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만학회 '세계 비만의 날 정책간담회' 4일 개최
임상적 비만병, BMI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건강지표 등 종합적 고려한 개념
"치료 환경 개선 위한 장기적 비만 관리 종합대책 마련해야"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비만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임상적 비만병(Clinical Obesity)'에 중점을 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임상적 비만병이란, 비만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개인의 건강 상태와 질병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개념이다.
그동안 비만은 단순히 체중 증가나 지방 축적으로 정의했지만, 이는 개별 환자의 건강 상태와 장기기능 저하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임상적 비만병 개념이 대두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한 장기적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비만학회는 3월 4일 세계 비만의 날을 맞아 중앙우체국 대회의실에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임상적 비만병, 진행 중인 질병을 객관적으로 반영
지난 1월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 Commission 보고서에서는 의료보건 전문가 58명이 참여해 기존 체질량지수(BMI) 중심 평가 방식을 넘어 임상적 근거를 토대로 한 새로운 비만 진단 및 관리 모델을 제시했다. BMI 기반으로 비만을 판단하면 질병 상태로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고, 합리적 치료와 정책 접근을 악화시킨다는 우려를 반영했다.
이에 보고서에서 제시한 임상적 비만병 평가 핵심요소는 먼저 과도한 체지방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BMI뿐만 아니라 DEXA나 생체전기저항분석 등 직접적 체지방 측정법과 허리둘레, 허리-엉덩이 비율, 허리-신장 비율 등 보조적 인체 계측치를 함께 사용한다.
이어 주요 기관 기능 장애나 일상 활동 제한 여부를 기준으로 임상적 비만병과 임상적 비만병 전단계를 구분한다.
임상적 비만병 전단계는 과도한 체지방이 확인됐지만 뚜렷한 증상이나 기능 저하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임상적 비만병은 지방 축적이 중추신경계 이상, 상기도·호흡기 기능 저하, 심혈관계 손상, 대사이상, 간 및 신장 기능 저하, 생식기·근골격계 장애, 일상 활동 제약 등 임상 증상으로 이어져 삶의 질이 저하된 경우를 의미한다.
학회 대외협력정책위원회 이준혁 정책간사(노원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임상적 비만병의 치료 목표는 증상 개선 또는 관해에 도달하면서 추가 합병증이나 말단 장기 손상으로의 진행을 예방하는 것"이라며 "이번 보고서는 임상적 비만병을 만성질환으로 공식 인정하는 것이다. 과도한 체지방이 기관과 조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여기에 중점을 둬 치료하면서 사회적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비만병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상적 비만병은 현재 진행 중인 질병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므로, 만성질환 관리 정책 수립 시 대상자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학회 대외협력정책위원회 박정환 정책이사(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BMI로 비만병을 진단하면 전체 인구의 1/3이 대상자가 돼, 정책 수립 시 많은 보건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정책을 논의할 때 '비만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하지만 현재 비만병 기준에 질병(disease) 등 개념을 포함하면 정책 대상자를 명확히 해 정책 수립에 따른 논쟁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적 비만병 적용 위해 국내 환경 고려한 논의 필요
사회적 인프라·정책적 대응 전략 마련해야
새롭게 대두된 임상적 비만병 의미를 국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내 환경을 고려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임상적 비만병 연구와 함께 이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 및 정책적 대응 전략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회 남가은 보험법제이사(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만 관리 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상적 비만병을 국내에 적용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에 기존 정의를 확장하고 보완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또 Clinical Obesity를 임상적 비만병이란 용어로 정의할지 합의가 명확히 이뤄지지 않았다. 향후 의학적 개념을 잘 반영하면서 부정적 낙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용어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에 따라 임상적 비만병 역학 연구는 진단기준의 국내 검증과 함께 실태 확인이 가장 시급하다. 단순 BMI를 넘어 대사적 건강 상태와 합병증 유무를 고려한 비만 분류 체계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또 임상적 비만병에 초점을 둔 정기적 국가 단위 실태조사를 시행해, 발생 및 경과와 치료 현황을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상적 비만병을 반영한 정책 변화를 위한 경제성 평가 연구 방향성도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최소한 임상적 비만병이 정책에 반영되려면 정교한 분류체계를 기반해 비용을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임상적 비만병은 개인의 대사적 위험에 따른 맞춤형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므로, 위험도와 합병증에 따른 단계적 치료 접근법의 비용-효과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재원이 필요한 환자군을 파악해 치료 우선순위를 선별할 수 있다.
남 보험법제이사는 "임상적 비만병을 관리하려면 일차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해 포괄적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정부-지역사회-의료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비만 예방, 치료, 관리까지 연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임상적 비만병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종합 법률 제정을 기반으로 전문가와 보건당국이 협력해 장기적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비만 진료 및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회는 임상적 비만병을 활용한 만성질환 관리 정책 수립 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입할 수 있는 지역으로 서울시를 꼽았다. 서울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모든 구에 충분한 인력과 장비를 보유한 보건소가 있기 때문이다. 또 보건소마다 임상적 비만병 진단에 필요한 체성분 측정을 위한 DEXA나 BIA가 설치돼 있어, 임상적 비만병을 활용한 만성질환 정책 수립에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박 정책이사는 "서울시처럼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행정적·정책적 지원이 가능한 곳에서 임상적 비만병을 활용한 만성질환 관리 정책을 선택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상적 비만병을 적용한 한국형 모델을 연구하고 사회경제적 비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과적일지 평가해 향후 국가적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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