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지표·공개방식 놓고 '불협화음' 지속...맞춤진료는 '그림의 떡' 진료현장 상황 반영 안돼

의료계 곳곳을 누비는 메디칼업저버 기자들이 한 달에 한 번 의료계 최근 이슈에 대해 각계 속사정을 전한다. 첫 주제는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적정성 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으나 최근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와 그에 따른 심장학회의 평가 보이콧 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적정성 평가를 둘러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료계의 불협화음의 내막을 들어봤다.
 

박상준(사회) 적정성 평가를 주제로 첫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겠다.

서민지 적정성 평가는 심평원의 핵심업무로 꼽힌다. 2000년 처음으로 항생제 제왕절개 등 단순질환에서 시작했으며, 해마다 범위를 확대해 최근에는 암이나 뇌혈관 질환 등 심층적인 분야로 나가고 있다. 평가항목은 초기 5개에서 올해 35개까지 늘었다. 심평원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은 물론 국민이 평가 결과를 활용해서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고신정 평가결과와 관련해서는 초기에는 요양기관의 질 향상을 유도하기 위한 단순 평가였는데, 국민의 알 권리 향상이 더해지면서 이후 명단공개 방식이 도입됐다. 압박을 받아 좀 더 잘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이것 또한 해를 거듭하면서 약발이 떨어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수가연계, 잘하는 기관은 수가를 더 주고 못하는 기관은 수가를 덜 주는 가감지급 방식이다. 현재 35개 항목에서 적정성 평가가 이뤄지고 있어 거의 모든 병원이 평가받는 상황이다. 여러 항목이 겹치다 보니 병원은 1년 내내 평가준비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존 의료기관인증평가나 JCI도 있으니 “평가 홍수”, “평가받다 끝난다”는 말이 나온다.

서민지 심평원이 적정성 평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반감도 커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의료 질 향상이 목적이라지만, 이면적으로 전산심사 확대에 따라 남게 된 잉여인력을 활용하고, 기관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적정성 평가로 인한 심평원과 의료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지표 구성자체도 논란이고, 지표를 결정하는 의사결정구조인 중앙평가위원회를 둘러싸고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비판의 목소리를 넘어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가 최근 대법원 패소 판결을 받기도 했고, 심장학회, 뇌졸중 학회에서 보이콧 움직임도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병의 경우 수년간 평가에도 개선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 평가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박상준 심평원은 적정성평가를 하기 전 의사들과 회의를 한다. 어느 정도 조율이 됐으니 평가가 진행되는 것일 텐데 왜 매번 잡음이 나오는 건가?

고신정 평가방식과 평가결과 공개방식을 결정하는 곳이 심평원의 중앙평가위원회다. 중앙평가위원이 22명 정도인데 그 중 의약계 몫이 6명, 소비자단체 2명, 나머지 14명이 심평원 사람이나 심평원 추천인사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의료계 입장에서는 6:14, 혹은 6:16의 싸움, 심평원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손종관 위원회를 통해 전문가 의견을 듣는다고 하는데 정작 위원회가 정부 들러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있다. 정부가 위원회를 내세워서 필요한 정책을 추진한다든가, 정책 방향을 갖고 위원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상돈 학계도 민감하게 보고 있다. 심평원은 적정성 평가 이후 진료 질이 개선됐다고 하는데 학회는 이것이 굉장히 주관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결과지표만 보고 판단한다는 점, 적정성 평가와 진료 개선의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박상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다. 히스토리가 오래된 것들이 항생제와 고혈압이다. 고혈압은 지금 9차 평가가 진행되고 있는데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이상돈 질 평가가 궁극적인 진료의 질 개선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학회와 심평원이 상반되는 입장이다.
서민지 고혈압은 환자 지속관리를 목적으로 지표연동제까지 연동했지만 예상외로 성과가 상당히 미미해서 투자대비 효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항생제는 거의 14년을 했는데 이 또한 결과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항생제 사용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정상범위가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계속되니, 병원들이 여기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항생제 사용이 꼭 필요한 환자에게는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박상준 당뇨병은 3차까지 사업이 진행 중인데 여기서도 평가지표가 문제다. 병용불인정의 경우 학술적 근거는 충분한데 허가사항에서 없기 때문에 쓰지 못한다. 근데 그걸 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병용불인정은 심평원 회의에서도 밝혀졌듯이 0.1%밖에 안 되는데 굳이 그 부분을 적정성평가에 넣을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이번에 새로 들어가는 COPD는 어떤가?

