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협 주신구 회장 "의협 대신 쟁의권 있는 노조가 나서야"
병원 단위 의사노조, 필수의료 인력 유치와 경영 안정화에 도움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의정갈등으로 사직했던 전공의들이 복귀와 동시에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의사노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성분명 처방 및 검체 위수탁 등 의료계가 반대하는 정책들이 추진되면서, 의료계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전국 단위의 의사노조 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전국 의사노조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은 17일 전문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의사노조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주 회장은 현재 △성분명 처방 의무화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 △지역의사제 실시 △건강보험공단 특별사법경찰 도입 등 오랫동안 묵혀 온 주요 현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며, 의사노조 결성이 의료계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개원의·봉직의·교수 등 모든 직역이 참여한 강력한 투쟁이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의협은 투쟁에 적합하지 않은 조직"이라며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의사노조를 만들어 상시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투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 직종을 대표하는 의협과 달리, 의사노조는 단체행동 등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법적으로 보장받기 때문에 보다 강력한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 회장은 "지난해 전공의들에게 내려진 부당한 업무개시명령이 의료 사태의 방아쇠가 됐다. 단체행동이 막히니 사직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당시 전국의사노조 혹은 전공의노조가 있어 쟁의행위를 할 수 있었다면, 의료 사태가 이처럼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필수유지의료공백방지법(의료법 개정안)' 등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틀어막으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보인다"며 "이 같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의사노조는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의협은 하루빨리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의사노조 결성에 노하우가 있는 병의협과 기존 의사노조 집행부를 중심으로 전국의사노조 결성에 박차를 가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노조 결성이 곧 파업이나 투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조 투쟁은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평화롭게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주 회장은 "노조는 파괴적인 투쟁을 막는 합의된 장치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산물"이라며 "노조를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협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사노조 확산 안돼 아쉬워, 이제 인식 바껴야
정부의 국정과제인 필수의료인력 수급을 위해서도 의사노조가 필수적이라는 게 주 회장의 주장이다. 근무환경이 개선되어야 필수의료인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를 민주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의사노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 단위의 의사노조 역시 병원 경영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직무 만족도를 높여 의료인력의 유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 유출이 많은 지역 의료 현장에서는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의사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병원 단위 의사노조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중앙보훈병원, 아주대병원, 인제대병원 등 4곳에 불과하다.
주 회장은 "의사노조의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확산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의료기관 운영자들의 전향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들도 스스로 의료 노동자이자 근무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단일수가 체제이므로 봉직의뿐만 아니라 개원의들도 의료 노동자로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참여를 독려했다.
병의협은 첫 병원 단위 의사노조인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의사노조와 중앙보훈병원 의사노조와 연계하며, 아주대병원과 인제대병원 노조 결성을 지원했다. 지난 10일에는 전공의노조와도 업무협약식을 맺으며 이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주 회장은 "지금까지 의사들은 의료 현장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국내 의료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을 모아야 한다"며 "의사노조에 관심을 갖고 가입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병의협은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봉직의들의 단체로 회원 수는 약 2만 5,000여 명이다. 주기적으로 봉직의 근무환경 실태를 분석하고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등 봉직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으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회원을 지원하는 닥터론 사업, 봉직의 보험공제 사업, 회원 대상 노무 및 법률 자문, 연 1회 온라인 학술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