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병원회 학술세미나에서 주장 제기
새로운 '의료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논의 필요성↑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이상규 원장은 15일 열린 서울시병원회 학술세미나에서 규모의 성장과 질적 경쟁은 병원 경영의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며, '의료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이상규 원장은 15일 열린 서울시병원회 학술세미나에서 규모의 성장과 질적 경쟁은 병원 경영의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며, '의료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그동안 한국의 병원 경영의 화두였던 '규모 확대'와 '고객 만족'은 더 이상 화두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새로운 시대의 병원 경영은 '의료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의대 정원 증원 사태로 인해 국민과 의사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고 있고, 이는 앞으로 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게 당연한 만큼, 이를 회복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15일 서울가든호텔에서 '병원의 ESG 경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제로 열린 서울특별시병원회 제21차 학술세미나에서 '한국 의료시스템 붕괴 위기의 본질과 병원 경영의 생존전략'을 주제로 강연한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이상규 원장은 이 같이 주장했다. 

이 원장은 한국 의료의 붕괴 징후로 △필수의료 붕괴 △병원 경영의 위기 △의료 난민의 발생 △국민 의료비 파산 등을 꼽았다. 

이 원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의료의 파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싸고 좋은 건 있을 수 없다. 만약 존재한다면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을 텐데, 작금의 사태로 전공의들의 헌신과 희생을 국민들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의 보건의료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생산가능 인구의 비율이 높은 인구 구조를 발판 삼아 높은 성과를 거둬왔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거시적 지표는 모두 악화되고 있다. 

미래 생산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고, 의료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초고령층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2020년 한국의 의료비는 OECD 평균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을 넘어섰다. 건강보험 누적수지도 오는 2028년 6조원가량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의료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봉착한 만큼 병원 경영에도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수가 상승 대비 인건비와 재료비가 상승하면서 경영 수지가 악화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 병상 가동률은 감소하고 고정지출은 늘었다. 아울러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의료자원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공공병원, 중소병원을 막론하고 병원계 전반에서 경영 위기를 야기하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의 병원계는 양적 팽창과 질적 경쟁을 승부수로 던져 성장해왔다. 병상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서 규모를 키웠고, 환자를 '고객'으로 대하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며 커왔다. 

그러나 병원의 양적 성장과 질적 경쟁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는 게 이 원장의 지적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가 30~40여년 동안 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삼아왔던 것들을 전 세계적으로 넓혀보면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OECD 국가의 환자 1000명당 급성기 병상 수는 감소 추세다. 고형화 사회가 되면서 의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급성기 병상 수가 감소하는 이유는 병원에서 이뤄지던 것들이 이제는 재택에서 가능해진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환자의 삶의 질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집에 있을 때 더 좋고, 국가 입장에서도 의료비 감소 측면에서 의료기관 재원 일수를 줄이는 게 좋다"며 "재택의료는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더 나아가 환자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적 자원의 배분 차원에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환자를 고객으로 모셔오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왔던 질적 경쟁도 더 이상 경쟁력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국가고객만족도조사 결과를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 간 고객만족도 점수 차이는 사라지고 있다. 병원 간 격차가 적어지고 있다는 것은 고객만족이 병원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새로운 시대의 병원 경영은 '의료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의료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의료 분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올바른 의료 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기 어렵다"며 "의료 제도는 의료 문화로부터 비롯돼 만들어진 것인 동시에 의료 문화를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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