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글리타존·소염진통제·날트렉손 등 새로운 적응증 획득 가능성 보여

모든 국가가 인구 고령화, 새로운 질환 증가 등으로 신약 개발을 갈망하고 있다. 이에 의료계 및 제약업계 등에서는 이러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수많은 신약 후보물질 중에서 최종적으로 적응증을 획득할 수 있는 물질을 찾기란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처럼 쉽지 않다. 

2012년 세계제약협회연맹(IFPM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약 후보물질 5000~1만 종 중 전임상에 도입한 물질은 250여 종에 불과하며 최종적으로 승인받는 약물은 단 1종뿐이다.

이에 의료계 및 제약업계가 다른 전략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른바 '신약재창출(Drug Repositioning)'. 

신약재창출이란, 이미 적응증을 획득해 시판되고 있거나 임상에서 효능 부족 등의 이유로 신약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약물을 재평가해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 신약으로 개발하는 방법이다.

본지에서는 신약 재창출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을 짚어보고, 신약재창출로 성과를 본 약물부터 새로운 적응증을 찾기 위해 순항 중인 약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알아봤다.

<기획-1> 약물의 변신은 무죄…'신약재창출'로 새 옷 입기

<기획-2>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새 적응증으로 '재점화'

<기획-3> 신약재창출 가능성 보이는 약물은?

피오글리타존 간섬유화 개선효과 탁월

티아졸리딘디온계 경구혈당강하제인 피오글리타존은 비알코올성지방간염 환자의 간섬유화를 개선시켰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 Maurizio Cassader 박사팀이 피오글리타존이 비알코올성지방간염 환자의 간섬유화를 개선했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JAMA Internal Medicine 5월호). 

티아졸리딘디온계 약제는 지방조직과 근육, 간에서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고 염증을 억제하는 아디포넥틴의 분비를 촉진해 간 내 지방을 감소시키고 간세포 손상을 호전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도 몇몇 연구결과를 통해 당뇨병 유무와 관계없이 간 섬유화를 호전시키고, 소염염증 등의 증상을 효과적으로 개선시켰다는 보고가 있었다. 

연구팀은 여기서 더 나아가 MEDLINE 등 다수의 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연구 중 6~24개월 동안 진행된 무작위대조군 연구 8건(피오글리타존 5건, 로시글리타존 3건)을 비롯한 비알코올성지방간염을 진단받은 환자 516명 등을 종합검토했다.

결과는 연구팀의 예상대로 긍정적이었다. 피오글리타존 복용 환자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간섬유화 개선도가 66% 가까이 증가했고, 비알코올성지방간염도 유의미하게 소실됐다. 

연구팀은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환자만 따로 추려내 진행한 추가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면서 "이 같은 결과는 오직 피오글리타존을 복용한 환자에서만 나타났다"고 부연했다. 

스타틴으로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 낮춰

이상지질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낮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눈길을 끌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Julie M. Zissimopoulos 박사팀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스타틴 복용 이력이 있는 65세 이상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스타틴 복용이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Jama Neurology 2016.12.12).

그 결과 고용량 스타틴을 최소 2년 이상 복용한 고령 환자는 그렇지 않은 이보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다만 이 같은 효과는 스타틴 종류, 대상군 성별 및 인종 등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세부적으로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은 스타틴을 복용한 고령 여성에서 15%, 남성에서 12% 감소했다. 

또한 심바스타틴은 히스패닉 남성의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최대 33%까지 낮췄다. 다음으로 △흑인 여성 22% △히스패닉 여성 18% △백인 여성 14% △백인 남성 10% 순으로 발병 위험을 낮췄다. 단 심바스타틴을 복용한 흑인 남성에서는 유의미한 효과가 없었다는 게 연구팀 부연이다.

아토르바스타틴은 히스패닉 남성과 여성에서 효능이 뚜렷했다. 이들에서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각각 39%, 24%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아토르바스타틴을 복용한 흑인 여성에서는 19%, 백인 여성은 16%까지 그 위험이 감소했지만, 백인과 흑인 남성에서는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프라바스타틴과 로수바스타틴은 백인 여성에서만 18%까지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줄였다.    

