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소마취 시술 코드 미설정, 전신마취약 마약류 지정...모두 과도한 규제
빈번한 필수의약품 부족 사태에 의료사고 안전망도 없어 위태로운 현장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산부인과 개원의사들이 분만 등에 꼭 필요한 마취 시술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정부가 국소마취술은 수가를 책정하지 않고, 전신마취 약물은 마약류로 지정해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 남발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산부인과 진료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선제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13일 서울 홍제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제19차 춘계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같이 밝혔다.
김재유 회장은 "자궁경부 주위 신경 차단술은 산부인과 외래에서 자주 시행되는 고주파 열응고술, 자궁내 장치 삽입, 자궁내막 조직검사 등에서 필요한 국소마취 기법이나, 아직 수가 코드가 설정되지 않았다"며 "그간은 마취 위치가 비슷한 음부신경차단술 코드(LA271:Pudendal Block)을 통해 청구했으나 이마저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인정하지 않아 실질적인 수가 공백 상태"라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지난해 9월 해당 시술의 청구 가능 여부 질의서를 심평원에 제출했으나, 심평원으로부터 산정 불가라는 공식 회신을 받았다.
이에 지난해 12월부터 회원들에게 해당 시술이 현재 청구 불가 상태임을 공지하는 한편, 올해 2월 자궁경부 주위 신경 차단술의 필요성과 의학적 타당성을 강조한 성명서를 심평원에 제출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박혜성 수석부회장은 "심평원은 마취의사도 하기 어려운 시술이라고 말하지만, 자궁경부의 이해도가 높은 숙련된 산부인과 의사는 외래에서 안전하게 시술이 가능한 술기"라며 "불필요한 전신마취가 사용되지 않도록 자궁경부 주위 신경 차단술을 독립된 시술 항목으로 인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적정 수가를 책정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마취유도제인 에토미데이트의 마약류 지정 추진도 의사회의 비난을 샀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류안전관리심의위원회 논의를 통해 전신마취유도제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회는 개원가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할 경우 관리에 어려움이 생긴다며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했다.
오상윤 부회장은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달리 투여 후 쾌감을 유발하지 않으며 반복 사용 시 부신 억제라는 부작용으로 인해 의료진의 사용도 제한적"이라며 "실제로 환자의 약물 의존성도 거의 보고된 바 없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마약류로 지정된 바 없으며 국내에서도 문제 사례가 드물었다"고 주장했다.
오 부회장은 마약류로 지정되면 병‧의원은 별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해야 하는데, 이는 병원의 행정부담을 증가시키고 응급처지를 지연해 결과적으로 의료현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에토미데이트와 같은 특수 약물보다, 이미 오남용 사례가 많은 프로포폴 등 기존 마약류의 철저한 관리가 우선이라며, 오남용 의심 병‧의원을 선별해 약제 사용 적정성 평가를 강화할 것을 제언했다.
의사회는 정부의 규제가 심해지고, 약물의 사용이 어려워질수록 필수의료인 산부인과의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호소했다. 최근에는 필수의약품 부족사태도 빈번히 발생하면서 진료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것이다.
손문성 부회장은 "지난 1년간 자궁수축제 옥시토신, 수축억제제 라보타, 임신성 당뇨검사약 등 필수의약품이 떨어질 뻔한 위태로운 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다"며 "정부는 마취법과 마취약을 규제해서 진료를 위축시킬 것이 아니라 필수의약품의 생산과 유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산부인과의사회와의 통합 논의도 언급됐다.
지난해 11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직선제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통합을 논의했으나,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채 결렬됐다.
김동석 명예회장은 "상대는 우리 의사회를 해체하고 산부인과의사회에 가입할 것과 가입 후 2년 동안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는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며 "회원을 위해 언제든 통합 논의에 응할 의지가 있으나, 이 같은 부당한 조건은 수용할 수 없으며 상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통합 논의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