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중증환자 수술-진료시 페널티·일차의료 폄훼 '반발기류'...'회원 패싱' 논란도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이 2년여간 공을 들인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의 초안이 공개됐다.

향후 이뤄질 정책 개선의 기초이자 의료계의 자율이행을 전제로 한 '권고문' 형태인데, 내용의 적절성을 두고 벌써부터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열린 의협 보험위원회·상대가치평가적정수가기획단·대개협·각 학회·각과 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 연석회의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권고문 초안'을 공개하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이번 권고안은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 논의의 결과물이다. 앞서 정부는 메르스 사태 재발방지책의 하나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꼽고, 그 이행 방안 마련을 위해 2015년 1월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렸다. 

협의체 참여단체(기관)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 측과 의사협회·병원협회·의학회·예방의학회·내과의사회 등 의료계와 학계, 녹색소비자연대·환자단체연합회·보건의료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등이다.

협의체는 당초 그 해 7월까지 결과물을 도출하겠다고 밝혔으나 의견수렴에 난항을 겪으며 표류했다. 잊혀졌던 협의체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문재인 케어 발표와 맞물려서다. 정부는 문케어와 더불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협의체 논의가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정부는 이번 초안을 바탕으로 다음달 중순께 전달체계 개편안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문 케어 세부 로드맵 발표와 함께 준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의협 임익강 보험이사는 "권고문은 향후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관련한 제도개선과 시행의 기본이 될 예정으로, 12월 중순 쯤 최종 윤곽이 나올 것"이라며 "지난 5개월간 물밑작업이 있었다. 권고문이 나와야 내년 시행될 정책을 위한 재정 추계 등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전달체계개선 권고문 무슨 내용 담겼나?

 

의료전달체계개선 권고문은 ▲기능 중심의 의료기관 역할 정립 ▲의료기관 기능 강화 지원 ▲환자중심 의료를 위한 기관간 협력 및 정보 제공 강화 ▲의료기관 기능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 체계 합리화 ▲의료기관 기능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 체계 합리화 ▲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상시적 추진체계 마련 등 5가지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기능중심의 의료기관 역할 정립'과 관련해서는 '일차의료기관은 지역사회 내에서 간단하고 흔한 질병에 대한 외래진료·만성질환 등을 담당해야 하고, 2차 의료기관은 일반적 입원·수술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상급종합병원은 연구와 수련을 근간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원 외래 경증-병원 입원 중증-상급병원 연구 고위험환자로 이어지는 전달체계의 기본 모형과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의료기관 기능 강화 지원'에서는 전달체계 개편을 유도할 수 있는 수가구조 개편방안을 다뤘다. 수가 가감을 통해 의료기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인 요인을 마련한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상급병원이 경증환자를 보면 병원에는 수가를 감산하는 페널티를, 환자에게는 본인부담률 인상이라는 부담을 주며 반대로 의원에서 수술과 입원 등의 진료를 할 경우에도 수가를 깎고,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전달체계상 제 역할을 했을 때 수가를 더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수가를 감산한다는 원칙에서다.

이 밖에 '의료기관 간 협력 및 정보제공 강화'와 관련해서는 의뢰-회송체계 강화와 영상정보 등 의료기관간 정보관리 강화 방안이, '의료자원 효율적 관리'와 관련해서는 병상수 조절 및 권역병원 지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상시적 추진체계를 마련한다'는 내용도 권고문에 담긴다.

의원 중환자 진료시 패널티? "말도 안 돼"...'회원 패싱' 논란도

 

의료계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을 폄훼한다거나,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일차의료기관의 노력이 오히려 수가 감산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개원영상의학과의사회 심정석 보험이사는 "의원급에서 병원급에 준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과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의원에서 병원수준의 의료행위를 제공했다고 페널티를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총무이사는 "의원에서 수술받는 환자도 많다"며 "의원에서 수술하거나 의원에 입원한 환자에 대해 본인부담을 인상하는 것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달체계 개편이라는 목적에 매몰되어 일차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폄훼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관계자는 "'일차의료기관은 지역사회 내에서 간단하고 흔한 질병에 대한 외래진료·만성질환 등을 담당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일차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폄훼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의협이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권고문 합의를 강행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각 학회와 이사회 임원을 맡고 있는 참석자들에게도 그 내용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인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의료계 내부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회원들의 중지를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졸속적인 의견 수렴" "동의하라는 협박"이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임익강 보험이사는 "의협에서 지난 2015년 시도의사회화 각 학회, 개원의협의회 등의 의견을 모아 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의협안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2년간 협의체 논의를 한 것"이라며 "소수의 의견으로 논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나 논의가 부족했던 학회나 의사회가 있다면 추가로 의견을 달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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