소염진통제 방광암 전이 막는 효능 발견 

일본 연구진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이용해 방광암 전이를 막는 데 성공했다. 

일본 훗카이도대학 Shinya Tanaka 교수팀은 Scientific Reports 2016년 10월 4일자에 게재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쥐 실험을 통해 감기약 성분에 방광암 전이를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표재성 방광암은 전체 방광암의 70%를 차지하는데, 60~70%가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화도가 나쁜 종양세포로 구성돼 방광상피에만 국한된 종양인 상피내암은 침윤성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질환 특성상 항암요법 5년 생존율이 10% 미만이며 대부분 2년 이내에 사망할 정도로 치료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연구팀은 전이성 방광암 환자에서 시행되는 항암요법 효과가 떨어지는 원인부터 살펴봤다.

사람에서 추출한 전이성 방광암 세포를 쥐의 방광에 이식한 후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과정 등을 추적·관찰했다. 45일 후 쥐의 폐를 비롯한 간, 뼈로 암세포가 퍼졌는데, 기존에 이식한 암세포의 양보다 2만 개가 더 증가해 활발히 활동했다. 암세포 속 효소 역시 최대 25배까지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효소가 전이된 암세포를 더욱 활발하게 작용하게 하는 것은 물론, 항암제 효능을 저하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쥐 실험 전 시행한 방광암 환자 25명의 전이된 암세포를 추출해 관찰했는데, 역시 특정 효소가 증가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의 방광암 치료 가능성을 알아볼 차례다.

전이성 방광암 세포가 동반된 쥐에게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인 플루페남산(flufenamic acid)을 투여한 결과 암세포의 왕성했던 움직임이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항암제를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 암세포 일부가 살아남았던 반면, 플루페남산을 함께 사용한 결과 그 효능이 배가돼 암세포가 거의 사멸했다는 게 연구팀 부연이다.

Tanaka 교수는 "플루페남산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로서 전 세계적으로 승인된 성분으로 안전성은 이미 확인된 상태다. 플루페남산의 방광암 치료의 가능성을 이번 연구결과에서 봤기 때문에, 향후 진행될 임상시험을 통해 조기 암치료에 플루페남산을 사용할 수 있을지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독치료제 날트렉손 크론병에 효과

중독치료제로 승인받은 날트렉손은 크론병 치료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염증성 장질환(IBD) 중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크론병 치료 분야에서 저용량 날트렉손 2~4.5mg이 그 가능성을 검증받는 상황. 

일단 결론만큼은 명확하다. 원인이 분명치 않은 크론병 치료는 염증반응을 줄이는 게 최대 목표인 만큼 저용량 날트렉손(LDN)요법을 중등도 이상의 크론병 환자에게 처방했을 때 긍정적인 치료 반응과 함께 내시경 검사상 효과를 보였다. 

관련 연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의대 Smith JP 박사팀은 크론병 환자를 대상으로 LDN 요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에 등록된 환자군은 중등도 이상의 활동성 크론병 성인환자였다. 

첫 연구는 지난 2007년 1월 공개되면서 LDN 요법이 활동성 크론병 환자에 확실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내인성 오피오이드와 오피오이드 길항제가 조직의 치료 과정에 개입한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어 크론병 환자를 대상으로 LDN 요법의 효능을 알아봤다. 

연구는 CDAI 점수가 220~450점인 중등도 활동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1일 1회 날트렉손 4.5mg을 투약했다. 연구 시작 최소 8주 전부터는 종양괴사인자(TNF-α) 항체인 인플릭시맙을 중단했고, 4주 전 다시 투약을 유지했다. 특히 약물은 12주 연구 기간 동안 매일 저녁 경구 투약도록 했다. 또 삶의 질 조사와 CDAI 점수는 치료 전 한 차례 평가한 뒤, 4주 후 재평가를 실시했다(Am J Gastroenterol. 2007;Aprj102(4):820-8)

연구 결과, 대상군 17명의 환자 가운데 LDN 요법을 사용한 군에서 CDAI 점수가 유의하게 감소했고, 치료 종료 4주 후에도 이 상태가 유지됐다. LDN을 적용한 환자에서는 67%가 관해에 도달했으며 삶의 질 역시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단 연구 기간  동안 수면장애가 빈번히 발생했다.  

