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YRAL HTN-OFF MED, 항고혈압제 복용 않는 경도~중등도 고혈압 환자에서 효과 확인

▲ 고대 구로병원 박창규 교수가 신장신경차단술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고대 구로병원고혈압 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신장신경차단술'이 최근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지난달 열린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항고혈압제를 복용하지 않았거나 중단한 경도~중등도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신장신경차단술의 혈압 강하 효과를 입증한 'SPYRAL HTN-OFF MED' 중간 연구 결과가 베일을 벗은 것이다.신장신경차단술은 저항성 고혈압 환자를 타깃으로 진행된 'SYMPLICITY HTN-3' 연구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해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신장신경차단술의 유용성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나섰다.하지만 이번 SPYRAL HTN-OFF MED 연구의 긍정적인 결과로 유용성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게다가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고혈압 환자에서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고혈압 치료 패러다임이 약물요법에서 시술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신장신경차단술이 재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연구들을 비교·분석해 효과 및 안전성, 향후 전망을 짚어봤다.3년 전 효과 입증 실패하며 유용성 논란신장신경차단술은 3제 이상의 항고혈압제에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을 치료하는 시술로 주목받았다. 카테터를 신장동맥에 넣어 고주파 에너지를 전달함으로써 교감신경 기능을 약화해 혈압을 낮추는 시술로, 2010년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그러나 2014년 신장신경차단술이 저항성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의미 있게 낮추지 못한다는 SYMPLICITY HTN-3 연구가 나오면서(N Engl J Med 2014;370:1393-1401), 학계에서는 신장신경차단술에 대한 유용성 논란이 가열됐다.SYMPLICITY HTN-3 연구는 앞서 시행된 SYMPLICITY HTN-1, 2 연구에서 신장신경차단술이 진료실혈압, 24시간 활동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진행됐다.기존 연구와 차이점이라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요청으로 신장신경차단술 시행군과 샴 시술(sham procedure)군(대조군)을 비교한 형식으로 디자인된 점이다.샴 시술군과 비교하는 연구는 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연구 진행 등의 문제로 일반적으로 잘 진행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SYMPLICITY HTN-3 연구는 이례적으로 엄격한 통제에서 시행된 질 높은 연구임을 엿볼 수 있다.FDA는 6개월 후 두 군 간 진료실혈압 차이가 5mmHg 이상이면 신장신경차단술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혔고, 연구는 이를 1차 종료점으로 설정했다. 2차 종료점은 두 군 간 24시간 활동혈압 차이가 2mmHg 이상인 경우로 정의했다.하지만 연구결과 6개월 후 진료실 수축기혈압 변화는 신장신경차단술 시행군이 14.1mmHg, 대조군이 11.7mmHg로, 두 군 간 차이는 2.39mmHg였다. 연구에서 정의한 1차 종료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게다가 24시간 활동혈압 차이는 1.96mmHg로 2차 종료점 달성에도 실패하면서, 학계 일각에서는 신장신경차단술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반대 입장에 선 전문가들은 신장신경차단술이 어떤 환자에게 효과적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비용 측면을 고려했을 때 필요한 시술인지에 대해 지적했다.SPYRAL HTN-OFF MED 연구로 '반등'에 성공이러한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이 된 것이 SPYRAL HTN-OFF MED 연구다(Lancet 8월 28일자 온라인판). 항고혈압제를 복용하지 않았거나 중단한 경도~중등도 고혈압 환자에게 신장신경차단술을 시행한 결과 샴 시술군과 비교해 의미 있는 혈압 조절 효과를 입증했다.연구는 신장신경차단술로 교감신경 기능을 차단했을 때 혈압이 낮아지는지를 증명하고자 진행됐다. 신장신경차단술이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낮출 수 있는 시술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접근한 것이다.

이에 연구 대상군부터 기존 SYMPLICITY HTN-3 연구와 차이를 뒀다. 기존 연구는 진료실 수축기혈압이 160mmHg 이상이고 복용하는 항고혈압제 수가 평균 5.1개인 저항성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반면 이번 연구에는 진료실 수축기혈압이 150mmHg 이상 180mmHg 미만, 이완기혈압이 90mmHg 이상인 경도~중등도 고혈압 환자가 포함됐다. 이들은 항고혈압제를 복용하지 않았거나 시술 전 약물을 중단했다. 

