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설정 70개 중진료권, 생활권과 맞지 않아 실효성 떨어져
의료인력·재정지원·거버넌스 구축 지원하고, 지자체에 권한 넘겨야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지역의 필수의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활권 단위의 중진료권 의료체계 구축 필요성이 제시됐다. 정부가 제시한 중진료권은 지나치게 행정단위 위주로 설정돼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3일 국회의원실에서는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중진료권 역할과 거버넌스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행정구역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료권 단위의 의료계획 수립과 이를 뒷받침할 거버넌스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좌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응급실 뺑뺑이, 분만 난민 문제는 결국 지역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된 탓"이라며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는 집중해왔지만, 지역 의료 공급 체계 구축은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 필수의료 해결을 위해 지역자체제가 중심이 돼 중진료권을 구축해야 한다"며 "새 정부에서 '필수의료의 지방분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진료권은 의료의 공급, 이용과 광역 경계를 고려해 의료기관 간 협력 및 정책 집행단위로 가능하도록 몇 개의 행정구역의 묶음이다.
정부는 2018년부터 공공보건의료 발전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전국을 70개 중진료권으로 구분하고 각 진료권별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공공보건의료 책임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 김윤 의원 등은 보건복지부장관 고시로 대, 중, 소로 진료권을 나눠 진료권 단위로 필수의료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필수의료 강화 특별법'을 발의한 바 있다.
건국의대 이건세 교수(예방의학교실)는 응급·심뇌혈관·소아 등 필수의료에서 골든타임 대응과 병상·의료인력 집중도가 중요한데 이는 시군 단위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의 필수의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가장비 마련 △인력 수급 △당직 운영 지원 등은 단일 자체 단체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렵기에 중진료권 단위로 공동 투자 및 운영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순천 등과 같이 민간병원이 지역의료를 주도하는 곳에서는 민간병원 협력 유도에 한계가 있어 이를 중진료권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은 민간병원에서 공공병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들끼리 협력하거나 연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지역 필수의료에 구멍이 나고 있다"며 "이들 간의 연계가 이뤄져 지역 내 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순천권 중증응급환자 4분의 1은 타 진료권역...지자체에 권한 줘야
아직까지 중진료권은 정책분석 단위로만 존재할 뿐 법적·제정적 정책 단위로 기능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신 교수는 중진료권이 시도 또는 시군 행정구역 기반으로 구분돼 의료이용 흐름과 실제 생활권과 불일치하다 보니 환자 이송권 병원기능이 고려되지 않은 체 진료권이 설정되고, 재정·권한·정책 운영 주체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라남도의 6개 중진료권 중 하나인 순천권은 △순천시 △광양시 △구례군 △고흥군이 묶여있다. 하지만 다른 중진료권에서 속하는 여수시, 하동군, 곡성군 등에서 유입되는 중증응급환자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 교수는 "중진료권이 생활권과 일치하도록 재편을 고려하고, 중진료권에 속하는 지자체장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또 중진료권 소속 지자체에서 필수의료 목표를 공동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역할분담과 공동사업 설계가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중진료권 구축이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법제화 뿐만 아니라 △의료자원 수급 △경제적 지원 △지역 내 거버넌스 구축 등 다양한 정책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울산의대 옥민수 교수(예방의학교실)는 "현재 정부안에서는 지자체가 운용할 수 있는 권한도 자원도 없다"며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환경 격차가 너무 심해 일반적인 인센티브 등의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료인력 수급의 경우 보조금과 정주여건 개선을 넘어 특수 목적의 의대(공공의대)설립 등 강력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재원 마련과 재원의 역할 분담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별회계 예산이나 기금을 조성해, 진료량과 연동되지 않는 고정비용(필수인력 인건비나 공공보건의료기관 확충 비용 등)에 사용하자고 제언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민주당 김윤 의원을 비롯해 권향엽·김문수 의원 공동주최, 순천시와 건국대학교가 주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