구토유도물질 아포모르핀 파킨슨병 치료제 오프상태 감소

구토를 일으켜 경구투여한 중독물질(항정신약물, 수면안전제 등)을 토해내도록 하는 아포모르핀이 진행성 파킨슨병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 부속 다뉴브병원 Regina Katzenschlager 박사는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미국신경의학회(AAN) 연례회의에서 아포모르핀의 파킨슨병 치료 가능성을 소개했다. 파킨슨병 환자는 도파민 부족으로 움직임의 장애를 겪는다. 몸의 떨림, 경직, 보행동결 등이 주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레보도파 등의 약물이 처방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약물 효과가 줄어드는 '오프(OFF)'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아포모르핀은 오프상태를 현저히 줄여준다는 게 연구팀 부연이다. 아포모르핀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지역에서 주사용 도파민 작용제로 사용되고 있다. 

연구팀은 진행성 파킨슨병 환자 107명을 아포모르핀 투여군과 위약군으로 무작위 분류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아포모르핀 투여군은 위약군 대비 오프상태가   1일 평균 2.5시간 감소했다. 위약군이 1일 평균 30분 단축된 것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 만한 효과를 보인 것. 더욱이 이 같은 증상개선 효과는 약물을 투여한 첫 주부터 나타났다. 

수면병 치료제 자폐증 완화 효과 입증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수면병(트리파노소마증) 치료제인 수라민이 기존 효능 외 자폐증 관련 증상 개선에도 효능이 입증됐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의대 Robert Naviaux 박사는 "수라민이 자폐스팩트럼장애(ASD)의 사회성 장애, 반복행동, 언어기능을 개선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수라민은 자폐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공격해 관련 증상을 호전시켰다. 연구팀은 뇌 속 세포가 바이러스 감염, 독성물질, 유전적 돌연변이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면 방어수단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막을 만들게 된다. 그 결과 세포들 사이의 소통도 완벽히 차단돼 결국 ASD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수라민은 이처럼 세포들의 비정상적인 활동의 주범인 ATP라는 단백질을 차단한다는 게 연구팀 부연이다. 

연구팀은 ASD로 진단된 5~14세 남아 10명을 5명씩 두 군으로 분류해 한 군에게만 수라민을 1회 정맥 주사했다. 그 결과 수라민 투여군에서 ASD 관련 증상이 효과적으로 개선됐다. 사회성, 소통 능력 등이 눈에 띄게 개선됐고, 극심하게 떨어졌던 집중력 역시 현저히 좋아졌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Annals of Clinical and Translational Neurology 5월 26일자에 게재됐다.

'옛날 항우울제' MAO A형 억제제, 전립선암 전이 억제

항우울제가 전립선암 전이를 억제시킨 보고도 눈여겨볼만 한다. 

일명 옛날 항우울제(old antidepressant)로 분류되는 모노아민 산화효소(MAO)  A형 억제제가 전립선암 전이를 억제시킨 것인데, 대표적인 MAO A형 억제제에는 클로질린과 모클로베미드가 있다(Cancer Cell 3월 13일자 온라인판).

워싱턴 주립대학 Jason Boyang Wu 교수팀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MAO A형 억제제가 전립선암 세포의 뼈 전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MAO 활동을 억제시켰다. 

연구팀에 따르면 MAO는 뼈를 흡수하는 파골세포를 활성화하는 3가지 단백질을 자극해 파괴되는 뼈가 새로 생성되는 뼈보다 많아지게 해, 전립선암 세포가 뼈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즉 전립선암 전이 세포를 가지고 있는 실험용 쥐에게 MAO 억제제를 투여했더니, 모노아민 산화효소 발현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켜 전립선암 세포가 뼈로 전이되는 것을 막은 것.

이와 함께 전립선암 세포주(cell line)에 MAO A형 억제제를 노출시켰다. 그 결과 피골세포를 활성화하는 모노아민 산화효소의 3가지 단백질 활동이 억제되면서 전립선암 세포의 뼈 전이 능력도 함께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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