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Pragmatic) RCT 연구 중요성 대두…등록사업·의료기록 등 이용해 RCT 진행 국내 전문가 "우리나라 실용적 RCT 할 수 있는 최적 조건 갖췄다"
국내 학계에서는 실용적 RCT가 우리나라에 최적화된 연구 디자인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단일 건강보험 체계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국민들의 의료 데이터가 모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건보공단 또는 심평원 자료를 통해 환자가 복용한 치료제, 입원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다. 전 국민 의료기록이 모니터링된다"며 "때문에 환자가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일일이 예후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실용적 RCT를 잘할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임상연구 1등을 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대규모 등록사업이나 코호트가 잘 구축돼 있으면 실용적 RCT를 시작하기 쉽다"며 "우리나라는 단일 건강보험 체계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실용적 RCT를 진행하기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발목 잡혀…"좋은 시스템이 있는데 시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실용적 RCT를 하기 위한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실정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개인정보' 문제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고 개인의료정보가 민감한 개인정보로 여겨져 환자들의 연구 참여 동의를 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실용적 RCT 진행 전 환자들의 연구 참여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한 링크를 환자에게 보낼 경우, 링크를 열기 위해선 환자의 주민등록번호, 의료 식별번호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링크에 주민등록번호, 의료 식별번호 등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반대한다"며 "우리나라는 실용적 RCT를 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보다 연구를 시작하기가 힘들다. 현재 연구를 시작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병원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심의도 실용적 RCT의 발목을 잡는다. 현재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서는 IRB에서 연구 계획서, 서면동의 방법 등을 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실험적 RCT라면 이 과정을 거친 뒤 최종 동의를 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그러나 실용적 RCT는 환자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연구를 하며,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수집하는 의료기록을 추적관찰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실용적 RCT에 대한 IRB 심의 시 환자 동의서 면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IRB 심의를 하시는 분들이 아직 실용적 RCT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다. 실용적 RCT는 일상적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하기에 극단적으로는 환자 동의서를 면제할 수도 있다"면서 "아직 실용적 RCT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연구자 수가 적어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아, IRB 심의에서 실용적 RCT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내에서 실용적 RCT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많은 연구자가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새로운 연구의 장점을 인식하는 연구자가 많아야 연구를 시도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법규 등이 따라올 것이다. 아무도 연구하겠다고 요청하지 않으면 변할 리 없다"며 "연구자들이 실용적 RCT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심장학회는 지난해와 올해 열린 학술대회에서 실용적 RCT에 관한 논의 세션을 마련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올해 추계학술대회에서는 대한심혈관중재학회 차원에서 진행한 K-PCI 등록사업을 활용해 실용적 RCT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