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이슈 토론
2014 의료계를  되돌아보다

靑馬의 기상으로 출발한 2014년 갑오년이 저문다. 온 국민이 애가 타는 아픔으로 함께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기쁜 일이 무엇이었나 한참을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사건과 사고가 많았던 한 해다. 원격의료, 의료 영리화 논란으로 어수선하게 시작한 의료계 역시 '비정상 의료제도의 정상화'를 외쳤지만 성과는 없이 내부 갈등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불황의 끝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의료·의학계 곳곳을 발로 뛴 메디칼업저버 기자들이 2014년을 돌아봤다.  편집자 주

달리는 평행선 만날 수 있을까
원격의료·적정성 평가 두고 의료계-정부 반목

 

 

 

 

 

손종관 기자

▶손종관(사회): 이번 송년특집 업저버 토크는 특정 주제보다 기자들이 출입하는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고 대안은 없는지, 기자들의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한다. 먼저 2014년을 뜨겁게 달궜던 원격의료를 먼저 살펴보겠다.
▶고신정: 원격의료 이슈를 놓고 의정관계는 내내 롤러코스터를 탔다. 올해 초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 반대를 외치며 총파업을 선언, 극한까지 갔던 의정은 5월 전격적인 의정협의 화해모드로 돌아섰지만 10월 정부가 원격의료시범사업을 단독으로 강행하고 나서면서 다시 대립모드로 돌아선 양상이다.
▶박선재: 복지부와 의협의 대치로 1차의료 활성화 등 각종 의료현안에 대한  논의, 제도개선 작업들도 사실상 올스톱됐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원 격의료에 발이 묶여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선재 기자

▶손종관: 복지부도 곤란하기는 매한가지다. 복지부의 타임스케쥴에 맞춰 일단 시범사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의료계의 불참으로 초반부터 반쪽짜리 시범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말 원격의료 시범사업 수가를 공개, 두둑한 보상이라는 당근을 던지기도 했지만 의료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박선재: 병원계는 원격의료보다 경영면에서 긴장했던 해였다. 이는 정부가   4대중증질환 보장과 병원의 주춧돌 역할을 하게 했던 선택진료비를 추가적으로 폐지하는 등 병원을 옥죄는 정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김수미: 국내 상황이 팍팍해지자 대학병원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서울대병원이 UAE에 진출했고, 서울성모병원도 검진센터를 건립하는 성과를 냈다.
▶박선재: 정부 정책이 대학병원들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갔다면, 중소병원들에게는 훈풍을 불어주는 쪽으

 

고신정 기자

로 움직였다고 분석하고 싶다. 부대사업 을 할 수 있는 자법인 허용 등을 통해 숨통을 틔워 준 것이다. 하지만 자법인 설립이 과연 중소병원들에게 햇살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개원가는 수년째 이어져온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때 정부의 1차의료 활성화 정책에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 과가 없다 보니 전문과목 의사회를 중심으로 스스로 해법을 찾는 모양새다. 
▶손종관: 단체장 교체도 올해 눈길을 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회장과 심평원 원장, 건보공단 이사장도 교체됐다.
▶고신정: 병협은 임기만료에 따라 수순대로 새 회장을 뽑은 케이스지만 의협은 회장 불신임이 계기다. 의 협은 올해 의협 역사에 남을 부침을 겪었다. 106 년 의협 역사상 처음으로 의협회장이 임기 도중 대의원총

서민지 기자

회에서 불신임돼 직  을 잃게 됐다.
▶김수지: 현재 추무진 회장은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잔여 임기를 채우고 있다. 의협은 내년 3월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혼란을 겪은 후여서 관심이 더 집중되고 있다.
▶서민지: 올해 2월 심평원 원장에 손명세 교수, 11월 건보공단은 성상철 이사장이 새로운 수장이 됐다. 손 원장은 비교적 조용히 안착했으나, 국감 등에서 지속적으로 '소극적인 업무', '원장 외 직책 겸임' 등으로 질타를 받으면서 '퇴출'까지도 거론된 바 있다.
▶박현민: 성 이사장은 노조원들의 임명 철회 집회, 출근저지 운동, 텐트농성 등으로 험난한 취임식을 치렀다고 알고 있다. 지금은 각종 공단 행사와 토론회 등을 챙기며 동시에 업무보고를 받는 중이라고 들었다. 

