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13인 전문가 성명 발표
임신 중 노출 시 태아 신경발달장애 등 위험 높아질 수 있다는 근거 쌓여
"의학적 적응증에 따라 단기간 최저 유효용량 복용해야"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들이 임신 중 타이레놀 등 아세트아미노펜(파라세타몰) 계열 해열진통제 복용에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노출이 태아 발달에 영향을 미쳐 신경발달장애, 생식기 및 비뇨기질환 등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근거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임산부는 의학적 적응증에 따라 아세트아미노펜을 가능한 한 단기간에 최저 유효용량을 복용해 약물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자궁 내 태아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명확하게 확인될 때까지 임신 중 투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해열진통제가 태아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어떻게 소아기의 부정적 예후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권고안이 담긴 전문가 성명은 Nature Reviews Endocrinology 9월 23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명 발표에는 미국과 유럽의 임상의, 역학 전문가, 독성학·내분비학·생식의학·신경발달학 등 관련 과학자 13인이 참여했다. 성명의 권고안은 1995년 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발표된 동물·세포 기반의 실험실연구와 역학연구 등을 검토한 결과로 마련됐다. 

이번 성명은 저자 13인을 포함해 호주, 브라질, 캐나다, 유럽, 이스라엘, 스코틀랜드, 영국, 미국 등 국가의 91명 과학자로부터 지지서명을 받았다.

태아기 아세트아미노펜 노출 시 위험 경고한 연구 발표

아세트아미노펜은 경도~중등도 통증을 완화하고 해열을 위해 사용하는 600개 이상 의약품의 유효성분이다. 임신 중 복용할 수 있는 안전한 진통제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는 임산부는 약 65%, 전 세계에서는 50%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태아기 때 아세트아미노펜 노출 시 태아 발달 과정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발달장애, 생식기 및 비뇨기질환 등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을 확인한 실험실·역학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는 것.

성명에 의하면, 태아기 동안 아세트아미노펜에 노출됐던 남아는 고환이 비정상적 위치에 있는 잠복고환 위험이 높아지고 항문과 생식기 거리가 짧아진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또 태아기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여아의 조기 사춘기 발달이 관련됐다는 근거도 제시된 바 있다.

이와 함께 역학연구에서 태아기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신경발달장애 및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자폐스펙트럼장애, 언어지체, IQ 감소 등의 연관성도 확인됐다.

성명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내분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로 판단했다.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화학물질은 신경, 생식기 및 비뇨기 등 발달에 필수인 내인성 호르몬의 활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게다가 아세트아미노펜은 태반과 혈액-뇌 장벽을 쉽게 통과한다고 알려졌기에, 성명에서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대사의 변화가 발생하면 임산부와 태아는 독성 영향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정리했다. 

전문가들이 권고한 예방적 조치는?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아세트아미노펜의 활성과 태아 발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 실험실·역학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성명을 통해 제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므로, 전문가들은 임상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예방적 조치를 성명에 담았다. 이를 토대로 임신 전 또는 임신 초기인 여성은 의료진과 약물 치료에 대한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먼저 임산부는 의학적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이어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필요한지 확실하지 않거나 장기간 투약하기 전 의료진 또는 약사와 상담하도록 했다.

아울러 임산부는 가능한 한 단기간에 최저 유효용량의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해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명에 따르면, 기존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아세트아미노펜을 2주 이내 단기간 사용하면 가장 위험이 낮았다. 

구체적으로 아세트아미노펜에 2주 이상 노출되면 잠복고환 위험이 증가했다. 게다가 잠복고환 위험과의 연관성은 태아 발달에 중요한 시기인 임신 제1삼분기 후기와 제2삼분기 초기에 2주 이상 아세트아미노펜에 장기간 노출될 때 관찰됐다.

이 같은 데이터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 시기와 기간이 중요하며, 단기간 복용 시 위험이 작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성명에서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인식 제고를 위한 권고안도 제시했다.

먼저 2015년 미국식품의약국(FDA) 안전성 서한 권고안은 실험실·역학연구를 포함한 모든 과학적 근거를 검토해 업데이트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안전성평가위원회(PRAC) 권고안도 해당된다.

산부인과 관련 협회는 이용 가능한 모든 연구를 검토해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대중에게 아세트아미노펜의 안전한 사용에 대해 알리는 'The Acetaminophen Awareness Coalition'는 의학적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임산부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면 안 된다는 표준화된 경고문을 추가하도록 제언했다.

이어 국가와 관계 없이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을 판매할 경우 임신 중 복용 관련 권고안을 따라야 하며, 이에 대한 경고 라벨이 제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능하면 아세트아미노펜을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 국가와 같이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성명 발표에 참여한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Ann Z. Bauer 박사는 "성명의 핵심 메시지는 의료진은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의 위험을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이를 여성에게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의학적 적응증에 해당하면 짧은 기간 동안 최저 유효용량을 사용해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임산부는 의료진과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아 발달과 직접적 연관성 입증한 근거 없어…향후 연구 필요

그러나 성명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산부인과학회(ACOG) Christopher Zahn 부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성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태아 발달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입증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다.

Zahn 부회장은 "신경발달장애 원인은 다양하다. 한 가지 원인과 연관시키기는 상당히 어렵다"며 "뇌 발달은 최소 생후 15개월까지 멈추지 않는다. 소아는 잠재적으로 뇌 발달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요인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향후 추가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의료진 감독 없이 임산부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요했다. 

성명 발표에 참여한 미국 마운트시나이 아이칸의대 Shanna Swan 교수는 "이상적인 사람 대상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임신 기간과 태아의 노출 기간 등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