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건강보험 이대로는 안된다 上] ‘저수가-저부담-저보장’ 시스템 한계...건강보험 위기

국내에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된 것은 1977년, 그로부터 12년 뒤인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했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단기간에 포괄적인 의료보장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나라로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부러워 하는 우리의 건강보험과 의료체계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전문가는 그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가까운 시기에 큰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언제부터, 어떻게, 무엇이 잘못된걸까? 건강보험과 우리 의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저수가-저부담-저보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적정수가-적정부담-적정보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건강보험, 재정 확대없인 지속성장도 없다
<하>"공짜 점심은 없다" 혜택만큼 부담 늘려야

'저수가-저부담-저보장' 한계...건강보험의 위기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우리의 건강보험과 의료체계가 곧 커다란 위기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 그럴까?

일단 외부적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수입 감소와 지출 증가 현상이 예측되고 있다. 출산율 감소와 인구 고령화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 데 반해 노인과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지출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저수가-저부담-저보장으로 대변되는 의료정책도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저수가 체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의료기관들은 먹고 살 걱정을 하게 됐고, 비용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급여 진료로 눈을 돌렸다. 정부는 국민의료비 부담 감소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왔지만, 비급여 진료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환자들이 체감하는 의료비 부담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 같은 의료정책은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으로도 이어졌다. 저수가 체계 안에 던져진 의료기관들이 무한경쟁에 나서면서 의원-병원-상급병원이라는 종별 구분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전공의 수급 불균형의 저변에도 저수가가 자리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는 급여과목 대신 미용과 성형과 같은 비급여 진료과목이 인기를 얻은 지는 오래. 흉부외과와 외과 등 힘들고 돈이 안 되는 진료과목은 매년 전공의 미달사태를 겪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무엇이 잘못된걸까? 건강보험과 우리 의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달라진 의료환경 변화에 발맞춰 건강보험과 의료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수가-저부담-저보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적정수가-적정부담-적정보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무엇부터 어떻게 손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출 천문학적으로 늘어가는데...보험료 인상은 '찔끔'

 

▲2010년~2013년 건강보험료 인상률(보건복지부).

건강보험은 국민이 낸 보험료를 주 수입원으로 해, 이를 급여혜택으로 나눠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수입은 매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보험료율과 건강보험가입자 증감에 영향을 받는다. 지출에는 수가인상률과 보장성 강화, 또 환자들의 병원 이용량 증감, 의료행위량 증감, 건강보험운영비 등이 고루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건강보험 수지항목 가운데 국가나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부분은 보험료율과 수가인상률, 보장성 강화 정도다.

정부는 이 세 가지 항목을 매년 건정심에 함께 올려 그 내용을 확정한다. 수가인상률과 보장성 강화 등 지출규모에 맞춰 수입부분인 건보료 인상률을 결정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건정심에서 결정되는 수지규모가 딱 맞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정부는 올해부터 암과 심·뇌질환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는 한편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등 이른바 국민 의료비 부담 증가의 주범으로 꼽히는 3대 비급여를 개선하는 획기적인 보장성강화 정책을 추진키로 했다. 수천억원 내외의 통상적인 의료수가 인상분을 합해 당장 내년 6조원 가까운 금액이 건강보험에서 추가로 지출될 전망이다.

그러나 내년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최근 3년래 최저치인 1.35%로 결정됐다. 자연증감분을 포함해도 늘어나는 수입규모는 3조 4000억 정도다. 정부는 현재 12조원 정도 쌓여 있는 건보적립금을 투입해 수지를 맞춘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준비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감안해 내년도 건보료 인상률인 1.35%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보공단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12조원 정도 누적적립금이 쌓여 있지만 현재의 건보재정이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12조원은 3개월치 급여비 정도"라면서 "흑자라고는 하나 그리 넉넉한 재정상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올해 건강보험인상률인 1.35%로 보험료 인상률을 5년 동안 유지할 경우 당장 내년도인 2016년부터 건강보험 단기수지가 1조원 이상의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됐다.

건강보험료를 충분히 인상하지 않고서는 건강보험재정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건강보험료 인상문제는 그간 우리사회에서 금기처럼 취급돼 왔다. 건강보험재정 위기 때마다 지출합리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시행돼 왔지만, 수입을 늘리기 위한 '정공법'인 건강보험료 인상 논의는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한 탓이다.

건보 보장성만 OECD 하위권?...보험료율도 전 세계 '최하위'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이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한다는 사실은, 정부가 건보 보장성 강화의 배경으로 여러 차례 언급해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건보 보장률은 2010년 기준 62.7%로 OECD 평균 수준인 80%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료율 또한 OECD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실제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 우리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은 나라들은 하나같이 우리보다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5.08%로, 독일의 14.2%(2005년 기준), 프랑스의 13.55%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와 유사한 보험체계를 가진 대만, 가까운 일본의 보험료율도 각각 8.5%, 8.2%로 우리보다 1.6~1.7배가량 높다.

GDP 대비 전체 의료비 지출 또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에 속한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는 6.92%로, 프랑스 10.52%(2002년 기준), 독일 10.64% (2002년 기준), 일본 8.31%(2003년 기준)에 비해 적다.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우리나라는 대외국에 비교해 절대적인 보험료율 자체가 낮다"며 "해당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건강보험의 혜택을 늘리고자 한다면, 당연히 보험료율도 유사한 수준까지 끌고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의료체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바 있는,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과)도 한국의료의 모순을 탈피할 해법 중의 하나로 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송 교수는 최근 열린 대한민국 의학엑스포에 특별연자로 나서 "의료 체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보험료를 8% 수준까지 올리고 의료수가 인상을 전격적으로 단행해야 한다"면서 "건강보험료율을 올리고 국민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정답인데, 누구도 이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보험 대신 민간보험 찾는 환자들...건보료 인상 가능성을 찾다

 

▲민간보험 가입현황(한국의료패널)

획기적인 건강보험료 인상,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보험료 지불 능력으로만 보자면,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이에 대한 힌트는 민간보험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료패널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2008년 70.96%에서 2009년 73.94%, 2010년 75.38%, 그리고 2011년 76.86%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구당 총 민간보험 가입 개수 또한 2008년 2.9개에서 2009년 3.12개, 2010년 3.35개, 2011년 3.61개로 늘었다. 보험가입 개수가 늘면서 가구별 월 평균 민간보험 납입료 또한 2008년 17만 3273원에서 2009년 18만 4556원, 2010년 19만 4463원, 2011년 20만 8153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민간의료보험 시장 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건강보험 시장의 2배다. 건강보험 시장이 저수가-저부담-저보장이라는 기조를 유지해 나가는 동안, 국민들은 민간보험에서 보장성 강화에 대한 갈증을 채웠다. 공보험이 보장해주지는 못하는 의료비 부담에 대한 안전판으로 민간보험을 선택, 수십만원의 비용을 추가로 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성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새정치민주연합)는 건강보험과 비교해 부담은 크고 혜택은 적은데도, 국민들이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한 불안, 또 재난적 의료비에 대한 불안감으로 민간보험시장으로 쏠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이 민간보험에 납부하는 보험료 규모가 건강보험료의 두 배에 이른지만, 혜택은 건강보험 쪽이 몇 십배는 크다"면서 "재벌보험사들은 광고로 질병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해 민간보험시장을 지속 확대하고,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비용을 건강보험으로 돌려서 건강보험에서 더 높은 보장을 받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필요하다면 건강보험료도 인상하되, 단순히 건강보험재원이 부족하니 더 내라는 것이 아니라, 낮은 보장성을 올려서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사적인 지출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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