김지섭 기자

▶서민지: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3년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또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올해는 또 빅데이터의 유행에 따라 심평원, 공단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심평원은 빅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정보분석실을 만들었고, 공단은 여러 학회들과 손을 잡으며 질병 예방을 위한 시스템 마련 에 한창이다.
▶김지섭: 제약계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폐지와 리베이트 투아웃제 관련 CP (공정경쟁규약) 활성화에 관심이 높았다.
▶박상준: 올해 9월 논란 속에 있던 시장형 실거래가제도가 폐지되면서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가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로 전환됐다. 당시 유통업계에서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를 '칼자루 쥔 슈퍼 갑에게 권총을 건네준 제도'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이상돈 기자

▶손종관: 올해는 정부의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 이후 제약사들의 변화가 두드러 졌다고 본다.
▶김지섭: 제약협회는 10월 윤리헌장을 선포하고 불법 리베이트 근절과 윤리경영 풍토의 정착을 다짐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리베이트 소식이 터져나왔지만 적어도 상위제약사를 중심으로 한 CP정착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고신정: 그와는 별개로 국회 차원에서는 리베이트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입법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오제세, 인재근 의원 등은 리베이트를 수수한 경우 해당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강력한 법안을 제출했다.


가이드라인과 빅데이터가 만나면
해외학회 가이드라인 ‘봇물’
한국형 지침 개발 활성화 기대 

 

 

 

 

 

 

박상준 기자

▶손종관: 이번엔 학회·학술과 관련한 이슈들을 짚어봤으면 한다.
▶박상준: 가장 큰 학술적 이슈는 단연 가이드라인 발표다. 지난 2013년 미국심장학회(ACC)와 미국심장협회(AHA)에서 이상지질혈증 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미국당뇨병학회 (ADA) 당뇨병 가이드라인, AHA·뇌졸중협회(ASA) 미국 여성 뇌졸중 가이드라인과 뇌졸중 1·2차예방 가이드라인, 영국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의 지질 가이드라인, 미국신경과학회(AAN)의 심방세동 환자 뇌졸중 예방 가이드라인, ACC·AHA의 심방세동 가이드라인 등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상지질혈증, 만성 B형간염 가이드라인,  COPD 진료 가이드 라인, 폐경호르몬요법 가이드라인, 통증관리(스테로이드) 가이드라인 등이 선을 보였다.
▶이상돈: 우리나라 가이드라인의 문제는 대부분이 해외문헌을 근거로 하고 있어 국내 환자 적용에 대한 

 

 

임세형 기자

부분이 논란이다.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나왔다고 해도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선이 많다. 국내 근거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박상준: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최근 학회와 건강보험공단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우리나라 환자들의 특성과 치료 경향, 효과, 비용 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 가이드라인 못지 않은 데이 터가 축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종혁: 국내에서 개최되는 학회 3개 중 한 개는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 다. 우리나라 의료기술을 해외로 알릴 수 있는 순기능보다는 아직까지 재정적인 비용 충당면에서 국제학회로 가는 경향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박상준: 결국 차별화된 내용이 없고, 그렇다보니 해외 참석자들의 참여도가 적은 학술대회가 꽤 있다. 국제학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당장 국제학회를 추진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

박미라 기자

이 한국의 의료기술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인지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안경진: 암과 관련해서는 지난 8월 도입된 다학제 통합진료료가 이슈였다.  환자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치료방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대면 진료가 가능할지 여부와 낮은 수가, 원발암 3회 이내, 재발 시 2회 이내라는 지급 제한 횟수 외에도 외래 진료료이기 때문에 입원환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쟁점이다.
▶박미라: 양전자단층촬영(F-18 FDG-PET) 급여기준 개정도 논란거리 중 하나였는데,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에 따라 그동안 병기 설정시 비급여였던 비뇨기계 암(신장암, 전립선암, 방광암 등)과 자궁내막암 등도 12월 1일부터 PET 검사 시 보험 혜택을 받게 된 반면 증상이 없는 환자의 장기추적검사에 대해서는 과잉검사 방지 차원에서 보험을 적용하지 않기로

