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절감' 카드 놓고 설왕설래 협상 실패로 이어져...의협·약사회 반사이익 '선방'

병원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욱 짙어질 모양새다.

1일 자정을 넘겨 마감된 2016년도 수가협상에서 대한병원협회는 결국 '협상 결렬' 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공단과 병원협회간의 수가협상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좋았지만, 결국 병협에만 주어졌던 '2번째' 부대조건 카드가 병협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 협상을 진행 중인 병협- 공단.

올해 병협은 협상 시작 전부터 '승기'를 잡은듯 했다.

매년 큰 폭으로 치솟았던 병원의 진료비 증가율이 지난해 갑작스럽게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장 자리에 병협 회장 출신인 성상철 이사장이 자리하면서 든든한 소통 창구까지 마련됐기 때문.

무엇보다도 지난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3대 비급여 개선 등의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병원들이 수익도 보전하지 못한 채 정책 지원을 위해 많은 행정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이 처럼 밑그림은 병원계에 유리하게 짜여졌다.

게다가 그간 병협-공단의 협상테이블은 고성이 오갔으나, 올해는 줄곧 원활한 소통을 이어갔다.

또한 다른 유형과 달리 병협만 '목표관리제' 외에 'ABC 원가분석 자료'라는 두 가지 부대조건이 걸렸고, 선택지가 넓어진만큼 병협이 유리하게 협상을 이어나가, 작년보다 높은 인상률을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왔다.

특히 병협에 있어서 원가분석 자료는 2년전에도 부대조건으로 올라와 한 차례 제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담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고, 회원들만 잘 설득한다면 높은 인상률을 받아내는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 협상이 결렬된 대한병원협회 협상단이 쓸쓸히 공단 협상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유리하게 작용될 줄 알았던 원가분석이 막판에 병협의 발목을 잡았다.

협상 마지막날에 열린 재정소위에서 "2년전 협상에서도 원가자료 제출이 부대조건으로 올라왔으나, 자료 자체가 부실했다"며 "이번에 부대합의조건으로 이를 제시할 경우 '패널티'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건보공단 협상단 측에 전달했다.

그렇잖아도 이날 가입자포럼에서 '병협 퍼주기식 협상'과 관련한 성명서를 내어 건보공단 측의 부담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고, '병협출신 이사장'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도 민감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공단은 밤 9시가 넘어서 이뤄진 병협과의 마지막 협상에서 '원가자료 제출 및 미제출시 패널티 부여'로 수정된 부대조건을 제안했고, 병협은 갑작스럽게 바뀐 조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병협은 '패널티'에 상당히 부담감을 느낀터라 부대조건을 받지 않고 1%대 후반으로 가겠다는 전략을 내세웠으나, 공단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1.4%의 인상률 고수하면서 결국 '협상 결렬'이라는 오점을 찍고야 말았다.

병원의 미래가 더 어두운 것은 앞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인상률 결정권이 넘어가게 되면, 1.4%보다도 낮게 매겨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선방에 성공한 의협·약사회..."그래도 불만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치를 이어가며 '선방'에 성공했다.
 

▲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협상 종료일에 응원차 협상장을 방문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수가협상단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의협과 약사회 모두 만면에 미소를 띄기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추가소요 재정(밴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면서 공급자들의 의지를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올해 협상에서는 전 유형에 제안됐던 부대조건인 '목표관리제'를 받으면 '+a'를 주겠다는 약속을 걸고, 13조원의 누적흑자에도 지난해보다 밴딩을 낮게 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목표관리제에 대한 공동연구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단계적 시행을 발표한 것인지 정확한 제안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또 추후 목표관리제가 총액계약제로 가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공급자 단체들은 거두절미하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올해도 '협상력'이라는 불합리한 근거로 공급자단체에게 정확한 밴딩을 알려주지 않았다.
 

▲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의협-공단.

이러한 상황 탓에 협상에 성공한 의협과 약사회마저도 불합리한 수가협상 방식에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의협 협상단 측은 "누적흑자 13조원에 더해 국고 미지급금까지 합치면 약 20조원에 달하는 흑자를 쥐고 있는데, 작년보다도 낮은 밴딩으로 정해져 실망스럽기만 하다"연서 "밴딩이 얼마인지, 또 왜 이렇게 정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얘기해주지 않고, 가입자와의 소통창구도 없어 협상이 어렵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약사회 협상단 역시 "공급자들은 공단의 재정이 파탄났을 때 울며 겨자먹기로 마이너스 인상률을 가져갔지만, 공단은 공급자들의 운영 상황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때 흑자를 풀지 않고 있다"면서 "공급자들의 갈증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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