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록세틴 '복압성 요실금', 카나키누맙 '머클-웰스 증후군' 치료제로 승인

모든 국가가 인구 고령화, 새로운 질환 증가 등으로 신약 개발을 갈망하고 있다. 이에 의료계 및 제약업계 등에서는 이러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수많은 신약 후보물질 중에서 최종적으로 적응증을 획득할 수 있는 물질을 찾기란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처럼 쉽지 않다. 

2012년 세계제약협회연맹(IFPM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약 후보물질 5000~1만 종 중 전임상에 도입한 물질은 250여 종에 불과하며 최종적으로 승인받는 약물은 단 1종뿐이다.

이에 의료계 및 제약업계가 다른 전략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른바 '신약재창출(Drug Repositioning)'. 

신약재창출이란, 이미 적응증을 획득해 시판되고 있거나 임상에서 효능 부족 등의 이유로 신약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약물을 재평가해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 신약으로 개발하는 방법이다.

본지에서는 신약 재창출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을 짚어보고, 신약재창출로 성과를 본 약물부터 새로운 적응증을 찾기 위해 순항 중인 약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알아봤다.

<기획-1> 약물의 변신은 무죄…'신약재창출'로 새 옷 입기

<기획-2>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새 적응증으로 '재점화'

<기획-3> 신약재창출 가능성 보이는 약물은?

둘록세틴, 항우울제에서 복압성 요실금 치료제로

'둘록세틴(duloxetine)'은 수술, 생활습관 교정밖에 치료 옵션이 없었던 복압성 요실금 환자를 위한 최초 먹는 약으로 주목받았다. 항우울제로 적응증을 갖고 있었지만 복압성 요실금 치료에서도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복압성 요실금이란 기침, 줄넘기 등으로 복부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소변이 흘러나오는 현상이다. 전체 요실금 환자 대다수가 이 증상을 앓고 있다.

둘록세틴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로, 척수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막아 음부신경의 활동을 촉진해 복압성 요실금에 치료 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효과는 이중맹검 위약 대조군 연구로 진행된 임상3상에서 검증됐으며(J Urol 2003;170:1259-1263), 이를 토대로 둘록세틴은 2003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복압성 요실금 치료제로 적응증을 획득했다.

연구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모집된 22~84세 여성 683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최소 3개월 동안 일주일에 조절하지 못하는 요실금을 7회 이상 경험한 복압성 요실금 환자였다.

연구팀은 환자들을 위약군 또는 둘록세틴 40mg 복용군(둘록세틴군)에 무작위 분류해 12주간 치료했다.

그 결과 일주일 동안 요실금 빈도는 둘록세틴군이 50%, 위약군이 27% 줄었다(P<0.001). 아울러 배뇨 간격은 둘록세틴군이 20분, 위약군이 2분으로, 둘록세틴 치료로 배뇨 간격을 18분 줄일 수 있었다(P<0.001).

단 둘록세틴군 중 구역 등의 이상반응이 나타나 치료를 중단한 환자가 일부 있었다. 하지만 중증도는 경도~중등도 수준이었고 대부분 1~4주 이내에 증상이 조절됐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밴더빌트의대 Roger Dmochowski 교수는 "둘록세틴이 복압성 요실금 치료에 효과적임을 확인했다"며 "치료 초기에 이상반응이 나타나더라도 조절될 수 있기에, 이상반응보다는 치료 효과가 더 크다는 점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나키누맙, 머클-웰스 증후군 치료제로 타깃 변경

IL-1β 저해제인 '카나키누맙(canakinumab)'은 애초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연구됐다. 하지만 임상2상에서 만족스러운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고, 개발사는 새로운 적응증을 찾는 전략으로 눈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개발사가 가능성을 본 질환이 희귀질환인 '머클-웰스 증후군(muckle wells syndrome)'이다. 머클-웰스 증후군이란 지속적인 염증과 조직 손상이 나타나는 질환으로, 전 세계에서 약 1000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

개발사는 머클-웰스 증후군 환자에서 IL-1β가 다량 분비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카나키누맙 투여 시 IL-1β 억제에 따른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평가한 임상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N Engl J Med 2009; 360:2416-2425).

임상3상에는 크리피오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cryopyrin-associated periodic syndrome, CAPS) 환자 35명이 포함됐다. CAPS란 피로, 발열, 관절 통증, 결막염 등이 나타나는 희귀성 자가면역질환으로 가족성 한랭 자가면역증후군, 신생아기 발생 다기관 염증질환, 머클-웰스증후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APS 환자 35명에게 카나키누맙 150mg을 투여한 결과 97%(34명)에서 완전관해가 나타났다. 이 중 31명을 카나키누맙 150mg 투여군(카나키누맙군) 또는 위약군에 1:1 무작위 분류해 8~24주간 치료한 결과, 전체 카나키누맙군이 완전관해를 유지했다. 반면 위약군 중 81%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P<0.001).

연구를 진행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Helen J. Lachmann 교수는 논문을 통해 "CAPS 환자에게 카나키누맙을 8주에 1회 피하주사하자 머클-웰스증후군 등의 증상이 빠르게 완화됐다"고 피력했다.

임상3상을 계기로 폐기 위기까지 놓였던 카나키누맙은 2009년 FDA로부터 머클-웰스증후군에 대한 적응증을 승인받아 기사회생했다. 

한편 개발사는 지난달 22일 CANTOS 연구를 통해 카나키누맙이 심근경색 과거력이 있고 염증반응으로 죽상동맥경화증이 나타난 환자에서 심혈관사건 재발 예방 효과를 입증했다고 발표해, 새로운 적응증 획득 가능성에 대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울산의대 한기훈 교수(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는 "신약 후보물질이 질환 치료에 실패하면 약으로서 효용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투자가치가 아직 있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적응증을 찾는 것이다"며 "현재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희귀질환 치료제로 먼저 승인받고 그다음에 적응증을 넓혀가는 방법이다. 카나키누맙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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