안경진 기자

결정하면서 대한핵의학회를 비롯 대한간학회, 대한간암학회, 대한방사선종양학회, 대한폐암학회 등의 반발을 샀다.
▶안경진: 동시 발표됐던 스텐트 고시가 6개월 유예가 결정된 데 반해 PET 검사는 예정대로 시행하되 9월 30일 이전에 예약을 마친 환자에 한해 2년 이내에 1회 촬영을 허용하도록 최종 결정됐다.
▶원종혁: 대한간학회의 만성 B·C형간염 진료가이드라인은 올 한해 주요 업데이트가 있었다.
만성 B형간염의 경우 국내는 아직까지 다약제 내성환자에서 테노포비르 단독치료보다는 병용요법에 무게를 두고 있어 보험급여 문제를 비롯 현실적인 처방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학회는 내년 전면 개정을 앞두고 단독 요법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부분개정을 먼저 공개했다. 급여부분이 따라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해당 제약품목의 매출이 뒤바뀌는 

원종혁 기자

상황이 연출돼 가이드라인과 제약 품목의 연결고리가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박상준: C형간염은 바이러스에 직접 작용하는 차세대 DAA 치료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형성했지만 국내는 아직 페그인터페론 병용요법을 표준치료로 유지하고 있다. 비용효과와 부작용 문제로 유럽·미국 간학회 가이드라인에서 퇴출되다시피 빠진 1세대 DAA 보세프레비르가 지난 6월 국내 승인을 마치고 출시된 상황이라 차세대 DAA의 국내 도입도 머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논란이 되는 비싼 치료제 가격은 내년 주요 이슈로 정부와 학회, 제약사가 풀어야 할 시급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임세형: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세계만성폐쇄성폐질환기구(GOLD)와 세계천식기구(GINA)는 각각 만성폐쇄성폐질환(COPD)과 천식 가이드라인의 업데이트 내용을 발표했다. 관리전략의 틀을 바꿀만큼의 대규모 업데이트는 아니지만, 명확한 국제적 컨센서스가 없던 천식-COPD 중복증후군(ACOS)에 대한 권고사항을 두 학회가 정리해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이다.
▶이상돈: 미국흉부학회(ATS)와 유럽호흡기학회(ERS)는 중증 천식에 대한 공동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증 천식 역시 ACOS와 마찬가지로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영역으로 환자들의 중증도는 높은 편이다. 이에 양 학회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추가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임세형: 국내에서도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가 결핵 진료지침을 필두로 만성기침, COPD, 천식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호흡기질환에 관련해 업데이트된 내용을 발표했다. 만성기침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기침의 정의 , 분류, 진단 및 치료전략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천식 진료지침은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에서 2004년 이후 업데이트한 만큼 최신 GINA 가이드라인을 포함해 많은 부분이 업데이트됐다.
▶원종혁: CHEST, ERS 등 올해 호흡기 관련 학술대회에서는 COPD 신약인 QVA149, 아클리디니움+포르모테롤 복합제 등 신약 관련 근거들이 발표됐고, 새로운 COPD 신약들도 국내에서 승인돼 앞으로의 치료전략에 대한 영향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박미라: 올해 정신건강의학계는 재난 관련 정신건강질환 진단과 치료전략들이 공개됐던 한 해였다. 특히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건을 비롯한 세월호 사고 등의 피해자와 가족, 자원봉사자 등에서 동반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누가 어떻게 치료할지에 대한 여러가지 대안(트라우마 센터 건립, 재난 전문가 양성 등)들이 제시됐다. 정신건강전문가들이 합리적인 정신건강정책과 정신질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사회 참여 선언 역시 눈에 띄었다.
▶이상돈: 올 들어 대한심장학회와 뇌졸중학회가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에 대해 반발하며, 일부에서는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었다. 심장학회는 적정성평가의 상대평가에 의한 줄세우기식 방법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뇌졸중학회 역시 평가기준에 의문을 보였다. 심장질환 적정성평가의 경우 논란 끝에 평가 차질을 빚었다. 심장학회는 여전히 심평원의 일방적인 평가에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손종관: 기자들의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올 보건의료계는 그 어느 해보다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의·약계, 의학계 모두 많은 논란이 진행됐고 또 논란이 한창이지만 분명한 것은 한걸음 한걸음 진전이 있었고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분들의 정보욕구를 충족시키고 살맛나는 보건의료계를 위해 내년엔 더 힘차게 뛰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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