단독 수축기 고혈압 환자는 연구에서 제외됐다. 단독 수축기 고혈압은 교감신경 항진으로 고혈압이 발생하기보다는, 고령이면서 혈관경직이 동반됐고 체내 나트륨 함량이 많을 때 혈압이 높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경우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항고혈압제 없이 혈압을 조절할 수 있기에 이번 연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연구에 포함된 환자 수는 앞선 연구보다 적지만 참여국가는 많아졌다. 기존 SYMPLICITY HTN-3 연구는 미국 88개 기관에서 535명을 대상으로 했다면, SPYRAL HTN-OFF MED 연구는 미국, 유럽, 일본, 호주 21개 기관에서 참여한 353명 중 80명을 중간 분석했다. 특히 일본인이 연구에 포함되면서 같은 아시아인인 국내 환자에게도 이 연구 결과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신장신경차단술에 쓰이는 카테터에도 변화를 줬다. 기존 연구는 단일전극(monoelectrode)으로 차단술을 진행했다면, 이번 연구는 차세대 장비인 다중전극(multi-electrode)을 이용한 신장신경차단카테터(Symplicity Spyral)를 도입해 신장과 연결된 동맥 혈관가지(branch vessel)의 여러 부위를 동시에 차단했다.

"효과에 대한 의구심 씻어냈다"

연구팀은 환자 80명을 신장신경차단술 시행군 또는 샴 시술군(대조군)에 각각 38명과 42명으로 무작위 분류했고, 3개월간 추적관찰했다. 1차 종료점은 등록 당시와 비교해 3개월 후 진료실 혈압 변화로 설정했다. 

최종 결과 3개월 후 신장신경차단술 시행군의 진료실 수축기혈압은 10mmHg, 이완기혈압은 5.3mmHg 감소했고, 대조군의 진료실 수축기혈압은 2.3mmHg, 이완기혈압은 0.3mmHg 줄었다. 

두 군 간 차이를 보면 신장신경차단술 시행군이 대조군보다 진료실 수축기혈압을 7.7mmHg, 이완기 혈압을 4.9mmHg 낮춰, 신장신경차단술의 유의미한 혈압 조절 효과가 입증됐다.

심혈관질환 환자의 수축기혈압을 10mmHg 낮췄을 때 주요 심혈관질환 발생률이 20% 감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Lancet 2016;387(10022):957-967), 신장신경차단술 시행에 따른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를 주도한 독일 자를란트대학 Michael Bohe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항고혈압제를 복용하지 않은 경도~중등도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신장신경차단술이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개념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대조군과 비교하면 진료실혈압은 한 자릿수 정도 감소했는데, 이는 심혈관질환 및 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데 임상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수치다"라고 강조했다.

성균관의대 최승혁 교수(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는 "이번 연구 결과는 신장신경차단술이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확실히 없앴다"면서 "이를 계기로 향후 저항성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신장신경차단술의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약물 대신 시술로? 고혈압 치료 패러다임 변화 예고

SPYRAL HTN-OFF MED 연구는 신장신경차단술의 유용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는 고혈압을 약물요법이 아닌 시술로 치료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번 연구가 고혈압 환자를 신장신경차단술로 치료해 약물을 중단해도 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항고혈압제 복용력이 없거나 중단한 환자에서 시술의 효과를 확인했기에 이 같은 기대감이 모인다. 

게다가 시술의 안전성도 확보되면서 긍정적인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번 연구에서 신장신경차단술 후 보고된 주요 이상반응은 없었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된 결과이며, 2014년 데이터안전감시위원회(Data Safety Monitoring Board)는 신장신경차단술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연구와 같은 긍정적인 데이터가 쌓인다면 신장신경차단술을 통해 경도~중등도 고혈압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물 개수를 줄일 수 있고, 항고혈압제를 복용하는 환자도 지금보다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려의대 박창규 교수(구로병원 순환기내과)는 "고혈압 환자들은 약물요법을 평생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신장신경차단술로 혈압을 조절해 약물요법을 받지 않아도 되거나 약물 개수를 줄일 수 있다면, 시술받으려는 환자는 늘어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고혈압 유병률이 높은 만큼 향후 시술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시장이 굉장히 넓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장기간 연구·비용 대비 효과 분석이 관건"

이러한 치료 패러다임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진행될 연구들이 핵심 키가 될 것으로 보인다. SPYRAL HTN-OFF MED 연구는 환자들의 혈압 변화를 단기간 추적관찰했다는 한계점이 있기에, 앞으로 신장신경차단술의 효과를 장기간 평가한 연구가 패러다임 변화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신장신경차단술에 더 효과를 보이는 환자들의 특징이 밝혀지고 시술의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점이 입증되면, 신장신경차단술은 고혈압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옵션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최 교수는 "신장신경차단술이 약물요법을 대체할 수 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이번 연구만으로 부족하다"며 "그러나 5년 이상 추적관찰한 장기간 연구에서도 효과가 확인된다면, 신장신경차단술로 고혈압 환자가 복용하는 항고혈압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장기간 연구와 함께 신장신경차단술의 비용 대비 효과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아직 신장신경차단술이 비급여지만, 환자가 평생 항고혈압제를 복용해야 하는 부담과 진료비, 환자의 편의성 등을 고려하면 신장신경차단술의 비용 대비 효과는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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