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차병원 정수진 교수(소아청소년과 소화기영양분과)
생명에 지장 없다? 소아청소년은 임계점 넘어서면 회복 어려워
질병 취약한 0~2세, 쓸 수 있는 약 가장 적은 게 현실
[메디칼업저버 손재원 기자] 최근 NEJM에 소아청소년 급성 위장염 환자에서 온단세트론 효과를 평가한 논문이 게재됐다. 연구 결과 온단세트론은 위약 대비 중등도~중증 위장염 위험을 50% 낮췄고, 투약 후 48시간 내 구토 횟수도 24% 낮췄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위장염으로 인한 구토 증상을 보이는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온단세트론을 처방하기 쉽지 않다. 항암이나 수술 후 구토 증상에만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은 안전성 문제로 처방할 수 있는 약제가 제한적이지만, 그마저도 급여 기준이 엄격해 환자들이 치료 편의를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본지는 분당차병원 정수진 교수(소아청소년과 소화기영양분과)를 만나 소아청소년 소화기질환 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시사점에 대해 들었다.
Q. 소아청소년과 성인 장염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인 장염은 대부분 오염된 음식이나 물 때문에 발생해 박테리아성(세균성) 장염으로 분류한다. 대부분의 균이 대장에서 독소를 분비하거나 능동적인 감염을 일으켜 구토보다는 설사가 주된 증상으로 나타난다.
반면 소아청소년, 특히 소아는 나이가 어릴수록 이유식 등 매우 정제된 음식만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음식보다는 감기 바이러스 등에 의한 장염이 더 흔하게 발생한다. 바이러스는 소장에 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구토다.
Q. 소아청소년에서 구토 증상이 위험한 이유는.
구토는 설사와 달리 입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보호자가 내원해 하는 얘기가 대부분 아이가 물만 마셔도 토한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가 어릴수록 체내 수분 비율이 높은데, 이는 달리 말하면 성인 대비 조금만 구토가 발생해도 수분이 많이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결국 콩팥이나 심장 등 체내 중추기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Q. 다른 항구토제도 있는데 왜 하필 온단세트론인가.
질환과 약제의 기전을 엄밀하게 살피면, 항구토제는 온단세트론 하나뿐이다. 구토를 일으키는 중추는 위와 소장(상부위장관) 혹은 뇌의 구토 중추다. 원인을 제거해야 증상이 나아진다. 소아청소년 장염은 대부분 소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지 않았나. 소장의 세로토닌 수용체가 구토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단세트론은 바로 이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기전을 정확하게 타깃하는 약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뇌 중추에서는 도파민 수용체가 구토에 관여하는데, 여기 작용하는 약제가 돔페리돈 등이다. 다만 사용 가능한 연령과 기간 제한이 명확하고, 특히 2세 미만 환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건 돌에서 2세 사이의 환자들이다.
Q. 장염 외에도 온단세트론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는지.
바이러스성 장염은 1~2일 지나면 구토 증상이 완화돼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소아 소화기영양 전공자들이 반드시 급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적응증이 있다. 소아청소년에서 나타나는 주기성 구토증후군으로, 장뇌축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질환이다. 2~3개월에 한 번 정도, 5~7일간 이유 없이 구토만 한다. 성인이 되면 대부분 증상이 나아지지만 그전까지는 아이들이 고통을 많이 받는다. 다른 약은 전혀 효과가 없는데 온단세트론이 그나마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Q. 비급여 처방 시 환자 부담은 어느 정도인가. (국내 온단세트론 약가는 1정/바이알당 약 3000~8000원 수준이다.)
약제 복용량이 적은 소아에게 1~2일 처방하면 되는 장염은 상대적으로 낫다. 앞서 말했듯이 주기성 구토증후군 환자의 부담이 더 크다. 장염과 달리 주기성 구토증후군은 5~10세 아동에서 가장 흔한데, 아이가 성장한 만큼 약제 복용량이 더 많다. 뿐만 아니라 증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꾸준히 약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현재는 전액 비급여로 처방할 수밖에 없다.
Q. 온단세트론 외, 소아청소년에서 급여 확대 시 이점을 기대할 수 있는 약제는.
바이러스성 장염은 보통 구토 2일과 설사 5일, 약 일주일간 이어진다. 그러나 항구토제만 없는 게 아니라 지사제도 없다. 대부분 설사 환자에게 흡착제를 처방하는데 2세 미만에서는 처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사 증상이 나타나면 고형식을 먹어야 하는데, 2세 미만 소아는 대부분 우유류를 섭취해 증상이 오래갈 수밖에 없다.
온단세트론처럼 설사에 정확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약제가 하이드라섹인데, 역시 비급여 처방밖에 안 된다. 10g을 일일 3회, 5일가량 처방하면 한 알에 760원, 주에 1만 3000원 정도 나온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상 소아청소년과에서 급여 처방하는 약제가 한 알당 100원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다.
이외에 소아청소년 비만 환자에게 급여 처방 가능한 약제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뇌 중추에 작용하는 식욕억제제 계열은 소아청소년에게 금기라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등만 처방 가능하다. 그러나 비만에 대해서는 모두 비급여로 처방되고 있다.
성인도 비급여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성인 환자는 선택 가능한 다른 약제가 있다. 게다가 소아청소년에서 위고비를 처방해야 할 정도로 고도비만인 경우, 대부분 사회적, 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은 환자가 많다. 말 그대로 비싸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아청소년 고도비만은 결국 성인이 돼서도 2형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고혈압 등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Q. 소아청소년에서 적절한 약제 처방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
모든 환자가 그렇지만, 특히 소아청소년은 치료 임계점을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6개월간 질환 증상을 보여 성장에 문제가 생기면, 성인과 달리 다시 회복하기 어렵거나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치료해야 한다.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데 대체 약제가 없는 약제라면 적응증에 맞는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책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 같은 소아청소년으로 분류되지만 5살과 15살 환자는 완전히 다르다. 연령별 증상이나 질환 양상을 고려해 급여 등 정책 기준을 세울 때도 보다 세부적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