하고, 쏠림현상을 억제하는 법안을 만드는 등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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