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제약사, 직무발명제 도입 놓고 저울질...학계·법조계 "개선 필요"

 
#. A 국내 중소제약사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최근 블록버스터 약물이 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발굴, 특허를 등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대감 한켠에는 부담감이 있었다.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한 직원으로부터 ‘직무발명제도’를 근간으로 특허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제기되면서부터다. A 제약사는 고민에 빠졌다. 보상금을 지급하자니 액수가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보상금 지급을 무시하자니 절차적 정당성을 입증하기가 부족해 회사의 주축이 될 후보물질 특허가 무효가 될 판국이었다.上. 공들인 우리 회사의 특허가 물거품이 된다?下. 직무발명제도의 여러 쟁점...개선 필요성 목소리도또 다른 쟁점 '오픈이노베이션'신약 개발 과정에서 필수로 자리잡은 '오픈이노베이션'. 국내 제약사 한 곳이 후보물질 리서치부터 임상 3상까지 신약개발 전 과정을 수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제약업계에서는 신약 개발을 위해 바이오벤처나 산학협력단, 타 제약사와 함께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장려되고 있다.이 같은 오픈이노베이션에서도 직무발명 이슈는 존재한다. 특히 산학협력단과 함께 진행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예를 들어 A제약사와 B대학 산학협력단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해당 후보물질의 핵심적인 특허는 누구에게 귀속될까.정답은 없다. 핵심적인 특허 발명 과정에서의 기여도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산학협력단과의 공동연구 계약 체결에 앞서 서로 간에 계약을 분명히 해야 향후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그 대표적인 예가 '툴젠과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분쟁' 사례다. 앞서 서울대학교 김진수 전(前)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기술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 전 교수가 서울대 재직 당시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원천기술을 직무발명으로 신고하지 않은 채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 툴젠으로 빼돌렸다는 게 요지다.정 변호사는 "대학과 연계해 연구개발을 진행할 때 누가 핵심 발명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된다"며 "이에 따른 분쟁을 없애려면 당사자 간에 계약을 분명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실제 국내 한 상위사는 산학협력단과의 공동연구 시 사전에 직무발명에 대한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연구 성과 발표 내용 조율 △연구 결과물 도출 시 그 결과의 공유 범위 △실제 이익 발생 시 분배 등이 흔히 발생하는 분쟁 사유이기 때문이다.이 회사 관계자는 "산학협력단은 성과를 발표하고 싶어 하고, 결과물이 도출되면 해당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제약사에서는 전략적 측면에서 이를 꺼리는 경우가 있어 마찰이 발생한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특히 실제 이익이 발생했을 때도 산학협력단은 많은 이익을 받고 싶어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상업화 성공 여부에 대한 위험을 안은 채 이익분배 계약을 체결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중소제약사, 제도 도입 놓고 ‘저울질’상황이 이렇자 국내 중소제약사는 직무발명제도 도입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다.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가정하면 셈법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국내 한 중소제약사는 내부적으로 직무발명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도입을 유보하기로 했다. 직무발명제도가 제약분야에서 이슈가 될 때까지는 도입을 보류해도 영향이 적을 것이란 판단에서다.다만, 향후 발생할 특허 관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봉계약서에 '직무발명 시 회사 내규에 따라 보상한다'는 조항을 삽입하기로 결정했다.해당 제약사 관계자는 "직무발명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간에 협의하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직무발명제도가 제약분야에서 이슈가 되지 않은 점, 다른 제약사도 특별한 보상규정이 없는 점, 직무발명 보상금액을 적정하게 산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직무발명제도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반면 직무발명제도의 필요성을 인정, 도입을 검토할 의향이 있는 곳도 있었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소지를 아예 없애겠다는 의도다. 또 다른 국내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직무발명제도 도입을 통해 핵심 특허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취득, 권리화할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라고 본다"며 "특히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소지를 없앨 수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직무발명제도 도입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렇다면 실제 직무발명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는 상위 제약사들의 실정은 어떨까. 이들은 직무발명제도가 악용되는 사례를 언급했다.한 상위사 관계자는 "직무발명제도를 통해 보상을 받은 직원이 퇴사하면서 보상을 더 받겠다며 마찰을 일으킨 적이 있기도 했다"며 "연구인력의 사기진작과 연구의지 독려 차원에서 직무발명제도는 필요하지만,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했다.또 다른 상위사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공동연구개발 과정에서도 직무발명을 근거로 한 마찰은 비일비재 한 상황"이라며 "일각에서는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보다 연구개발을 위탁하거나, 신규 물질을 대학으로부터 구매하는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계·법조계 “제도 개선 필요”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직무발명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승주 초빙강의교수는 '현행 직무발명제도의 고찰 및 개선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절차가 복잡하고 기업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현재의 발명자주의에 기반을 둔 직무발명제도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직원과 기업 간의 실질적인 이익의 형평성을 위해 직무발명제도를 사용자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며 "다만, 처음부터 발명의 권리가 기업에 귀속되면 직무발명 보상 과정에서 대등한 협상이 불가능한 만큼 인센티브 활성화 등 다양한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종식 변호사는 직무발명제도 내 소멸시효 규정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2011년 7월 대법원 판결에서는 직무발명 보상금 청구권은 일반 채권과 마찬가지로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고 봤다. 

우 변호사는 "제약업의 특성상 직무발명 이후 특허로서의 역할을 하기까지 기간이 긴 만큼 10년이라는 소멸시효는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약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예외적 조항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편, 발명진흥회는 중소기업들이 직무발명제도를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할 방침이다. 발명진흥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직무발명제도 도입이 낮은 데는 해당 제도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게 핵심인 만큼 인식제고 차원에서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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