임세형 COPD는 원래 학회에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1차의료기관이 환자들에게 폐기능 검사 없이 경구용 약물 처방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보니 학회에서는 폐기능 검사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문제는 개원가다. 폐기능 검사기를 갖고 있어도 옛날 것이고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사는 것도 부담이고, 흡입기를 처방하면 환자교육시간도 있는데 이에 대한 보전도 안 되는 상황이다. 올해 초에 천식환자 흡입기 처방이 삭감되는 사건도 있어서 여전히 개원가에서는 흡입기 처방에 대해 거리감이 있다. 요컨데, 학회나 심평원 모두 1차의료기관의 폐기능검사를 활성화시킨다는 데 있어 이해가 일치했으나, 개원가 현장에서는 순기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박상준 암 쪽은 어떤가. 작년에 대장암·유방암·폐암에 이어 올해 위암과 간암이 새로 추가됐는데?

안경진 현재 5개 암을 대상으로 평가가 진행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통합평가로 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암학회가 심평원 연구를 수주해 암 종합평가에 관한 기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암센터나 암병원이 많이 생기는 추세고 최근 다학제통합진료 관련해서도 통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안다. 연구는 7월 시작해, 11월 말까지 진행되며 현재 막바지 정리작업이 진행 중이다. 통합평가항목을 마련하고 개별암에 대해서도 개별지표를 만든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예를 들면 가족력 확인과 통증·항암요법 시 부작용 같은 것은 모든 암종에 해당되는 공통지표이고, 암종별 지표도 따로 만들고 있다. 11월 말 보고서가 나오면 유관학회들과 의견 조율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서민지 암 통합평가는 2015년부터 하고, 2017년부터는 10대 암에 대해 통합평가를 진행한다는 것이 심평원의 계획이다. 암 적정성 평가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의사, 병원마다 치료방식과 쓰는 약이 상당히 다르다는 데 있다. A병원에서 쓰는 주된 요법이 평가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인력지표에서도 혈액종양과 여러 가지 관련 세부 전문과목 진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항목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규모가 큰 병원은 지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세부전문의를 다 구할 수 없어서 현실에 맞지 않는 지표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상돈 심장학회와 뇌졸중학회 이야기를 안하고 지나갈 수 없다. 일단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는 기본적으로 평가 자료 제출은 마무리된 상태고, 심장학회에서는 미제출한 곳이 20% 전후로 있기 때문에 상당히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고, 같은 맥락에서 평가결과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급성기뇌졸중평가의 경우 재원일수를 평가지표에 넣는 것이 쟁점이다. 학회에서는 중증 급성기뇌졸중환자는 신속히 치료를 잘해서 생명을 살리면, 당연히 예후개선을 위해서 입원 기간이나 치료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평가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환자 특성에 따른 맞춤치료인데, 재원일수로 평가하다보니 맞춤 진료는 고사하고 진료현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거다.

서민지 급성기뇌졸중 재원일수 지표와 관련해서는 뇌졸중학회와 산하 학회인 뇌신경재활학회의 입장도 다르다. 학회 자체에서는 협의가 이뤄져서 심평원에 강력하게 의료계의 입김을 발휘해야 하는데, 학회 간에도 갈등이 있다 보니 아무 결과도 얻을 수 없었다.

