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엽추출물 등 기준 변경·대상 성분 두고 소위에서 이견 제기
제약계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변경, 산업 위축·형평성 문제 불러"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지난달 28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본회의에서 당초 상정이 유력했던 '2026년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추진계획' 안건이 제외되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라 5년간 운영한 1기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를 올해 마무리하고, 그동안의 추진 경과를 바탕으로 개선사항을 마련해 2026년부터 사실상 2기 운영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사전 건정심 소위원회 논의를 거쳐 본회의 보고를 준비했으나, 최종 조율 과정에서 평가 기준과 대상 성분, 적용 방식에 이견이 지속돼 안건 상정을 유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앞서 열린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2026년도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해당 안에는 평가 기준 변경과 급여 적용 방식 개선, 재평가 대상 성분 목록 등이 포함됐다.

평가 기준은 기존의 '3년 평균 청구액 0.1%(약 200억원) 이상 및 A8 국가 2개국 미만 등재'에서 '100억원 이상 및 A8 3개국 미만 등재'로 변경된다.

재평가 대상으로 제시된 약제는 총 7개로 △은행엽추출물 △도베실산칼슘수화물 △칼라디노게나제 △메글루민 가도테레이트 △디아세레인 △아플로쿠알론 △옥틸로늄브롬화물 등이다.

평가에 따른 급여적용 수준도 차등화할 계획이다. 임상적 유용성은 불분명하나 사회적 필요성이 높은 경우 선별급여 50%, 사회적 필요성이 낮은 경우 선별급여 80%를 적용한다.

대체약제 대비 투약비용이 높은 경우 약가인하를 추가 적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제약사가 급여 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가격을 낮춰 비용 효과성을 입증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복지부안에 제약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제약계는 변경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국내 제약사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제약계 관계자는 "평가 기준 변경 등에 대해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다"며 "기준 변경에 앞서 그간 운영된 제도의 평가가 우선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 기준은 국내 제약사들의 R&D 의욕을 꺾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재평가를 통과한 은행엽추출물을 다시 평가 대상으로 제시한 점도 제약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3년 기준 청구액 536억원, A8 중 독일과 스위스에 등재된 은행엽추출물은 2021년에 기준을 충족하며 재평가를 통과했다. 하지만 내년도에 변경된 기준을 적용할 경우 급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제약계 일각에서는 정부 측에서 은행엽추출물을 목표로 기준을 강화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제약계 관계자는 "1989년 등재되고 2021년 재평가된 은행엽추출물을 변경된 기준으로 소급 적용해 평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국내 제약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약제를 급여에서 탈락시키는 것은 정부의 국산신약 장려정책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추가 검토 후 재상정···내년도 일정 문제없어"

제약계의 반발에 복지부는 의견을 수렴해 추가 검토 후 다시 보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건정심 관계자는 "소위 내부에서 기준 변경의 정당성, 성분 선정 과정 등에 대해 현장의 의견을 더 청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복지부가 이견을 정리한 뒤, 빠르면 9월, 늦으면 11월 안에 회의에 재상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평가 안건의 8월 본회의 상정이 불발되면서 제약계는 당장은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내년도 재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마저 보이고 있다.

평가 대상 발표 시기가 이미 늦어진 가운데, 기준 확정마저 미뤄지면 내년도 평가까지 근거 자료를 준비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다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본회의에서 안건이 부결된 것이 아니라 소위를 한번 더 거치기로 한 것뿐으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재상정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아주 늦지는 않을 것이며, 확정 시기에 맞춰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평가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재 복지부가 별도로 진행 중인 '약가 사후관리 통합기전 방안 연구'가 향후 재평가 계획의 방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해당 연구는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며, 올해 11월 약가 사후관리 체계 통합과 실행방안의 내용을 담아 결과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연구 결과에 따라 재평가 제도의 구조적 개편이 이뤄질 수 있어, 제약계가 주시 중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