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가이드라인, 스타틴 비권고…사용 가능 약제 '담즙산 결합수지'가 유일
지난해 담즙산 결합수지 계열 콜레스티라민 제제 생산 중단
이상학 교수 "생산 중단은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를 위한 최후의 수단 없앤 것"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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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에게 필요한 약제 생산이 중단되면서 이들을 진료하는 의료진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국내 임신부에게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생산이 중단돼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며 생산을 재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14일 배포했다.

생산 중단된 치료제는 담즙산 결합수지 계열의 콜레스티라민 제제다. 담즙산 결합수지는 장내에서 작용해 혈액으로 흡수되지 않으며 임신 중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국내외 가이드라인, 안전성 이유로 스타틴 비권고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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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면 임신 기간뿐 아니라 미래 산모 및 태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콜레스테롤을 관리해야 한다.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1차 치료제는 스타틴이다. 가격도 저렴해 30여 년 동안 많은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가 스타틴을 복용했다.

하지만 국내외 이상지질혈증 가이드라인에서는 스타틴을 포함한 지질저하제를 임신 기간 또는 모유수유 동안 투약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임신부에서 안전성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다.

2004년 임신 첫 3개월 동안 스타틴에 노출된 임신부에서 중추신경계 결손 5건과 편측사지결손 5건 등을 포함해 기형 사례 20건이 보고돼 임신부에서 스타틴의 위험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를 근거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스타틴 제품 라벨에 임신부에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를 표기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FDA가 해당 내용을 삭제토록 권하는 안전성 서한을 2021년 배포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근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이에 따라 주요 국내외 이상지질혈증 가이드라인에서는 임신부에게 스타틴 치료를 권고하지 않는다. 

미국심장협회·심장학회(AHA·ACC) 콜레스테롤 관리 가이드라인에서는 중증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라면 스타틴을 복용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또 임신을 계획 중인 고콜레스테롤혈증 가임기 여성은 임신 1~2개월 전 스타틴 치료를 중단하고, 스타틴 복용 중 임신을 확인했다면 즉시 투약을 멈추도록 주문했다.

유럽심장학회·동맥경화학회(ESC·EAS) 이상지질혈증 관리 가이드라인 역시 임신을 계획 중이거나 임신 또는 모유수유 기간에는 안전성 데이터가 부족하므로 스타틴 등 지질저하제를 투약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에서도 임신 혹은 수유부에게 스타틴이 절대적 금기라고 명시했다. 

콜레스티라민 대체제 찾지만 사용 가능한 약제 없어

이상지질혈증 가이드라인에서 임신부에게 사용할 수 있다고 유일하게 권고한 약제는 담즙산 결합수지다.

장내에서 혈액으로 흡수되지 않으므로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에게 담즙산 결합수지를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질저하제 치료가 필요한 임신부에게는 담즙산 결합수지 계열인 콜레스티라민 제제를 처방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국내 유일했던 콜레스티라민 제제 생산이 중단됐다. 국내에서 콜레스티라민 제제 성분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를 생산하던 곳은 보령으로, '퀘스트란'을 위탁생산했다. 

제약사 홈페이지의 콜레스티라민 제제 설명에는 '2023년 2월 생산 중단'됐으며 마지막 생산 제품의 사용 기한이 '2026년 2월 22일'이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국내 임신부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담즙산 결합수지 계열인 콜레스티라민 제제의 제품 설명서. 제약사 홈페이지 캡처.
▲국내 임신부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담즙산 결합수지 계열인 콜레스티라민 제제의 제품 설명서. 제약사 홈페이지 캡처.

생산 중단 결정 이후 1년이 지나는 동안 의료계는 콜레스티라민 제제 재고를 처방해 왔으나 최근 약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콜레스테롤 조절이 필요한 임신부는 500명당 1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20~40세 가임기 여성이 620만명이고 중증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 비율을 고려하면, 가임기 여성 중 약 1만 2000명이 중증 고콜레스테롤혈증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1만 2000여 명의 중증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가족성고콜레스테롤혈증 사업단장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상학 교수(심장내과)는 "제약사가 생산 중단 결정 내용을 모든 의료진에게 고지하지는 않는다. 이에 많은 의료진이 콜레스티라민 제제가 시중에 없다는 것을 3~4개월 전 알게 됐다"며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에게 콜레스티라민 제제 외 사용할 수 있는 대체제가 있는지 물어보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우려가 깊어지면서 학회 차원에서 생산 재개를 요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콜레스티라민 제제를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주길"

학회는 콜레스티라민 제제를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생산을 재개하고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퇴장방지의약품은 환자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나 경제성이 없어 제약사가 생산 및 수입을 기피해 원가 보전이 필요한 약제를 의미한다. 콜레스티라민 제제는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를 위한 유일한 약제이기에, 경제성을 이유로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하지 않고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게 학회 주장이다. 

이 교수는 "콜레스티라민 제제는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에게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생산을 중단한 것은 최후의 수단을 없애버린 것"이라며 "현재 중증 고콜레스테롤혈증 임신부에게 사용 가능한 약제가 없어 어려운 상황이다. 생산이 재개돼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이 콜레스티라민 제제를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주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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