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 전문가 의학적 판단 따른 처방 자율성 확보 필요
항암 신약 접근성 확대 위한 지속가능한 별도 기금 조성돼야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정부는 암 질환 및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보장성 강화 정책과 함께 신약 접근성 제고를 위한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보장성 강화 정책과 신약 접근성 제고를 위한 약가제도 개선에 대해 의료현장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 약가제도 개선에 대해 체감하기 힘들며, 과거 정부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해 신약 접근성은 퇴보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지는 특별 기획으로, 의료행위 및 치료약제 관련 건강보험정책에 대한 의료현장 전문가들의 솔직한 의견을 논의하는 지상 토론의 장인 'M-AGORA'를 마련했다.

이번 M-AGORA는 '암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Unmet Needs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강진형 교수(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와 김열홍 유한양행 R&D 사장(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의견을 들어봤다.

유한양행 R&D 김열홍 사장(사진 왼쪽), 서울성모병원 강진형 교수
유한양행 R&D 김열홍 사장(사진 왼쪽), 서울성모병원 강진형 교수

Q. 암 전문가들이 의료현장에서 진료하기 위한 바람직한 환경은 무엇인가?

강진형 교수(이하, 강)- 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암 환자 치료를 위한 처방에 있어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현재 암 치료 방식은 수학공식처럼 1차 치료를 위한 약제 처방, 2차 치료를 위한 약제 처방 등 정해져 있다. 이런 공식이면 암 전문의가 아닌 의사들도 암 치료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암 환자에 대한 경험이 많은 암 전문의가 치료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오랫동안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치료에 대한 폭넓은 자율권과 보상제도, 인센티브가 필요하며 아울러 전문의의 책임과 의무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는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규제일변도의 정책만으로는 올바른 의료행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

김열홍 사장(이하, 김)- 우리나라는 의료법상 면허를 가진 모든 의사는 어떤 진료든 할 수 있다. 모든 진료에서 차별화된 수가가 없다. 특정분야 전문의가 진료할 때 보험 수가를 더 제공하지 않는다.

똑같은 약제와 진료, 수술을 해도 전문가마다 정말 잘하는 분들이 있다. 치료 중 부작용이 발생할 때 제대로 대응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대처를 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 

전문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파생되는 문제점들도 있다. 유튜브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환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지만 자칫 잘못된 정보로 적기에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정부에 이런 부분을 제안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Q. 임상 현장에서는 보험정책으로 인해 가이드라인에 따른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기 어렵다는 불만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강진형 교수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강진형 교수

 

- 저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같은 의사라도 진료를 하는 입장과 심사평가를 하는 입장은 다른 것 같다.

진료하는 입장은 공세적인 치료법이 필요하지만, 심사평가하는 입장은 방어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하는 전문가들은 3상 임상시험을 성공한 약제에 대해 미국은 바로 쓸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성공한 3상 임상시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허가하고 있다.

미국은 허가가 이뤄지면 바로 보험이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허가 부처와 보험급여 부처가 분리돼 있다. 양 부처가 대립관계는 아니지만, 각자 자신들의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다.

허가는 허가일뿐 급여는 별개 사안이 되고 있다. 신약이 허가받고 보험급여가 적용되기까지 보통 300일~500일이 걸리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는 당연히 그 기간 동안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환자 역시 신약이 허가됐는데 왜 못쓰느냐고 의료진에 민원을 제기한다. 보험급여가 적용되면 본인부담률이 5%로 뚝 떨어진다. 본인부담률 5%는 솔직히 보험가입자에게는 무상의료에 가까운 커다란 혜택이다.

또 다른 이유는 보험급여가 되지 못한 신약 중 비급여로 처방하는 과정에서 용량 등 여러 규제로 인해 환자에게 실제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치료하는 침샘암 환자가 있다. 이 환자는 현재 암 세포가 뇌신경까지 침범해 항암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침샘암 치료를 위해 면역항암 치료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현재 침샘암에 대한 급여기준이 없다. 비급여로 사용해야 한다. 비급여로 처방하려고 해도 1차 치료에서 기본적인 세포 독성 항암제를 쓰고, 실패했을 때 2차로 비급여로 쓸 수 있다.

환자가 100% 본인부담으로 면역항암제를 투여받고 싶어도 이런 조건 때문에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정부는 규정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는 치료결과에 대해 평가를 받고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전문의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환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유한양행 R&D 김열홍 사장 
유한양행 R&D 김열홍 사장 

- 건강보험 시스템은 국민들의 정서와 국가의 전반적인 경제 규모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보다 규제가 강한 나라다. 한 번에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 수용성 문제도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의료현장의 암 전문가들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해야 한다. 특히 항암제는 개연성과 공통점이 많다.

전문가들의 판단이 중요한 분야다. 전문가들에게 맡겨 놓으면 좋지만, 전문가들 간에서도 서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려운 난제 중 하나다.

Q. 암 전문가들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문가 평가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동료의 논문을 평가할 때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암 진료 전문가에 대한 동료 평가 역시 논문 평가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암 전문가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마구 처방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의사가 자율적으로 암 치료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미국식 평가체계가 없다.

규제기관은 인허가에 대한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결국 바이오벤처 회사들은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좋은 물건이 있어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규제기관의 문턱이 높아 혁신적 신약이 허가받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문가들이 전문가들을 평가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전문가 상호 평가가 이뤄지는 것을 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에 대한 대국민 불신을 해소될 수 있다.

Q. 박근혜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지속적으로 보장성 강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 보장성 강화 정책의 목적은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정 파탄을 막는 것이었다. 보장성을 강화해 질병으로 인한 가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혁신 신약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약가와 의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건보재정 및 가계 재정에 여유가 생겼다. 환자 및 보호자들은 여유가 생긴 가계 재정을 비정형 의료에 투입하고 있다.

가족 입장에서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지만, 정통적인 의료가 아닌 분야에 치료비가 들어가는 것은 보장성 강화 목적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특히 고가 신약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보장을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은 약가 및 보험급여 적용을 결정하는데 국민이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 맞춰 보장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비정형 의료 분야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최근 모 시민단체가 5000여 명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현재 중간 결과가 나왔다. 대략적 내용에 따르면, 국민들은 경증보다 중증에 맞춰 보장성을 강화하기를 원했다. 신약과 신의료기술에 대한 접근성 강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부가 주장하는 만큼 고가 신약에 대한 접근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국고지원 역시 현재 14~16% 지원에서 20%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민들이 상급병원을 이용하는 병원이용률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구축은 어렵다.

지금처럼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내원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재원을 투입해도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1, 2, 3차 의료기관에 대한 명확한 의료전달체계가 정립돼야 한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춰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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