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發 ‘비급여 임상필요 약제 목록 조사’에 학회별 대응 분주
“급여 진입 신호탄” 기대감 속에서도 개원가 중심 ‘부정적 시선’도
[메디칼업저버 문윤희 박선혜 손재원기자]보건당국이 임상적 필요성이 높은 약제 중 비급여 약물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각 학회가 급여 진입 대상 약물 리스트를 정리하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사가 ‘부분 급여’에 이어 ‘이중약가제’ 도입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달 29일 대한의학회와 산하 각 학회를 대상으로,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권고되지만 급여에 포함되지 않은 약제의 수요를 파악하겠다며 관련 공문을 전달한 바 있다.
복지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대한암학회는 산하 종양내과학회, 종양외과학회를 비롯해 암종별 학회에 의견 조회를 시작해 현재 취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종양내과학회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임상 현장에 필요한 약제를 전수조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학회는 항암제 부분급여 필요성을 정부와 소통하며 정책을 실현시킨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정책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변화가 환자들의 약제 접근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바란다”며 “학회에서 정리한 약제들이 모두 급여로 인정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약제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종양내과학회는 임상 현장에 필요한 비급여 항암제 37개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뇨병학회와 비만학회 등 내분비내과계 학회들도 이번 조사를 ‘환자 중심의 급여체계 개선 기회’로 보고 있다.
당뇨병학회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안전성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에 급여 확대가 쉽지는 않겠지만, 환자 건강을 위해 BMI 기준에 따라 관련 약제가 급여권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현재 급여권 진입을 준비 중인 GLP-1 약제들을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학회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취합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류마티스학회는 경구용 JAK 억제제의 1차 치료제 급여권 진입을 목표로 리스트를 작성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학회 관계자는 “해당 약제들이 이미 국제 가이드라인에서는 주요 치료옵션으로 자리 잡았다”며 “환자 접근성 확대를 위해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식알레르기학회는 알레르기질환 치료제의 신규 약제 승인 절차 지연 문제를 지적하고, 천식 분야에서는 기존 치료제의 적응증 확대 및 급여 적용 속도 개선을 중점적으로 건의할 계획이다.
학회 관계자는 “국감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희귀질환 관련 학회들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폐고혈압학회는 급여 대상 약제로 에포프로스테놀, 벨레트리, 윈레브에어 등을 리스트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회 관계자는 “GSK 오리지널 제품이 도입되지 않더라도, 벨레트리(에포프로스테놀 성분)라도 국내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가천대 의과대학장)은 지난 8월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국내의 열악한 폐동맥고혈압 치료 환경을 강하게 비판하며 ‘신약의 낮은 약가’로 인해 한국 패싱이 일어나고 있다고 직격타를 날린 바 있다.
그는 "플로란과 벨레트리가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이유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적자를 보기 때문"이라면서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국내 허가를 결정하는데 제약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해 패싱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 들여오면 다른 나라에서 흑자를 보는 약값만 떨어뜨린다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그게 벌써 30년이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약제명 언급은 시기상조”라며 구체적인 약물 리스트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학회 내부에서는 비급여 항목 중 환자 요구가 높은 약제를 중심으로 리스트 작업을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복지부 전수 조사에 대해 학회 일각에서는 ‘이중약가제 도입’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복지부가 단순 행정 실사를 넘어 약제 급여체계 개편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대부분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