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부 박선혜 기자.
학술부 박선혜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야생에서 나는 살구인 개살구는 겉보기에 먹음직스러운 탐스러운 모양을 띤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맛은 씁쓸하고 떫어서 먹을 수 없다. 이에 겉보기는 좋으나 내실이 없는 경우를 '빛 좋은 개살구'라 한다.

최근 국내 당뇨병신장질환(당뇨병콩팥병) 진료지침이 논란이다. 당뇨병신장질환 환자를 진료하는 두 유관학회가 비슷한 시기에 다른 권고안을 담은 진료지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대한신장학회는 지난 4월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당뇨병콩팥병 관리 진료지침'을 발표하고 책자를 배포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 5월 개최된 춘계학술대회에서 당뇨병신장질환 권고안을 담은 '당뇨병 진료지침'을 공개했고 현재 개정 마무리 단계에 있다. 

문제는 두 학회가 협조하지 않고 당뇨병신장질환 권고안을 개발해 서로 다른 권고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당뇨병학회 학술대회에서는 당뇨병신장질환 권고안을 두고 두 학회의 설전이 벌어졌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된 내용은 당뇨병신장질환 환자의 혈압조절과 신장내과로의 의뢰에 대한 권고안이다.

진료지침에서 권고한 당뇨병신장질환 환자의 목표혈압의 경우, 신장학회는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 당뇨병학회는 '130/80mmHg 미만'이다. 당뇨병학회는 국내 환자 혈압 관리를 위해 다른 유관학회와 같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협업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신장학회는 대규모 연구가 필요한 상황에서 국제적 변화를 선제적으로 반영했다고 맞섰다.

신장내과로의 의뢰에 대해서는, 당뇨병학회는 만성신장질환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만성신장질환과 관련된 다양한 대사적 이상의 치료가 어려운 경우 또는 추정 사구체여과율이 30mL/min/1.73㎡ 미만으로 신대체요법을 고려 중인 경우 신장전문의에게 의뢰한다고 명시했다.

신장학회는 당뇨병 환자에서 알부민뇨가 있거나 추정 사구체여과율이 60mL/min/1.73㎡ 미만일 경우 콩팥 손상의 원인 감별과 향후 관리를 위해 신장전문의 협진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신장학회가 제시한 범위는 광범위하다는 게 당뇨병학회 지적이다.

진료지침을 만드는 이유는 진료와 관련해 의사와 환자 간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또 진료지침 개발 시 유관학회의 지지승인을 받는 과정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두 학회 진료지침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마련됐고, 책자로 배포된 신장학회 진료지침은 당뇨병학회의 지지승인을 받지 않았다. 

진료지침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잘 아는 전문가들이 모인 두 학회가 진료지침을 만들기 전이 아닌 이후에 각자의 의견을 쏟아내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진료현장 혼란과 국민 건강 악화는 누가 책임질까. 

두 학회는 앞으로 의견 차이를 좁혀나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진료지침 개발 전부터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번 논란이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증일 수 있겠지만, 진료지침을 발표한 이후 불거지는 게 옳은지 생각해야 한다.

겉으로는 유용해 보이지만 전문가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진료지침은 진료현장에 의미 있지 않은 전문가 의견일 뿐이다. 유관학회가 협력하지 않고 개발·배포하는 진료지침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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