박상준 정신과도 적정성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박미라 정신과는 평가지표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정액수가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이다. 6년째 동결된 수가를 가지고 어떻게 의료의 질을 보장할 수 있냐는 얘기다. 평가지표와 관련해서는 조현병과 알콜장애라는 두 군으로만 질환군을 정해놓고 평가가 이뤄지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원종혁 간암 평가도 당국과 학회 의견이 일치가 안 됐다. 예비평가 때부터 계속 논란이 된 부분인데 시행하는 병원마다 예를 들어 간암이면 무조건 절제한다는 표준화된 툴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병원은 고주파열치료(RFA)라는 방법을 선호하고 다른 곳은 경동맥화학색전술(TACE)을 한다든지 추구하는 툴이 달라서 문제가 있는데도 평가지표에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과평가 지표에서도 수술한 환자 중 간절제술 환자를 대상으로 해서 30일내 사망률이나 원내 사망률을 평가하는 게 원칙인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간절제술 자체가 비교적 간암을 조기에 진단받았거나 전이가 없는 환자에서 간엽절제를 한다든지 간 부분절제 한다는 수술 방침을 두는 건데, 일반적으로 간암환자라고 하면 진단됐을 때 현실적으로 진행이 좀 된 상태에서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지표를 따르면 환자규모 자체가 적고 간절제술을 했을 때 간경변 조직이 남아있거나 간암 재발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일이 있다고 하고,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내 30일 사망률 등으로 싸잡아서 평가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지섭 적정성 평가는 약품의 처방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콕 짚어서 어느 품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처방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제약사 입장에서도 편치만은 않은 제도다. 특히 외래처방 인센티브 외에서도 요양기관에 삭감되는 부분이 발생하니 요양기관 측에서도 무작정 약품을 처방하긴 어려워질 것이다. 항생제가 2개로 충분한데 2개를 쓰는 것이면 옳고 3개를 쓰는 것은 과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나친 평가로 1개 내지는 처방해야 할 것을 못하게 된다면 이는 환자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을 거다. 적정성 평가가 보험재정 측면이나 약품의 올바른 사용 등에 긍정적 효과는 있겠지만, 제약사 입장에서는 과도한 적정성 평가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박상준 병원에서 적정성 평가가 잘 나오면 일단 플래카드를 건다. 일반환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김수지 일반환자 입장에서 정보 얻기가 제한적이니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1등급이라고 하면 일단 신뢰하게 된다.

박상준 적정성 평가에 대한 국민 인지도는 어떤가.

고신정 2012년 소비자시민모임이 13세 이상 성인남녀 10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92.5%가 병원평가를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유가 뭐냐고 하니 84%가 그런 정보가 있는 것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국민 알권리 신장이라는 명분은 좀 무색하다.

서민지 그래도 병원들이 평가에 참여를 안할 수가 없는 것은 줄세우기식 결과 공개 방식 때문이다. 잘못하면 병원이나 의료인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빅5에서 다 른병원 다 1등급을 받는데 A병원만 3등급, 5등급을 받았다고 하면 망신스럽지 않겠나. 좋은 병원, 대형병원일수록 타격이 크더라.

박상준 상대적으로 등급이 안 나오면 감춰야하는 상황이 됐다. 적정성 평가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때라고 본다.

이상돈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얘기하는 부분은 학회가 나설 수 있겠지만, 제반분야에 대한 이의제기는 사실 의협과 병협 등 의료단체들이 해줘야 한다.

서민지 심장학회가 보이콧하면서 행정력 낭비에 대한 인센티브를 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이것은 사실 병협에서 해줘야 할 얘기였다.

손종관 의협·병협 등 의료계와 의학회가 지금 의견을 조율 중이다. 가칭 의료질평가위원회를 두어 전체적인 적정성 평가의 합리적 개선을 위해 의료계 전체의 의견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고신정 학회·세부학회·과목별로 의견이 다르다 보니 의료단체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 쟁점별로 이 학회는 이 얘기, 저 학회는 저 얘기해버리면 협회 입장에서는 한 쪽의 의견은 등지고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박상준 의료계 내에서 소통을 통해 그나마 ‘같이 가자면 이게 제일 좋다’는 정도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려면 모든 얘기를 잘 듣고 이에 대한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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