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패키지에도 재정 계획은 없어
의대정원 2000명 확대, 대학의 투자 계획과 의지 확인만으로 가능할까?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최근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정원 2000명 확대 등 우리나라 의료계를 바꿀만한 엄청난 정책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재정 계획은 빠져 있어 포장만 요란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일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확보, 공정보상 등을 외치며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했다. 6일에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공개했다. 

"재원 조달 계획 없어 복지부 실현 의지 있나 의문"

필수의료 패키지 중 병원을 전공의 중심에서 전문의로 개편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빠져있다. 병원 현장의 전문의들은 정부가 "이상적 꿈을 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병원이 전공의 대신 전문의 중심으로 돌아가면 좋지만, 현실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병원 경영진이 전문의 채용 비용을 감당할지와 전문의들이 병원에서 전공의처럼 근무하려 할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현재 입원전담전문의도 채용하기 어렵고, 중환자실 인력도 구하기 힘들다. 그런데 전공의처럼 일할 전문의를 찾는 것은 이상에 가깝다"며 "물론 노력한 만큼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가능할 수 있다"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재원 조달 등의 비판이 나오자, 정부가 계획을 제시했지만 이 또한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 브리핑에서 박민수 차관은 "미국은 정부 R&D 자금뿐 아니라 민간 자금도 많다"며 "우리나라는 '바이아웃' 제도가 없는데, 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와 보스턴프로젝트 등 보건의료 R&D를 늘리고 건보재정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두루뭉술한 재정계획이 아닐 수 없다. 

의대 2부제 교실 생겨야 수업 가능?

6일 복지부는 의대정원을 내년부터 2000명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6일 복지부는 의대정원을 내년부터 2000명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지만 이에 대한 재정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대학들이 투자 계획과 의지를 확인했고, 평가 인증 제도를 강화하면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또 기초의학 등 과목별 교수를 늘리고, 필수의료 실습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현장 분위기는 정부 입장과 사뭇 다르다. 의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을 지낸 A 교수는 "의대 정원의  3분의 1이 증가하느데, 갑자기 증가한 이 학생들을 어디서 누가 교육시킬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빠졌다"며 "정부가 구체적 계획도 없이 엄청난 발표를 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병원 A 교수는 "철저한 준비 없이 의대생을 많이 늘리면 서남의대 꼴이 날 수 있다"며 "의대 학생을 늘리면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등 기초의학 교수가 더 많아져야 하는데, 지금도 이들이 없어 애를 먹는데 어디서 기초의학교수를 구할 수 있겠냐"라고 반문했다. 

"실행의지 있었다면 기재부와 논의한 재정계획 나왔을 것"

6일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세부 내용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6일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세부 내용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지방에 있는 의대를 더욱 어렵게 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에 있는 의대가 기초의학 교수들을 채용하면 지방 의대에 근무하던 교수들이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걱정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의대증원을 2000명으로 밀어붙이면 2부제 교실, 온라인 수업 등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지방의 모 대학병원 교수는 "지금은 학생 40~50명 정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학생이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학생을 절반으로 나눠 2부제 교실을 운영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토로했다. 이어 "2부제 수업을 하면 교수는 2번 강의해야 하니까 더 힘들어질테고, 온라인 수업은 아무래도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필수의료 패키지 등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정책 어디에서 재원 조달 계획은 하나도 없다. 포장만 요란할 뿐"이라며 "제대로 하려면 기획재정부와 논의해 재정 계획이 나왔을 것이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것이 빠졌다는 것은 공무원들이 본인이 있는 동안에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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